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만으로는 미각의 부재를 다 채울 수 없다. 먹지 않아도 먹은 것 같은 느낌을 주려면, 그 맛이 어떤 맛인지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여기가, UHD급의 맛 표현력을 자랑하는 백종원의 승부처다.
음식 예능이 본격적으로 힘을 얻은 건 HD 방송 기술의 상용화 이후다. 요리나 식사를 할 때, 우리의 눈높이는 늘 음식보다 최소 한 뼘은 위에 있다. 그러나 사물을 초고해상도로 담아낼 수 있는 HD 방송 기술은, 달궈진 팬 위에서 지글지글 끓어 오르는 버터와 손 끝에서 부드럽게 결을 따라 찢어지는 닭가슴살의 윤기, 신선한 제철채소의 줄기가 지닌 탄력을 바로 코 앞에서 보는 듯 볼 수 있게 해줬다. 일상생활에선 느낄 수 없는 음식의 시각적 스펙터클을 강조할 수 있게 되며 음식 예능은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시각만으로는 미각의 부재를 다 채울 수 없다. 먹지 않아도 먹은 것 같은 느낌을 주려면, 그 맛이 어떤 맛인지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여기가, UHD급의 맛 표현력을 자랑하는 백종원의 승부처다.
이미 수 년전 EBS <세계견문록 아틀라스>를 통해 세계의 맛집들을 도장 깨듯 먹어보고 다녔던 백종원은, 최근 시작한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를 통해 다시 세계 맛 유랑길에 올랐다. 맛을 설명하기 전에 감탄사부터 토해내며 감각적인 정보를 먼저 전달하는 백종원의 입은, 구체적인 설명에 들어가서도 초고해상도를 자랑한다. 에그 베네딕트에 햄 대신 올라간 깔루아 피그의 맛을 묘사하며, 백종원은 이렇게 말한다. “훈연되면서 뭐랄까, 스모키한, 약간 훈제 향도 나면서 되게 잘 어울려요.” 그리고는 다시 “소금으로 만든 돼지고기 장조림 맛이 나요.”라고 덧붙인다. 음식의 기본적인 정보를 충실히 전달하되, 그 표현만으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을 위해 맛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징검다리를 추가로 놓아 준다. 손님의 입맛을 사야 하는 요식업자 백종원은 음식의 본질이 감각이라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음식을 둘러 싼 인문학적인 정보나 역사 또한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그것들이 맛 자체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그러니 구체적인 정보에 앞서 일단 감탄사 먼저 내뱉고, 음식의 유래를 설명하기 전에 맛을 상상할 수 있는 단서를 먼저 흩뿌려 주는 것이다.
또 음식 예능이야? 또 백종원이야? 보기 전엔 뻔해서 질린다는 인상이 들 법도 한데,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한번 보기 시작하면 채널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그럴 법 하다.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일갈한 것처럼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이니까. 때만 되면 저절로 힘을 발휘하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배고픔을 자극하는 게 음식 예능인데, 그리고 음식을 먹고 해설하는 사람이 UHD급 입담을 자랑하는 백종원인데 질릴 리가 있겠나. 주말이 덜 깬 기분으로 한 주를 어렵사리 시작한 월요일 밤, 홀린 듯 TV를 켜고 멍하니 백종원이 기똥차게 식사하는 걸 보며 주린 몸과 마음을 달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그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보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며.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