나이듦을 읽다
[나이듦을 읽다] 종이와 연필을 벗하다 : 노년의 자기 돌봄
노년의 '자기만의 방'들을 비추어 확장하는 말년의 가능성. 그리고 나이 듦의 형식으로서 글쓰기.
글: 김영옥
202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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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자 어부와 여자 어부의 딸

 

버지니아 울프는 1931년 ‘여성의 직업’에 관한 강연에서 여성 예술가를 호숫가에 앉아 물 위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명상하는 모습으로 그린다. 잔잔히 흔들리던 상상력이 쏜살같이 심연으로 빠져나갈 때마다 이성은 “멈춰!” 소리 지르고, 상상력은 ‘어떻게 나를 그런 허접한 낚싯대에 묶어두려 할 수 있어?!’ 분노로 씨근거리고, 그러면 이성은 ‘자기야, 너무 멀리 가고 있었어. 남자들이 충격받을 거야. ... 한 50년만 기다려’라고 타이른다. 

 

1988년, 그러니까 울프가 희망을 건 50여 년이 지난 후에, 르 귄은 울프의 이 이야기를 건네받아 릴레이 하듯 이어 쓴다. 이 이어쓰기에서 여자 어부는 딸에게 조곤조곤, 그러나 열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조언한다.

 

"작가에게 꼭 있어야 하는 한 가지는 연필과 종이야. 그거면 충분해. 그 연필에 대한 책임은 오직 작가 본인에게만 있고 그 종이에 쓰는 내용도 오직 작가 본인 책임이라는 점만 알면 돼. 다시 말해서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만 알면 돼. 완전한 자유는 아니지 결코 완전한 자유는 아니야. 아주 부분적인 자유겠지. ... 정신의 호수에 낚싯줄을 드리우는 이 짧은 순간만일지도 몰라. 하지만 이 순간만은 책임이 있고, 이 순간만은 자주적이고, 이 순간만은 자유로워."1

 

나는 울프와 르 귄이 수행하는 이어쓰기 릴레이에 기꺼이 참여하고 싶다. 폭넓게 이해된 자기 배려의 관점에서 우리 모두 여자 어부로, 혹은 여자 어부의 딸로 ‘종이와 연필을 들고’ 살고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 늙어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것은 ‘자기 배려의 기술’을 포함한 미학적 프로젝트다. ‘초고령사회’라는 인구학적 진단이 무엇보다 사회‘비용’ 차원에서 등장하며 거의 노골적으로 연령차별을 부추기는 시점에서, 늙어가는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자기 배려의 기술’을 요청하기에 더욱 그렇다. 공책을 펴고 연필을 드는 일은 삶의 자락이 길고 얇아지는 노년기에 소소하지만, 중요한 의례가 된다. 그 의례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변화하는 나와 나보다 더 빨리 변화하는 세계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고, 그 틈새에서 나의 말년성을 다시 세우려는 의지의 발현이다.


 

2. 자기 앞의 생 : 살아내기 위해 종이와 연필을 찾는 사람들

 

자기 앞의 생은 자기 앞의 종이와 연필로 수렴되는 생이기도 하다. 생의 어떤 국면에서건 자기 앞의 종이와 연필을 놓치지 않았던 여자들을 발견할 때마다 설렌다. 번듯한 노트와 책상, 자기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여자들도 재주껏 자기 앞에 종이를 놓곤 했다. 이들은 모두 문학적 명성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쓰는’ 종이를 찾고 연필을 집어 든 사람들이었다. 밤마다 가계부 작성으로 하루를 마감하면서 한 귀퉁이에 일기를 써왔던 여자. 그렇게 60권의 가계부는 40여 년 넘은 생의 기록으로 남고,이것을 발견한 손녀는 자기 미래의 비밀을 엿본 듯 가슴이 뛴다. 어둡게만 느껴지던 미래라는 길에 빛을 비추는 글이었다. “할머니의 일기를 다시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가 생각났다. 좋은 일이 있든, 나쁜 일이 있든, 어느 곳에 있든지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것이 할머니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것은 계속된다. 여기에는 어떤 설명도, 주석도 필요 없다.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 순간을 붙잡아 보는 것. 그 필사적인 마음과 절박함이 일상을 다른 차원으로 이끈다.”3

 

그런가 하면 흥이 맞는 이들과 한껏 신나게 일상을 춤추던 곳을 떠나 서울로 이주해 온 후, 달력 뒷면에 시를 쓰며 고립감을 뚫고 자기만의 놀이터를 새로 만들어 나간 여자, 이것을 발견한 손녀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 함께 시 쓰기를 시작한다.4



 

“혼자 품기 아까운 삶의 이야기를 토해내고 싶은 열망”으로 54세의 나이에 아예 미디어문예창작과에 입학한 여자도 있다. 『예순 살, 또 깨꽃이 되어』를 쓴 이순자다. 그는 “이 삶의 답답한 경계를 허물 수 없어 오늘도 글을 쓴다. 글은 나의 탈출구다. 나의 슬픔, 나의 한탄, 나의 목마름, 나의 안타까움, 하지 못한 많은 말을 글로 토해내며 글로나마 나를 위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계 문제로 그토록 열망하는 글을 쓰지 못한 채 그는 62세부터 65세까지 취업전선에서 냉혹한 노동착취와 부정의를 겪어야 했다. 환갑을 넘은 취업 지망생에게 자격증 장식품일 뿐이라는 것, 지금은 자격증 시대라지만 자격증보다 우선 순위는 나이라는 것이 그 냉혹함의 배경이다. 원래 일하던 사람도 그만둔다는 나이에 세탁소, 백화점, 신규 입점하는 매장, 어린이집 등에서 일하고 또 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는 등 그가 전하는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한국에서 육십 넘은 사람이, 특히 몸이 약하고 장애가 있는 여자가 일해서 자기 생계를 지탱하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지 생생하게 증언하다. 그 모든 고군분투를 뚫고 그가 도달한 곳이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사회적 지위였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다리 밑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하나 둘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은 나를 설레게 한다.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이른 결심을 축하받고 싶다.”고 그는 기쁨에 겨워하며 말한다. 심장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으면 그는 어떤 글을 남겼을까. 죽는 날까지 여자 어부(의 딸)로 그가 썼을 글들을 상상하노라면 나는 억울한 느낌이 든다. 그만큼 그가 남긴 글들이 투명하고 솔직하며, 진심 어린 타인 돌봄과 사회-세상 돌봄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나를 사로잡은 여자 어부가 있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으로 만났던 이옥남이다. 이옥남의 이 일기 모음집은 긴 생애를 ‘정리’하려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 하루를 살아낸 자신을 주의 깊게 살피며 건네는 작고 단단한 인정이다. 30년이 넘도록 꼬박꼬박 기록해 온 그의 일기는 이중의 의미에서 자기 배려다. 일기라는 자기성찰의 글쓰기를 통해 자기를 지키고 형성해 나갈 뿐 아니라, 자신이 매일 해내는 밭일과 마을 공동체 일을 깨알같이 기록함으로써 밭과 작물과 자연의 생명과 사물을 돌본다. 그 모든 존재에 삶의 무게를 되돌려준다. “오늘도 살아 있다”고 쓸 때, 그는 생존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삶을 배우고 있으며, 자신을 빚고 있음을, 자신이 선택한 삶을 향한 윤리적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자신과 사람들에게 전하는 거다. 그의 일기에는 그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기는 여러 작고 어린 짐승들과 작물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단 한 번도 윤리나 도덕을 언급하지 않음에도 독자인 나는 그의 따스하고 둥그런 윤리의 감각 세계로 들어선다. 그가 선사하는 범속한 고양(高陽/高揚)의 감각이 얼마나 소중한지! 

 


3. 노년기 : 영화 <시>로 밝혀보는 삶의 미학적 조형과 윤리적 지평

 

푸코는 후기 저작들에서 자기 배려를 ‘삶을 하나의 형식으로 빚어내는 일’이라 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일’은 삶을 빚어내는 바로 이 일을 잘하기 위해 요청되는 것이다. 삶은 돌보아야 할 어떤 것, 관리하고 조형해야 할 어떤 것이라는 그의 말은 노년의 자기만의 방에서 더 미세하게 진동한다. 푸코의 자기 배려와 자기 형성은 전 생애단계를 두고 수행하는 일이지만 특히 인생의 말년에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메리 파이퍼는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에서 노년을 ‘미학적 통합의 시기‘로 명명한다. 살아온 조각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어내는 시기, 과거의 사건들이 드디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시기인 거다. “내 몸이 늙어가는 동안 / 나는 더 멀고 깊은 곳으로 가고 있었다.” 2011년 읽은 김혜순의 이 문장은 15년이 지난 지금 다정하게 내 일상을 동행한다. 푸코가 말한 자기 배려의 기술이란 결국 나를 ‘더 멀고 깊은 곳’에서 다시 만나는 기술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시>에서 지역문화센터의 ‘시 창작 프로그램’ 강사는 두 가지를 강조한다. 누구나 내면에 시를 품고 있으니, 그것이 흘러나오게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내면의 시가 흘러나오게 하려면 ‘보기’를 제대로 해야 한다! 그렇다면 시 쓰기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것도 꽤 단순한 일 아닌가?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시 쓰기는 매우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늘 사물에 둘러싸여 살지만, 사물을 ‘보는’ 게 아닌 거다. 

 

모든 사물은 자기만의 특이성을 뿜어내고 있다. 벤야민은 이것을 사물의 존재성이라고 불렀고, 들뢰즈는 사물의 기호라고 불렀다. 뭐라고 부르든 이 독특함은 민감성을 가진 사람만 감지할 수 있는 비밀이다. 이집트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고고학자처럼 사물이 뿜어내는 이 비밀에 민감해질 때, 우리는 사물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예술가가 된다. 이러한 민감성을 키우는 게 미적 교육이다. 영화 <시>에서 주인공 양미자는 자기 안의 시를 만나기 위해 사과나 꽃을 보(려고 애쓰)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땅에 떨어져 짓이겨지는 살구를 보고 비로소 살구라는 사물의 비밀에 접속된다. 이것은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아니다. 낙과(落果)의 의미를 생명 순환의 흐름 속에서 ‘볼 수 있게 되기’까지 그동안 미자는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이 배움의 과정은 한 여중생이 겪은 성폭력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태도의 배움과 얽혀있다. 


영화 <시> 스틸컷

 

<시>는 미적 교육의 과정이 사회적 정의와 부정의를 판별하는 도덕 교육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긴 여정으로 보여준다. 습관적 활동의 중지와 창의적 활동의 촉진이라는 관점에서 미적인 것(aesthetic)과 마취 상태(anesthetic)를 대립 쌍으로 보았던 존 듀이의 설명까지 참조해 양미자의 시인 되기를 살펴보자. 손자의 입에 먹을 게 들어가는 걸 볼 때 가장 행복했던, 그래서 손자를 곁에 두고 계속 먹이려고 자신의 돌봄 대상자와 성적 거래까지 감행해 합의금을 마련했던 ‘할머니’ 양미자는 이 습관/마취 상태에 중지를 선언하고, 성폭행 가해자인 십 대 청소년-손자를 법의 손에 넘기는 도덕적 ‘시민-시인’의 태도를 선택한다. 살구의 비밀을 ‘알아차리게’ 되자, 선악을 구별하는 인식도 가능해진 거다. 살구가 땅에 떨어져 짓이겨짐으로써 생태적 전환을 이뤄내듯이, 이제 손자도 사회의 도덕적 생태계를 위한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미자가 내면에 품고 있던 시상(詩想)은 이렇게 현실이 된다. 

 

미자가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초로의 여성임을 떠올릴 때, 이것은 미자 자신의 생태적·미적·도덕적 전환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시 쓰기’ 더 나아가 ‘글쓰기’가 나이 듦의 한 형식임을 확인한다. 이 형식에 민감해지는 것이야말로 노년기에 누릴 수 있는 향유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시만 품고 사는 게 아니라, 죽음을 품고 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저런 질환이나 불편함, 통증이 우리를 삶의 무른 곳들로 안내할수록 우리가 품고 있는 시/글과 죽음은 서로를 알아보고 협업하는 힘을 키운다. 죽음이 온유한 미소를 띠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사물의 비밀을 알아차리는 민감함은 증폭된다. 우리는 사실 늙은 사람에게, 늙어가는 우리 자신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게 많다. 나이의 의미를 편협하게 고정하는 규범에 묶여 살다 보니 기대하는 힘을, 창의적 상상력을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렸을 뿐이다.

 

이 글을 이제 메리 올리버의 시구로 마무리하자.

 

“Instructions for living a life:

Pay attention.

Be astonished.

Tell about it.”

 

삶에 관한 간단한 지침:

잘 보고,

잘 놀라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라.”




1. 어슐러 K. 르 귄 (2021), 『세상 끝에서 춤추다 - 언어, 여자, 장소에 대한 사색』, 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420쪽.


2. 몇 개의 예를 들어보자.

아이들은 엄마를 식모 취급한다. 엄마는 종일 일만 하는 것으로 안다.(1968.6.30.) 고양이가 간밤에 나가 종일 돌아오지 않는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1970. 3. 19) 윗틀니를 끼웠다.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1991. 6. 11) (큰딸 심장 수술) 새벽에 집에 왔다. 간밤부터 설사하고 오는데 어지럽다. 지금 아플 때가 아니다. 겁이 나서 병원 갔더니 링겔 맞으란다.(1993.11.17.) 401호 영감님, 2달 전에 별세했단다. 정말 몰랐다.(1991. 9.2) 가는 사람, 남는 사람,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 파마했다.(1998.5.21.) 


3.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2020 온라인 전시회 #7 <미래의 시간에게 건네는 안부> 허나영. 옥희살롱에서 진행한 글쓰기 워크숍 <'나만의 경험'을 넘어, 아프고 늙고 돌보는 경험 글쓰기>에서 쓴 글.


4. 그 결과로 나온 시집이 하영희의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핑크빛으로 살아가리라』(2024, 허스토리)이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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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메리 파이퍼> 저/<서유라> 역

출판사 | 티라미수 더북

세상 끝에서 춤추다

<어슐러 K. 르 귄> 저/<이수현> 역

출판사 | 황금가지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

<미셸 푸코> 저/<오트르망>,<심세광>,<전혜리> 공역

출판사 | 동녘

성의 역사 3

<미셸 푸코> 저/<이혜숙>,<이영목> 역

출판사 |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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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60대 후반의 당사자 페미니스트로서 노년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몸의 경험을 중심에 둔 노년 인권과 세대 간 연대에 관심이 많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 노년과 질병, 아픈 몸, 돌봄 등에 대한 여성주의 담론과 이론화를 모색했고, '인권연구소 창'에서 돌봄과 인권의 문제를 폭넓게 연구해 왔다. 『돌봄의 상상력』(2024, 공저),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2023), 『돌봄과 인권』(2022, 공저), 『흰머리 휘날리며 : 예순 이후 페미니즘』(2021),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2020, 공저), 『이미지 페미니즘』(2018) 등의 저술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