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겠습니다』에는 책을 읽는 53가지 방법이 실려 있다. 저자의 바람은 소박하다. “독자들이 책 읽는 재미에 살폿이 빠져들면 좋겠다”는 것. 그녀는 ‘책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고민했고, 결국 한 권의 다이어리 같은 책을 완성했다. 첫 장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1년 53주에 맞춰 각 꼭지와 함께 위클리플래너를 수록했다. 뒤편에는 독서감상노트를 덧붙여 놓았다. 덕분에 『매일 읽겠습니다』 안에서는 일상과 책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읽기로 채워지는 하루하루가 기록된다.
누군가에게 책은 넘어야 할 산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즐거운 놀이다. 어떤 경우든, 우리는 종종 이 행위의 의미를 묻는다. 무엇을 위해 독서를 하는가. 저자는 ‘책의 쓸모’에 대해 명확하게 말한다.
‘너는 책에 무얼 바라니?’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게 이어진다. 책을 읽으며 단단해지길 바란다. 덜 흔들리고, 더 의젓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오만하지도, 순진하지도 않게 되길 바란다. 감정에 솔직해지길,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길 바란다. 거창하게는 지혜를 얻길 바라고 일상생활에서는 현명해지길 바란다.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을 알게 되길 바란다. (『매일 읽겠습니다』 121쪽)
당신 역시 같은 이유로 책을 읽고 있다면, 혹은 책 속에서 같은 것을 찾고자 한다면, 한 해의 시작을 『매일 읽겠습니다』와 함께해도 좋을 것이다. 한 주에 하나씩, 독서의 재미를 맛볼 수 있다.
황보름 저자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한다. “독서가라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사람” 그리고 덧붙인다. 책에 관한 책과 이야기를 좋아해 책에 관한 책까지 쓰게 됐다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녀는 휴대전화를 만드는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회사를 그만뒀고, 가능하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매일 읽겠습니다』에 담긴 일상 그대로다.
타이머앱과 함께하는 ‘틈틈이 독서’
다이어리처럼 쓸 수 있는 책이에요. 독자들의 감상이 덧붙여지기를 바라셨나요?
네. 처음에 제가 투고할 때 제목이 ‘책과 가까워지는 방법’이었어요. 제 글을 읽고 독자 분들이 책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생각했었거든요. 어떻게 하면 책을 더 가깝게 읽을 수 있을까. 거기에 출판사의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다이어리 컨셉으로 나오게 된 거예요. 책을 읽고 감상을 쓰는 습관이 들면 즐거운 독서 체험이 되는 것 같고, 그러면서 더 읽게 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1년 동안 갖고 있을 수 있는 책을 만들게 된 거죠.
두 가지 버전으로 출간됐어요. 민트와 핑크, 서로 다른 색의 겉표지를 가지고 있죠?
출판사 아이디어인데요. 대표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친구랑 한 권씩 나눠서 감상을 적고, 1년이 지났을 때 바꿔서 읽으면 좋겠다고요. 그런 생각이 표지에 반영된 것 같아요.
책에도 독서모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다른 사람과 감상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죠. 책을 읽다 보면 자신 안에 어떤 생각이 일어나잖아요. 그걸 혼자 담고 있는 것보다는,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더 재밌는 것 같아요. 계속 책을 읽는 동력도 되는 것 같고요.
“생각의 부딪침”이 독서모임의 가장 큰 묘미라고 하셨어요. 때로는 상대에 의해 내 의견의 허술함이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두려운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사실 두려워요. 그런데 독서모임을 나가기 전에는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토론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했고, 모임에 가서도 말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요. 계속 하다 보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 사실 지금도 두려운 것 같아요.
그렇지만 지경이 넓어지는 효과도 있죠?
그렇죠. 혼자 생각하다 보면 그게 틀린 건지 맞는 건지도 모르잖아요. 심지어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그 생각을 고수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떤 사람에 의해서 생각이 한 번 무너지면, 기분은 나쁘지만, 그것만의 쾌감이 있는 것 같아요.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쾌감이죠. 그래서 다른 사람과 감상을 나누는 경험을 많이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책이 나오는 데 <채널예스>가 작은 영향을 미쳤더라고요(웃음).
엄청 큰 영향이죠. 제가 <채널예스>에 실린 김정옥 어떤책 대표님의 글을 읽었는데, 내용이 정말 좋아서 약간 울컥했었어요. “글 쓰는 일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고 쓰셨는데, 그 문장에 코가 시큰해졌어요. 그래서 투고를 했죠.
부제가 ‘책을 읽는 1년 53주의 방법들’입니다. 53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무엇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방법이라기보다 가장 자주 애용하는 방법이 있는데요. ‘타이머앱’을 사용하는 거예요. 요즘에는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거든요. 예전에는 한두 시간 읽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았고,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었는데요. 최근에는 집중력이 부족하고, 또 연말이라 산만해지기도 해서, 거의 매일 타이머앱을 사용하고 있어요.
20분 단위로 사용하신다고요.
네, 20분 동안 앱을 켜놓고 책을 읽고 시간이 다 되면 끊어요. 짧게 텀을 갖고 다시 20분 동안 책을 읽을 때도 있고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집중력이 산만한 기간에는 잡생각들이 많으니까, 그럴 때는 타이머앱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내 독서의 팔 할은 ‘틈틈이 독서’”라고 쓰셨어요.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보통은 한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야 책을 읽겠다는 마음을 갖잖아요. 평소에는 바쁘니까 주말이 되거나 여행을 갔을 때 책을 읽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일상에서 매일 읽지 않는 분이 주말에 카페를 간다고 해서 책을 읽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도 그렇고요. 틈틈이 시간 날 때 읽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시간이 10분이든 30분이든 큰 상관은 없는 것 같고요. 저는 시간을 믿고, 어떤 시간 동안 어떤 일을 하는 행위를 믿어요. 내가 지금 이 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없는 것 같거든요. 크게 부담 갖지 않고 하루에 20분, 30분씩 틈날 때마다 읽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요.
머리를 말리는 동안에도 책을 읽으신다고 해서 놀랐어요. 가능한가요?
그냥 방바닥에 앉아서 머리를 말리는데요. 그때 앞에 책을 펼쳐 놓고 읽는 거예요. 방에 누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깜짝 놀랄 때도 많아요.
‘이런 자투리 시간까지 활용해봤다’라고 말할 만한 게 있을까요?
그 이상의 독특한 틈틈이 독서는 없는 것 같은데요. 저는 기다리는 일에 대한 부담이 없는 편이에요. 친구가 늦게 온다고 했을 때도 기다리는 거에 대해서는 별로 화가 안 나요. 책이 있으니까요. 물론 너무 자주 늦으면 화가 나겠지만요. 그런 식으로 틈날 때마다 책을 읽어요.
제가 변했다면 책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책 읽는 시간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뺏기는 경우도 많잖아요. 작가님도 이 두 가지를 멀리하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던데요. 그게 의지만으로 되나요?
우리 뇌는 더 좋아하는 걸 하게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의지로 방향을 틀려는 노력은 확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버려 두면 편한 거, 좋아하는 거, 쉬운 걸 하려고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일에는 노력을 하잖아요. 책이 좋고 읽고 싶다면 어느 정도는 노력을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참아야 하는 것도 있고요. 제가 요즘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도 인터넷 때문이고, 최근에 시작한 SNS 때문에 더 집중력이 없어졌어요. 그러다 보면 책을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안 읽고 인터넷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잖아요. 그런 상황을 유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노력을 해야 되는 거죠.
구체적으로 시도한 방법이 있었나요?
일주일, 이주일 정도 인터넷을 안 해보기도 했는데요. 오래 가지 않더라고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통제하는 쪽으로 간 거죠. 자꾸 마음을 다잡는 거예요. 그런데 ‘인터넷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면 스스로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움베르토 에코가 한 이야기 중에 ‘완강한 무관심’이라는 개념을 좋아하는데요. ‘우리가 너무 많은 것에 탐욕스럽게 달려들다 보면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개에만 집중하고 관심을 가지고 나머지는 완강하게 다 무관심해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 말 때문에 저는 일상을 조금 단순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밋밋할 정도로 단순하게 하고 좋아하는 것만 하는 거예요. 나머지는 일부러 관심을 끊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을 읽으세요?
네, 일어나서 20~30분 정도 읽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침을 먹고요. 이후에도 말 그대로 ‘틈틈이’ 읽어요. 요즘에는 저도 한두 시간 동안 계속 읽는 게 잘 안 돼요. 그래서 30~40분 읽고 다른 일도 하다가 또 다시 읽어요. 자기 전에도 읽고요.
조금씩 끊어서 읽어도 앞부분이 기억나세요?
한 번에 다 읽어도 잘 기억이 안 나서(웃음)...
그건 맞아요(웃음)
어차피 제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전에 읽었던 걸 기억 못한다고 해서 두렵지는 않아요. 간혹 앞의 내용과 이어져야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거든요. 한동안 안 읽었던 책을 오랜만에 다시 볼 때는 앞에 밑줄 쳐 놓은 부분만 다시 한 번 읽어봐요. 그리고 오늘 읽을 부분부터 다시 읽어요.
독서의 의미에 대해서도 많이 성찰하신 것 같아요.
거창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요. 저는 기억보다 중요한 게 변화라고 생각해요. 사실 책을 읽는 중간에 ‘나는 지금 바뀌고 있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가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 적도 없고요.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계속 ‘이 사람의 생각이 정말 마음에 든다, 이 사람처럼 살고 싶다, 이런 삶은 어떨까’라는 질문을 했어요. 좋은 책들을 저한테 자꾸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요. 제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질문을 받는 건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제 생각인 것처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아주 조금씩 삶이 변하는 것 같고요. 지금 제 삶이 과거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거니까요. 다만 제가 정말 변했다면 그게 책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조금 더 단단해지고 덜 흔들리면서 산다면 말이죠.
책을 읽을 때 옆에 항상 준비해 두시는 게 있나요?
연필만 있으면 돼요. 저는 연필이 없으면 책을 아예 안 읽어요.
외출하실 때마다 그 날 읽을 책을 고르신다고 하셨는데요. 깜빡하고 연필을 안 챙기신 날은 불안하시겠어요.
네. 그러면 책을 안 읽죠. 그렇다고 급하게 연필을 산 적은 없는데, 그냥 책을 읽지 않고 돌아와요. 그런 날은 마음이 계속 찜찜하죠. 굉장히 찜찜해요.
책에 밑줄을 그으면서 문장을 수집하시잖아요.
그렇죠.
『매일 읽겠습니다』의 위클리플래너에 적힌 문장도 직접 고르셨어요?
다 제가 수집한 것들이고요. 어떤 문장이 들어갈지도 거의 다 제가 골랐어요.
요즘 화두로 붙들고 있는 문장이 있나요?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이 있어요. 몽테뉴 평전인데요. ‘그는 어떤 충돌도 일으키지 않았다, 평생 출세하려 하지 않았고 그가 한 생각을 찬성해줄 사람을 구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몽테뉴를 설명했어요. 충돌하지 않았다는 말이 외적인 충돌만 의미하는 건 아닐 테고, 안에서도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자신을 탐구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타인의 시선을 배제한 사람인 거죠. 그런데 저는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자꾸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을 괜히 미워하고 화도 내고요. 화내는 상황을 정말 싫어하는데, 요즘에 약간 그러고 있었나 봐요(웃음). 그래서 그 문장을 읽고 ‘충돌 일으키지 말자, 출세하려고 하지 말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밑줄 친 문장들을 모으는 작업도 따로 하시죠?
발췌해요. 에버노트에 키보드로 적고요. 급하게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는 문장 옆에 점을 찍어서 표시해 놔요. 많은 페이지에 담긴 내용은 다 옮겨 적을 수 없으니까 카메라로 촬영해 놓고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문장들은 발췌하는 거죠. 손으로 다 옮겨놓는 거예요. 책에 점 찍어서 놓은 부분도 다 옮겨 놓고요. 안 그러면 읽은 것 같지 않고, 기억을 못할 테니까요.
오늘도 외출하실 때 책을 고르셨나요?
네, 오늘 읽기 시작한 책인데요.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읽는다고 해서요(웃음).
SNS를 보면서 다음에 읽을 책을 찾기도 하신다고요. 『산책자』도 그 중 하나인가요?
연말이다 보니까 ‘올해의 책’ 같은 걸 많이 선정하잖아요. 몇몇 목록에서 『산책자』를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읽게 됐는데요. 번역을 배수아 소설가가 하셨더라고요. 제가 번역에 조금 예민한 편인데, 소설가 분이 번역했다고 하면 그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죠.
내 판단에 기대어 책을 고를 것
“뒷부분 내용이 더는 알고 싶지 않으면 큰 고민 없이 책을 덮는 편”이라고요. 그러면서 ‘지금은 틀리고 나중에는 맞다’는 이야기를 덧붙이셨어요. 예전에 볼 때는 별로였던 책을 다시 읽기도 하세요?
『월든』이나 『장미의 이름』이 그런 경우예요. 『월든』은 20대에 읽었을 때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앞부분에서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이야기하잖아요. 그래서 재미도 없었는데, 다시 읽으니까 너무 좋아진 경우예요.
『장미의 이름』은 100페이지까지 읽기가 힘드셨다면서요?
네, 그런데 사실 『월든』이나 『장미의 이름』은 워낙 뛰어난 책이니까 주위에서 많이 이야기되잖아요. 그래서 다시 읽게 된 경우인데요. 읽다가 그만둔 책을 다시 읽는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아요.
‘공대 아름이’ 출신이시죠(웃음)?
네, 공대 보름이죠.
그러네요(웃음).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시고 휴대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셨어요. 책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지 않으셨어요?
그런 생각을 안 했었어요. 평생 책 읽고 글 쓰면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진 건 5~6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그냥 생각도 못 했어요.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어렸을 때는 영어가 싫어서 이과에 갔고, 취업이 잘된다고 해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친구들 따라서 원서 내다가 회사에 들어갔어요. 그렇게 사는 게 제 앞에 있으니까 작가가 되거나 출판사에서 일하는 거에 대한 생각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뭘 좋아하는 깊게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 같고요.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서 이 일이 너무 재미없고 의미 없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어요.
많은 직장인들이 고민하는 거죠. ‘여기가 내 자리가 맞나’ 싶고요.
그렇죠. 입사 2, 3년차에 정말 힘들었어요. 그 전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계속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건 나와 맞는 일이 아닌 것 같아’라는 걸 깨달으시는 데 영향을 미친 책도 있었나요?
딱 한 권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데요. 책을 읽다 보면 너무 당연한 말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사람은 다 자기만의 개성이 있고 자기만의 길이 있다고요. 어릴 때부터 책을 읽으면 그런 문장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내 삶이 문장과 너무 다르니까 자꾸 갈등이 이는 거죠. 그게 제 안에 계속 쌓인 것 같아요.
독서의 즐거움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읽기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명사들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책을 읽는 이유’를 말하잖아요. 공감력, 사고력도 늘고 창의력도 키울 수 있고 주체적인 느낌도 얻을 수 있다고요. 독서법 책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런 이야기들이 자극이 되고 동기가 돼서 책을 읽게 되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자기 스스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 번 찾으면 그 다음부터는 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에 이끌려서 책을 읽었다면, 읽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다면, 그 느낌을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순간을 의미 있게 다루는 능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도 다 느끼는 거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느낌에 의미를 부여해보는 거예요. 내가 왜 이런 느낌을 받았는지, 왜 감동 받았는지, 왜 공감했는지, 내면의 울림을 생각해 보시면 독서의 의미를 찾지 않으실까 싶어요.
얇은 책부터 읽기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책을 읽는 것도 좋고 집에 있는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나한테 맞는 책을 고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주말 같은 때 서점에 가서 한두 시간 정도 배회하다가 나한테 맞는 책을 고르는 것도 방법인데요. 평소에 책을 안 읽으시는 분들도 목차와 서문, 본문 몇 장을 읽어 보면 ‘이 책은 읽을 수 있겠다’ 싶은 책들이 있어요. 너무 두꺼워서 못 읽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느껴지면 나한테 맞는 책이 아닌 거죠. 내 판단에 계속 기대는 연습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책 선택에 실패했더라도 그 이유를 알고, 그 다음 책도 내 기준에 따라서 고르는 것 역시 중요하고요. 저도 요즘에 얇은 책을 많이 읽어요. 동네 서점에 가면 150~170페이지 정도 되는 손바닥만 한 책들이 많더라고요.
‘책덕후’에게 추천하고 싶은 독서법도 있겠죠?
그 분들에게는 추천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웃음).
그 분들이 모르는 작가님만의 독서법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책덕후 분들은 이 책을 공감하시면서 읽으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분이 쓰신 글을 보니까 발췌하는 게 정말 어려운데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의외로 타이머앱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사실 별 거 아닌 거 같은데도 타이머앱과 발췌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담아놓는 것
한 달 단위로 읽은 책의 목록을 작성하시죠? 독서의 양을 늘리는 것에도 욕심이 있으세요?
양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양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양이 질로 전환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욕심을 부리기는 하지만 일부러 빨리 읽으려고 노력하지는 않아요. 저는 굉장히 천천히 읽는 편인데요. 목록에 적을 책을 늘리려고 얇은 책을 읽는 꼼수를 부릴 때도 있기는 해요. 그렇지만 책을 빠르게 넘기면서 보지는 않아요. 30분 동안 한 권의 책을 읽고 300분 동안 10권의 책을 읽는 게 독서 양이 늘어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성들여 읽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의 양이 쌓이는 거죠. 어떤 분들은 한 권 한 권을 양이라고 생각해서 빨리 읽으려고 하시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질로 전환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목록만 채워질 뿐이죠.
‘언젠가 이 책을 읽고 말 거야’ 생각하면서도 아직 펼치지 못한 책이 있나요?
읽고 싶은 책은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아직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안 읽어서 읽으려고 사놨고요. 롤랑바르트의 『마지막 강의』도 읽고 싶어요. 읽고 싶은 책은 다 인터넷서점 카트에 넣어 놓는데요. 지금 카트에 200권정도 있어요. 읽고 싶으면 우선 다 넣어놔요. 그런 다음에 쭉 보면서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고 구입하거나 빌리죠.
새해에 만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한국 소설가 중에서 조해진 소설가를 굉장히 좋아해요. 내년에 조해진 소설가가 책을 내시면 좋겠어요. 그 책은 꼭 읽고 싶어요. 그리고 올해 『랩걸』을 너무 재밌게 읽었는데요. 호프 자런의 책 중에서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게 『랩걸』 하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작품도 번역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딱 한 작품만 번역된 작가들, 그 분들의 다음 책도 기다리고 있죠.
‘한 해의 시작과 함께하면 좋을 책’을 한 권만 꼽는다면요?
최근에 읽은 책 중에 『다시, 피아노』라는 책이 있어요. 가디언 편집국장을 지낸 저자가 쓴 책인데요. 엄청 바쁜 한 해를 보내면서 하루에 20분씩 피아노를 연습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워낙 글을 잘 쓰시는 분이라 당연히 읽는 재미도 있고요. ‘틈틈이’가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돼요. 바쁜 아침에 딱 20분 동안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진 힘, 그 20분이 이후의 시간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매일 20분씩 1년을 하고 나서 이 사람이 성취한 결과, 이런 걸 볼 수 있거든요. 연초에 너무 부담스러운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20~30분 정도 내가 뭘 재밌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게 어떨까, 하는 의미로 이 책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내년에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54번째 책 읽는 방법’도 있을까요?
책에서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했었어요. ‘깊게 파기 위해서 넓게 파기 시작했다’고요. 저는 아직 넓게 보고 있는 중인데요. 제가 좋아서 이렇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조금 깊게 들어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 인물이 될 수도 있고 심리학이나 역사 같은 하나의 큰 학문일 수도 있는데요. 계속 하고 있는 생각이에요. 그게 내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책에 53개의 글이 실려 있어요. 1년 동안 한 주에 한 꼭지씩 읽어도 되지만, 꼭 시간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이 책을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요?
우선 한 번 다 읽고 나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감상을 쓰실 때 한 꼭지씩 읽어 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못 기다릴 것 같아요. 한 주에 한 꼭지만 읽는 걸 못할 것 같은 느낌인데요. 한 번 책을 다 읽으시고 어떤 책인지 느낌을 받으시면, 그 뒤에는 따라가시면서 재독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어떤 분은 일주일에 한 꼭지씩만 읽을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읽는 방법은 독자 분들이 결정하시는 건데, 한 번은 책 전체를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내 안에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많이 담아놓고 사는 게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책 한 권 한 권마다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하나씩 내 안에 담는다고 생각하시면 책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실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책 중에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이라는 책이 있어요.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가 독서를 통해서 성장하는 이야기예요. 그 소설에서 아이의 할머니가 아이의 엄마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는 눈으로 보지 않는 은밀한 세계를 가져야 해, 그래야 이 세상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추악해도 상상의 세계에 살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대목인데요. 제가 생각할 때는 눈으로 보지 못하는 책이나 이야기를 우리 안에 담아놓는 게 내가 나를 위로하는 일인 것 같아요. 내가 내게 힘을 주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책 읽기가 덜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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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겠습니다 (핑크)황보름 저 | 어떤책
타이머를 20분에 맞추고 책에 완전히 몰두하고, 머리카락을 드라이어로 말리면서도 책을 읽고, 밑줄 친 문장들을 두세 시간에 걸쳐 옮겨 적는 황보름 저자의 이야기가 책을 읽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책사랑
2018.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