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나를, 서로를 돌보고 존중하는 사회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우리의 태도, 문화, 그리고 그 존재를 맞이하고 길러 내는 데 필요한 사회적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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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서이슬의 가족사진

 

 

‘아이에겐 저마다 때가 있다’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존중하라’라는 잘 알려진 육아 철학의 원칙들을 반복해 듣다 보면 아이에게 치우치는 것으로, 양육자의 삶이 중요하지 않단 뜻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저자는 양육의 중심이 ‘아이’가 아니라 개개인의 실제적 ‘삶’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양육자의 돌봄은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152쪽).

 

선천성 희소 질환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 약어로 KT를 앓는 아이와 함께 사는 엄마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한겨레 육아 웹진 <베이비트리>에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이다. 저자 서이슬은 내 아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를 함께 잘 길러 내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아 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저자 소개가 인상적인데요. 특히 “작가이자 활동가로 사는 것이 꿈이다”라고 하신 부분이요.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 소개와 인사 부탁드려요.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남편, 만 다섯 살 아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책 표지를 보고 물어 보는 분들이 계신데, 고양이는 (아직) 안 길러요. 여러 방면에 관심이 있고, 읽고 쓰는 걸 좋아해서 ‘작가’로 살기를 꿈꿔요. 또 평소 이런저런 세상일에 잘 분노하는 편인데, 화만 내기 보단 직접 변화를 만들어 내는 ‘활동가’로 살기를 꿈꿔요. 꿈은 그럴듯한데, 현실에선 전업 ‘놀이 동무’죠. 이곳에 오자마자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점거하라!” 운동을 보게 되었어요. 당시 동네에 생긴 관련 소그룹에 참여하면서 작가이자 활동가인 사람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어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걸 어려워해서 본격 활동가로 살기가 쉽지 않지만,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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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터에서 뛰놀기 좋아하고 거침없이 구름다리를 오르는 아이의 모습이 표지 일러스트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라는 제목으로 한겨레 육아 웹진 <베이비트리>에 연재를 하셨는데요. ‘케이티’(KT)에 관해 여쭙지 않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아요.

 

‘KT’(케이티)는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이라는 이름의 질환으로, 일종의 혈관 기형이에요. 몸속 혈관이 보통의 경우보다 크거나 많고, 혈류의 성질과 속도도 달라서 문제가 생겨요. 아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어요. 오른쪽 다리가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데다, 전체적으로 왼쪽보다 두 배 넘게 크거든요. 한국어로 풀어 쓰면 ‘케이티’라는 예쁜 이름이 되기도 해서 ‘케이티’를 아이의 애칭으로 삼아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KT’와 함께 살며, 궁금한 것이 많아졌어요. 왜 어떤 사람은 아이를 짠하게만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아이의 다리를 보고서도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는지, 왜 누군가에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 아이에겐 문제가 될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이요. 갸우뚱한 순간도 많고, 놀라운 순간도 많았죠. 그런 순간순간을 포착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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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오른쪽 발과 다리는 왼쪽보다 2.5배 크고 두껍다.

 


기존에 쌓은 글을 『아이는 누가 길러요』 로 엮으면서 새 글을 보태기도 하고 덜어내거나 고친 부분이 있으실 텐데 독자에게 특히 어떤 지점을 전하고 싶었는지 궁금해요.
 
연재글이 일상의 기록에 가까웠다면, 책으로 엮으면서는 그동안의 생각들을 더 담으려고 했어요. 온라인 공간에서는 아무래도 그날그날 겪은 일 위주로 쓰게 되니까 또래 아이를 기르는 부모로부터 ‘공감’을 얻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에 비해 제가 가진 의문이나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연재를 하면서 한 가지 불편했던 지점이 있는데, 조금 다르게 태어나 자라는 아이와 아이를 무덤덤하게 기르는 부모의 모습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때로 의심한다는 거였어요. 아이가 희소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줄곧 불행하거나 늘 아프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아이를, 우리를 보며 “대단하다”고 말해요. 아이가 “씩씩하다”고도 하고, 저더러 ‘훌륭한’ ‘멋진’ 엄마라고 해요. 아이는 그저 말썽꾸러기고 저는 평범하나 민감한 양육자일 뿐인데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어떤 틀을 씌워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왜 그럴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해, 그에 대한 답을 차례차례 구한 과정을 이 책에 담으려고 했어요. 아이가 씩씩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멋져서가 아니라, 각자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며 서로를 존중하고 조정하며 살아갈 뿐인 모습을 드러내려고 했고요.  


책이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짝짝이 신발을 신는 아이’ ‘각자의 하루를 살아갈 뿐’ ‘그래서 아이는 누가 길러요’. 장 별로 삶의 곳곳에서 길어 올린 육아 철학, 양육자의 태도, 사회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가 잘 드러나 있더라고요. 장마다 담으려고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려요. 또 책이나 영화, 방송 프로그램 등을 보며 삶과 연결 지은 에피소드들이 많이 나와요. 연쇄 독서를 좋아하는 <채널예스> 독자들에게 이 중 하나를 소개해 주신다면요.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우리의 태도, 문화, 그리고 그 존재를 맞이하고 길러 내는 데 필요한 사회적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우리 사회는 아이를 개별 주체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데 서툰 것 같아요. 아이를 부모와 떨어뜨려 생각하지 못하고, 아이를 부모의 부속물로 여기는 경우도 흔하죠. 부모가 아이를 일정한 방향으로 밀고, 조물조물 빚어서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게끔 한 후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건 아이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빚어 간다는 걸 제 아이의 성장 과정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어요. 저희 부부의 모습을 통해 육아는 엄마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양육자들은 부모 이전에 한 사람, 한 개인으로서 각자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그게 가능하려면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3부에 많이 담았어요. 


 3부 세 번째 글 “누가, 무엇이 아이의 행복을 결정하는가”는 한 편의 소설(조디 피코, 『마이 시스터즈 키퍼』My Sister's Keeper)과 한 편의 에세이(마사 베크, 『아담을 기다리며』Expecting Adam)를 연이어 읽으며 든 생각을 쓴 글이에요. 우리는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아이와 그 가족이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쉽게 단정 짓는데요. 그건 사회와 그 사회의 문화가 이들을 충분히 받쳐 주지 못하기 때문이지, 질병이나 장애 자체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아픈 아이를 둔 소설 속 엄마와 다운증후군 아이를 기르는 현실 속 엄마의 이야기를 연이어 읽으면서, 이 아이들, 엄마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를 생각해 보게 됐어요.     


서포트 그룹과 컨퍼런스에 참석하셨던 이야길 해주세요. 개인적으로 3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했거든요. 10만 분의 1 확률의 희소 질환을 앓는 당사자나 가족이 한데 모여 컨퍼런스를 갖는다니. 그리고 그것이 32년째 지속되어 왔다니 생각만 해도 뭉클한 감동이 있었어요.

 

‘미국 KT 서포트 그룹’은 30여년 전, KT를 앓는 아이의 엄마 두 사람이 서로 만나면서 시작됐어요. 2년에 한 번, 미네소타 주에 있는 한 병원의 회의장을 빌려 컨퍼런스를 열고 있어요. 환자ㆍ가족만이 아니라 여러 병원의 KT 전문 의료진이 한자리에 모여 2박 3일에 걸쳐 그간의 연구ㆍ임상 경험을 공유하고, 토론하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져요. 저희는 2016년에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했는데, 정말 뭉클한 경험이었어요. 과연 아이가 삶의 고비를 잘 넘겨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늘 있었는데, 각기 다른 연령대의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어쩐지 안심이 되는 기분을 느꼈어요. 한국에도 꼭 이런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 KT 모임’을 만들게 되었어요. 10년 뒤엔 우리도 한자리에 모여 KT 컨퍼런스 한번 열어 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마음에 두고서요. KT 한국 모임을 준비하면서 ‘활동가’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조금 더 구체화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단체가 미국의 “맘스 라이징”(Moms Rising), 그리고 한국의 “정치하는엄마들”이에요. 모두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여성이자 엄마의 직접 행동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단체예요. 멀리 있다 보니 국회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할 때나 여기저기 직접 가볼 수는 없지만, 성명서를 만들어 내는 과정, 어떤 내용을 담을지 논의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정치하는엄마들” 내에 만들어진 통합보육 관련 소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특히 장애 영유아를 위한 공보육 체계가 부족하고, 실질적인 통합이 아니라 물리적 통합에 그치고 있는 실정을 법적ㆍ행정적ㆍ문화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어린이집 원장, 장애 아이 엄마, 그리고 전직 특수교육치료사들과 함께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서/돌보는 모든 존재의 존립을 위해/‘아픈’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라는 홍보 문구를 봤어요.  『아이는 누가 길러요』 라는 책 제목과 맞물리면서 다양한 생각 거리를 주는 것 같아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또 돌보는 모든 존재의 존립을 위해서 무엇이 가장 선결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생각하세요?
 
KT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보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요. 가운데에 금을 그어 놓고 이쪽으로 한발 넘어가면 ‘비정상,’ 저쪽으로 한발 넘어가면 ‘정상’이라고 구분 지을 수 있을 만큼 뚜렷한 기준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됐어요. 누구나 살면서 어느 순간엔 어떤 벽에 부딪혀 주저앉기도 하잖아요. 보통 가로막힌 ‘나’를 탓하는 데 익숙하지만, 사실은 가로막은 벽, 그게 왜 거기 있고 누가 그곳에 세워 두었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나를 더 채찍질해서 그 벽을 넘겠다고 할 게 아니라, 경계 자체를 허물어야죠. 아이의 다리 수술을 앞두고 혹시 아이가 장애인이 될까 봐 걱정했던 어느 밤, 불현듯 깨달았던 것 같아요. 아이가 다리를 잃게 되더라도 아무 상관없는, 경계 자체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돌봄’도 마찬가지예요. 누구는 항상 돌보는 존재, 또 누구는 항상 돌봄을 받는 존재. 이런 식으로 금 그어 생각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스스로를 돌볼 수 있어야 하고, 또 서로 돌봄을 주고받기도 한다는 걸 인정하면 어떨까. 그렇게 보면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이를 ‘돌보아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을 때 아이 스스로 자기 삶을 빚어 나갈 기회를 줄 수 있겠죠. 엄마가 스스로를 돌보고 또 가족과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을 수 있을 때, 양육자로서의 건강한 자아를 만들어 갈 수 있고요. 무엇보다 돌봄을 사적인 영역으로, 경계 저쪽의 영역으로 두지 않고, ‘모두가 엄마’라는 생각으로 함께해 나갈 수 있어야 해요.  


한국에서 양육에 몰두하는, 또 책을 통해 더욱더 잘 알기 원하는 독자 다수는 어찌 보면 성공 사례나 정답을 찾고, 곧바로 적용하거나 실천할 수 있는 실용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특히 어떤 독자가 이 책을 읽어 보면 좋겠다 생각하시는지, 또 책을 통해 어떤 일을 함께해 주면 좋겠다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는 누가 길러요’라는 물음에 ‘당연히 엄마지!’ 하고 대답해 놓고도 어딘지 개운하지 못해 갸우뚱하게 된다면, 바로 그 사람이 이 책의 독자일 거예요. 그 당연해 보이는 대답을 한번쯤 크게 의심해 보는 것, 그걸 원해요. 아이가 잘못될까 봐, 아이에게 좋은 것을 다 해주지 못할까 봐 불안한 부모에게 이 책은 아이를 들여다보면 아이가 어떻게 스스로를 돌보며 자기만의 모양을 빚어 가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해요. 혼자 양육의 부담을 짊어지고 있거나 그 부당함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힘겨운 시간을 지내는 사람에게 결코 혼자 힘들어하지 말라고 말하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을 만나는 독자들이 아이는 누가,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되묻고, 돌봄과 성장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나 역시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모두가 엄마’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나를, 서로를 돌보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면 좋겠어요.  

 

 

아이는 누가 길러요서이슬 저 | 후마니타스
가사 분담과 ‘교대 휴식제’ 등 가정에서 직접 적용해 본 경험뿐 아니라 책, 애니메이션, 영화, 놀이터, 모임, 병원 등 삶의 순간순간, 곳곳에서 길어 올린 육아의 노하우들을 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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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누가 길러요 #서이슬 작가 #클리펠 트레노네이 증후군 #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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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