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인생은 분산투자

일과 일 사이를 저글링 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일이 많이 한다고 해서 내가 중요해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일을 벌이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당위와 헌신은 일과 사람 모두를 피곤케 한다. (2018. 05. 18)

markus-spiske-467807-unsplash.jpg

                                       언스플래쉬

 

 

꼭 일이 몰리는 주간이 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액션 영화처럼 어딘가에 매달려 광란의 스피드를 온몸으로 맞는 때, 할 일 목록을 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당장 들이닥치는 일부터 해결해야 하는 때. 그럴 때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하나의 일만 붙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대개 돈이 안 되는 것들을 나는 취미로 다루지 않고 일이라고 부른다. 돈을 버는 밥벌이가 아니더라도, 재밌거나 의미 있어 보이거나 도의적으로 해야 할 것 같은 일에 자석처럼 달라붙는다. 최근에는 (회사 일을 하고) 피아노 레슨을 받고, 독립잡지를 만들고, 책방을 지키고, 행사를 기획하고, 독서 모임을 하고, 합창을 하고, 자산관리 세미나를 듣고, 시를 쓰는 모임을 시작하고, 1인 미디어 채널을 새로 만들 예정이다. 괄호에 들어간 일 빼고 어느 것도 나에게 시간을 뺏어갈지언정 돈을 주지 않는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나는 틈만 나면 일하기 싫은 사람인데, 문제는 일을 안 하면 끝날 고리를 하기 싫은 일 대신 다른 일을 만들어서 계속 이어나간다. A가 싫으면 B를 하고 B가 싫으면 C를 하다가 ABC가 차례대로 속도가 붙으면서 슬렁슬렁 걷던 일이 겅중겅중 뛰다가 종래는 녹초가 될 때까지 뛰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면 괜찮지 싶어 시작한 일들은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어 쳇바퀴에 미친 햄스터처럼 한 달을 증발시키기를 반복한다. 돈은 티끌을 모아 티끌인데 왜 일은 티끌을 모으면 태산이 되나.


기억을 돌이켜 봤을 때 나는 내 인생을 가지고 분산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다. 재테크에서 여러 수단에 투자하면서 자본을 잃을 위험을 줄이듯이, 나는 내 인생에서 위안이나 성취감을 하나의 일에만 몰아넣는 게 불안하다. 전문가가 되지 못할지언정 이 일이 힘들면 다른 일에서 위안을 찾고, 저기 일이 잘 안 되면 요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모든 일이 다 엉망이 되더라도 하나씩은 소소한 기쁨을 주는 일이 생긴다.


하나의 일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기쁨도 크지만 잘 안 될 때마다 슬픔과 절망도 커진다. 나중에는 일이 꼭 나인 것만 같고 내 마음대로 안 되면 내가 무시당한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술 먹고 집에 간다는 사람 붙잡아 놓고 "내가 싫어요? 우리가 남입니까?" 하면서 투신과 헌신의 부탁을 빙자한 화풀이를 하는데, 볼 때마다 안타까우면서도 몰빵 투자의 위험성을 곱씹고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일과 관계는 얼마나 우리를 쉽게 배반하는가. 둥글게 모여 앉아 서로의 뒤통수를 때리는 시대에 일을 늘리는 것은, 게다가 돈이 되지 않는 일을 늘리는 행위는 오히려 정신 건강에 해가 되지 않을까. (신체 건강은 분명 해를 끼친다. 저번 주에는 커다란 구내염이 생겼고 비타민 B와 마늘 주사를 들이부어서 간신히 잠재웠다) 그러나 모두가 자아존중감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존감 인플레이션 시대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바닥으로 향하는 지름길인 것 같다. 리스크 헤지 차원에서 뭔가 일을 벌여야 한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더 많이 성취하고 싶은 것도, 어쨌든 뭐라도 하고 있다는 위안으로 인생을 흘려보내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이고, 일은 일이다. 일이 많이 한다고 해서 내가 중요해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일을 벌이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당위와 헌신은 일과 사람 모두를 피곤케 한다. 언제까지나 즐거워지자고 하는 게 일이다. 뭐라도 크게 얻어가겠다는 마음으로 덤벼들면 금방 나가떨어진다.


일과 나 자신이 분리된 척, 인생의 경험이 흘러 넘치는 척 말은 많이 하면서도 사실 언제 잡아먹힐지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일은 늘어나기만 하고 줄어들지 않는 습성을 가졌고, 속도도 점점 빨라지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대로 말려들어간다. 그래도 성격이 이런 걸 어쩌나. 성실하게 일과 일 사이를 저글링해야지. 지금까지의 추세로 보면 일을 늘리면 늘렸지,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 달에는 취미로 하던 농구를 일로 만들어서 아마추어 농구 대회에 나가기로 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워커홀릭이다. 그저 남한테 내 일을 강요하는 꼰대가 되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오늘의 책

히가시노 게이고 〈블랙 쇼맨〉 시리즈의 시작

조용한 고향 마을, 아버지가 살해당했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아버지와, 10년 만에 나타난 삼촌, 용의선상에 오른 동창들까지, 모이지 말아야 할 자리에서 시작된 기이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코로나 이후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낸,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미스터리.

10년 간 수익률 4200%, 그의 솔루션

짐 로저스는 닷컴 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주요 경제 위기를 예견한 전설의 투자자다. 그는 지난 글로벌 금융 위기를 넘어서는 대규모 경제 불황을 경고한 바 있다. 경기 침체 징조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생존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기회의 투자 솔루션을 제시하는 데 향해 있다.

우리가 잠든 사이, 세상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밤이면 아늑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는게 참 좋아요. 그런데 우리가 잠든 사이에 세계도 우리와 함께 잠들어 있을까요? 우리가 잠든 사이, 밤 새워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채워주는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통해, 함께 사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림책.

만화로 읽는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영장류의 한 종이었던 호모 사피엔스가 최상위 포식자가 되기까지 역사를 다룬다. 인류학, 뇌과학, 종교학, 역사 등 여러 학문을 넘나들며 논의를 전개하여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제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 Vol.1』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