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작업기억의 저하
평소 생활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을 경험해 보았는지?
1. 운전 중에 전화가 와서 부득이하게 받다가 교통신호를 놓칠 뻔했다. 혹은 앞차가 이상하게 느리게 움직여서 추월하면서 지켜보니 운전자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2. 치통이나 두통이 있는 날에는 일을 할 때 확실히 잔 실수가 많고 쉽게 지친 적 있다.
3. 가족과 말다툼을 하고 나온 날에는 수업이나 회의에 집중하기 어렵고 들은 이야기도 금방 잊어버린다.
4.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블로그를 둘러보니 가기로 한 도시에 매우 많은 가봐야 할 곳이 있었다. 노트 한 장에 빼곡히 적어놓고 나니 실제로 여행기간동안 어떤 순서로 가야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5. 마감에 쫓겨서 매우 바쁜 날에는, 다른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쉽게 결정을 해서 나중에 후회한 적이 있다.
아마 최소한 두 세 개 정도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위의 다섯 가지는 내가 평소 경험한 것들을 적어 놓은 것이기도 하다. 보는 관점에 따라 1번은 집중력 문제, 2는 통증으로 인한 고통, 3은 정서적 우울감이 미치는 영향, 4는 결정 장애, 5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다섯 가지 모두 근본 원인은 한 가지로 볼 수 있는데, 바로 작업기억의 저하다. 작업기억(working memory) 그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기억력과 다른 영역의 뇌기능이다. 최근 며칠 사이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단기기억, 집주소나 미국의 수도가 어디인지 기억하는 장기기억과 달리 작업기억은 순간적으로 정보를 의식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으로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단기기억,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들을 꺼내서 잘 조합하고, 처리해서 원하는 것을 판단하고 행동하게 하는 능력이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머리 위에 지금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여러 개를 잘 섞어서 붙들어 놓고 잘 처리하게 한다. 1956년 프린스턴 대학의 조지 밀러가 처음 소개한 개념으로 오래 지속되기보다 잠깐 동안 존재하다 사라지는 능력인데, 작업기억의 크기 차이가 지능의 60%를 설명하고, 세칭 유능함, 똑똑함,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 최근 많이 알려져 있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하드디스크나 SSD가 뇌의 해마에 속하는 기억저장장치라면 작업기억은 RAM 메모리와 같이 켜져있는 동안 정보를 처리하고, 전원을 끄면 그 안의 정보는 사라져버리는 것과 같다. 뇌에서는 전전두엽(prefrontal area)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과거에 스트레스, 집중력, 기억력, 참을성, 판단 능력과 연관해서 설명하던 것들의 상당수가 사실은 ‘작업기억’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이를 잘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면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능력도 좋아지고 일상의 생활을 하는데 겪을 어려움도 훨씬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신통방통한 작업기억의 개념과 활용전략에 대해서 꽤 상세하고 방대하게 풀어낸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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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낙관적으로 예측하고, 애매한 상황을 잘 견딘다
미국 노스플로리다 대학 심리학과 교수 트레이시 앨러웨이와 메모사인 사의 CEO 로스 앨러웨이가 쓴 『파워풀 워킹 메모리』가 오늘 소개할 책이다. 흔히 작업기억하면 떠오르는 것은 ‘매직넘버 7’이다. 조지 밀러가 통상 작업기억의 평균 용량이 7정도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머리 안에서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정보의 가짓수가 7개 정도로, 이걸 넘어서면 급격히 정보처리 능력이 떨어지고, 7개를 다 다루고 있을 때에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틈이 없이 튕겨져 나가서 입력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집중이 안된다,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여기기 쉽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전두엽의 발달이 가장 느리기 때문에 연령대별로 서서히 작업기술용량이 늘어나서 7-9세에는 3개 정도, 16 세 이상이 되면 6개 정도, 성인이 되어야 7개가 온전히 가능하고, 30세가 넘어서 까지도 서서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용량이 큰 성인은 9개까지도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작업기억의 단위 하나를 덩어리(chunk)라고 하는데, 이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족여행을 갈 때 기차 예약, 숙소 예약, 여행지 맛집 검색과 날씨 예보 알아보기를 해야한다고 치자. 그러면 4개의 덩어리가 되어 7개중 4자리가 차버린다. 그러면 나머지 3 덩어리로 이메일에 답장을 하고, 점심을 뭘 먹을지 생각도 하고, 회의 준비도 해야하니 갑갑해지고 길게 고민을 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이때 ‘여행 가기’로 묶으면서 이 네 가지 문제를 폴더에 넣고, 필요 정보는 스케줄러에 적어버린다면 이제부터는 하나의 덩어리만 갖고 있는게 되어버려서 뇌에는 훨씬 여유 있는 작업기억 공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작업기억의 효율적 활용방법이다.
저자는 작업기억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여러 개 나열한다. 정보가 너무 많아도 한 번에 핸들링이 안되니 효율이 떨어진다. 위의 사례의 1과 4에 속한다. 멀티태스킹 환경에 살고 있지만 이 역시도 작업기억의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시간 제약이 생기면 작업기억의 활동이 압도되어버려서 충분한 숙고를 하지 못하고 즉각적 판단을 한다. 5번 사례가 그렇다. 2번 사례와 같이 신체의 통증도 뇌의 작업기억을 떨어뜨린다. 또 작업기억이 약하면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를 억제하지 못하고 우울한 기분이 더 강해진다. 한편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부정적 단어와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서 작업기억을 방해한다. 감정의 억제에 드는 에너지도 작업기억과 관련되어있는 것이다. 4번 사례가 그러하다.
반면 작업기억의 능력치가 좋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낙관적으로 예측하고, 애매한 상황을 잘 견디고, 충동 억제를 잘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유명한 어린이의 마쉬맬로우 실험과 지능의 상관관계를 본 연구도 실은 작업기억능력이 좋은 아이들이 더 오래 마쉬맬로우 먹고 싶은 충동을 참은 것이고, 이는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된 다음까지도 유지되었다는 연구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중한 작업기억,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잘 활용하고 향상시킬 수 있을까? 저자 중 한 명이 작업기억에 기반한 훈련프로그램인 정글메모리란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의 CEO라 그런지 후반부는 그 프로그램의 소개와 칭찬이 무척 많다. 이 부분은 한 수 접고 읽는 것이 필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만한 팁들이 꽤 많이 소개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푹 자는 것이다. 수면부족이 되면 뇌가 보존모드로 변해서 인제능력의 일부를 제한하는데 작업기억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 잠이 부족하면 집중해야할 때 집중을 하도록 지휘하는 작업기억의 기능이 저하된다. 그러므로 충분히 잠을 자야만 한다. 두 번째는 사사로운 정보들이 작업기억의 한 자리를 차지 않게 하도록 주변을 단순화시킨다. 작업공간의 신경쓰일 만한 물건을 치우고, 하루의 일과를 단순화 시키고, 매일 정리정돈에 몇 분을 투자해서 쓰지 않는 것들은 과감히 버린다. 세 번째는 루틴을 고수하면서 일상의 리듬을 안정화시키는 것과 달리기와 자연을 경험하며 느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공원을 산책하고 나면 작업기억점수가 20%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외에도 많은 충고와 실제 해볼 만한 숫자와 기억 놀이가 책에서 소개되고 있으니, 관심있는 독자들은 한 번 구해서 읽고 해보시기 바란다. 그동안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떨어져 치매가 벌써 왔는지 고민을 해온 사람, 집중력 저하로 성인 ADHD가 온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던 사람에게는 이 책은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실은 ‘작업기억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머릿속이 잡동사니로 가득 차서 그나마 주어진 뇌의 공간을 100% 사용하지 못했던 것일 뿐이라는 걸 알려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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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풀 워킹 메모리트레이시 앨러웨이, 로스 앨러웨이 공저 / 이충호 역 | 문학동네
나이가 들면서 작업 기억이 어떻게 변하고, 작업 기억이 어떻게 ADHD, 자폐증, 읽기 장애, 알츠하이머병과 관련이 있는지를 포함해 이 분야에서 일어난 최신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