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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보상시스템과 연결된 학습의 결과물
몇 년 전 미국의 정신과 진단체계인 DSM이 최신판 DSM-5을 발간하면서 ‘인터넷 중독’을 ‘인터넷 게임 장애’란 이름으로 등재하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20년 가까이 인터넷 중독을 들으면서 지냈지만 아직 정식 질환명은 아니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병을 만들어냈다고, “게임을 좋아하면 다 정신병자냐?”는 반발도 거셌다. 어찌되었건 정신과 학계에서 처음으로 공식적 존재의 인정을 받은 셈이라 파장은 컸다. 물론, 이번에는 ‘임상적으로 연구해볼 영역’이란 섹션에 들어간 것이라, 올림픽으로 치면 시범경기에 속한 우슈와 비슷한 처지지만 학계나 게임 업계 양측에서 관심이 급증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올해 WHO에서 만드는 ‘국제질병분류(ICD)' 11판에도 인터넷중독을 게임장애란 이름으로 포함시키기로 결정되었다. 바야흐로 중독이 알코올, 마약뿐 아니라 인터넷, 도박과 같은 행위도 포함할 수 있다는 개념의 큰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이에 대한 찬반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중독이란 개념이 꼭 알코올, 마약같은 물질이 몸 안에 들어가 뇌에 작용을 해서 중독을 일으키는 고전적 개념만 아니라, 많은 행동이 나쁜 방향으로 습관화해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때 이를 정신질환적 측면으로 봐야한다는 공식적 선언이라 볼 수 있다.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 20여년 사이에 상당히 많은 근거가 축적되어 인정을 해야 할 시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뇌의 보상시스템과 연결된 학습의 결과물이다. 인간의 행동은 어떤 계기(trigger)가 있어서 방아쇠를 당기면, 그에 따라 연관된 행동(behavior)을 하고, 그것이 적절하면 바로 보상(reward)을 받으면서 그 행동이 다시 강화되는 사이클을 따른다. 이런 루프를 몇 번 반복하고 나면 작은 계기만으로도 아주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는 루틴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른 행동들보다 우선순위가 되어버린다. 이제 그 행동에만 몰두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떤 행동에 중독되었다’라고 말하게 된다. 게임에 열중해서 해야 할 숙제를 못하는 것뿐 아니라, 다이어트를 해야하는데도 좋아하는 디저트 아이스크림만은 먹게 되는 것, 밤 11시가 배가 출출해져서 라면이나 치킨을 먹어야 허기가 가라앉는 것도 모두 이런 중독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그 행동만 생각하고, 하고 싶어지고, 그 행동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환경을 변화시키기 까지 한다. 이를 갈망(craving)이라고 한다. 특히 현대사회의 많은 자극적 요소들은 더욱 쉽게 중독에 빠지고, 갈망을 하게 만들게끔 설계되어 있어서 어느새 우리는 많은 나쁜 습관을 갖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면 도시를 벗어나서 살아야 중독된 뇌가 되지 않는 것일까? 이런 현대인의 마음상태에 대해 진단을 하고 대책을 제시하는 책이 한 권 등장했다. 저드슨 브루어(Judson Brewer)의 『크레이빙 마인드』 다. 자는 메사추세스 의과대학 정신과 부교수이자 마음챙김센터장으로 활동하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마음챙김(mindfullness)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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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사회적 음식’을 찾아 움직이는 것
저자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글을 올리고 자주 찾아가서 ‘좋아요’가 몇 개나 찍혔는지 확인하는 행위도 테크놀로지 중독의 일환이라 말한다. 어떤 행동을 할 때 과한데 싶은 마음인인데도 참지 못하고 하게 된다면 나쁜 습관이 든 것이라 본다. 처음에 누가 내가 올린 사진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면 기쁘다. 이는 긍정적 강화로 도파민이 보상시스템을 자극해서 곧 더 재미있는 사진을 올리도록 한다. 더 많은 ‘좋아요’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들어가서 보고, 반응에 따라 일희일비 한다. 이런 반복적 행동은 도파민 보상시스템을 더욱 강화해서 이제는 일상활동에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반복하게 된다. 결국 생활의 중심이 되어버리면 결국 중독 상태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중독된 상태라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중독의 뇌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나면 인지행동 요법으로 해결이 안된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 습관 각성이 되어 정신이 번쩍 나고, 이에 따라 습관행동을 이해하고 이를 고치려 노력한다. 하지만 중독이 되어버린 행동은 너무나 일상화 되어버려 그 나쁜 행동을 참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하거나 강제하지 않는 상태다. 그러니, 문제를 깨닫고 인지행동적 노력을 시작하는 것 조차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보상이다. 어떤 일에 맞춰 행동을 하고, 적절한 보상이 있으면 그 행동은 강화된다. 이건 처음 생명체의 생존을 위해 발전한 시스템이다. 어떤 곳에 갔더니 먹을 것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걸 잘 기억하고 있다가 또 찾아가야만 한다. 남들보다 빨리 그 곳을 가는 방법을 잘 학습하면 경쟁에서 우위에 있을 수 있다. 이로 인해 만들어 진 것이 보상학습시스템이다. 뇌의 이 시스템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대인관계, 고민, 사회적 활동 전반에도 적용되었다. SNS에서 ‘좋아요’를 더 받기 위해 하는 활동도 사실은 생존을 위해 했던 일과 유사하다. 저자는 이를 일종의 ‘사회적 음식’을 찾아 움직이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한편 이런 보상시스템은 정서와도 연관되 있다.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존감이 낮거나 우울증이 있다. 온라인의 상호작용에 대한 의존도와 선호도가 높을수록 정서적 조절능력이 떨어지고, 자존감 하락과 사회적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기분이 나아지려고 SNS에 접촉하지만 끝나고 나면 도리어 기분은 나빠지기 쉽다. 마치 슬플 때 초콜릿을 먹듯이 습관적으로 SNS를 접속하지만 슬픔을 준 근본 문제의 해결이 없으니 다시 슬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으로 형성되어버린 이런 중독적 행위는 더 강하고 잦은 ‘좋아요’로 보상받기 위해 자주 그 행동에 몰두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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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호기심, 관용, 회복력
이와 같은 건강하지 않은 습관의 형성은 사랑, 쓸데없는 고민, 쇼핑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관찰되며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뇌가 세팅이 되어 특정한 행동에 몰입하는 습관이 들어버렸다면 이를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과 같이 자연스럽게 흘러, 매일 입는 속옷같이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마음챙김(mindfullness)' 기법을 권한다.
먼저 천천히 지금 너무나 자동적으로 하는 습관적 행동을 천천히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 안에 욕망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욕망을 무시하거나,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려고 애를 쓰지 않고, 이것 또한 내 경험의 하나로 받아들인다. “지금 내 몸 안에서 뭔가 느껴지지?”라는 질문을 갖고 마치 처음 보는 행동이라도 되는 듯 슬로우 모션으로 관찰하기만 한다.
이를 RAIN명상법이라고 소개하는데 Recognize/Acceptance/Investigate/Note 로 욕망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관찰한 후 기록하라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는 저자가 오랫동안 마음챙김 센터에서 훈련을 하면서 경험한 것과, 그가 뇌 과학적 측면에서 중독적행위에 빠진 사람들의 훈련 이전과 이후에 뇌 MRI의 변화를 연구한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최신 심리서적들이 그렇듯이 중독이란 고전적 개념을 현대 뇌과학의 도구로 증명하고, 변화가 상징적이고 추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뇌의 신경가소성을 기반으로 하여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에 중독을 상당히 넓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고 도파민, 보상체계, 습관의 형성이란 틀에서 설명한다. 현대사회의 빠른 속도, 소비문화의 짜릿한 자극은 더욱 우리의 삶을 중독적 틀로 밀어 넣는 경향이 있다. 얄팍한 흥분의 반복에 뇌는 언제나 지친 상태이다. 이 단기적 보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용기뿐 아니라 지혜가 필요하다. 저자는 몰입, 호기심, 관용, 회복력이란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다. 막상 실천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소비사회에서 중독의 습관에 빠지지 않고 평온한 삶을 만들기 위한 마음의 화두로 삼아 보면 어떨까? 크레이빙으로 조바심난 뇌를 안정시켜야 산만함과 조절 실패로 인한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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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빙 마인드저드슨 브루어 저/안진이 역 | 어크로스
현대인들이 빠져들기 쉬운 6가지 ‘중독 물질’과, 특정 행동이 습관으로 굳어지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며 습관의 감옥에서 탈출할 방법들을 안내한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