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
『문명과 전쟁』이 무엇보다 학술적 작업이기는 해도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학자들이 더 관심을 가질 전문적인 논점들은 가능한 한 주에 넣었으므로, 그 부분을 읽을지 말지는 독자 여러분이 선택하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지적인 모험에 같이 참여해보자는 초대이다. 이 책을 준비하며 읽고 쓰는 과정은 모든 것을 잊을 만큼 흥미로웠으며 나에겐 엄청난 기쁨의 원천이었다. 부디 이 점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희망한다.
글ㆍ사진 아자 카트(Azar Gat)
2017.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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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전쟁』은 야심찬 작업물이다. 이 책은 ‘전쟁의 수수께끼’와 관련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찾아 나선다. 사람들은 왜 죽음을 부르는 파괴적인 싸움을 벌일까? 싸움은 인간 본성에 뿌리박고 있을까, 아니면 나중에 나타난 문화적 발명품일까? 사람들은 처음부터 늘 싸움을 해왔을까, 아니면 농업ㆍ국가ㆍ문명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싸우기 시작했을까? 인류의 역사에서 농업ㆍ국가ㆍ문명과 이후의 중요한 발전들은 전쟁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역으로 전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만약에 전쟁을 없앨 수 있다면, 어떤 조건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리고 전쟁은 현재 감소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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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 레반트에서 나온 중석기시대의 암각화. 궁수들의 싸움.

 

이런 질문들은 새롭지 않으며 결정적인 답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이런 질문과 그 대답 모두 상투적 문구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사실 이런 질문이 엄밀하고 포괄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었던 적은 드물었으며, 진지하게 학문적으로 다루기에는 너무 ‘거창한’ 질문이라고 여겨져 왔다. 전쟁은 그 외의 모든 것들과 연관되어 있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다시 전쟁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인류 발전 전반과 관련해 전쟁을 설명하고 전쟁의 발달을 추적하는 작업은 거의 모든 것의 이론과 역사가 되어버린다.

 

이 주제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연관되어 있어서, 연구를 위해서는 ‘모든 것들’을 매우 많이 읽어야 하며 다방면에 충분히 전문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을 쓰기 위해 충족시켜야 했던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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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책은 전쟁이라는 주제를 좇아 방대한 범위의 학문 분야와 지식 분과에서 정보와 통찰력을 끌어낸다. 몇 가지만 들더라도 동물행동학, 진화론, 진화심리학, 인류학, 고고학, 역사학, 역사사회학, 정치학이 포함된다. 이들 각각의 분야와 분과는 학제간 벽으로 서로 분리되어 대체로 저마다 자족적으로 남아 있으며, 서로가 노골적으로 적대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분야의 방법론, 관점, 지식체계 등을 모르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각각의 학문 분야에는 특정 주제와 그것을 연구하기 위해 엄선한 방법론, 일련의 지배적인 연구 질문들, 그리고 특히 독특한 전문용어, 역사적 발전, 유행하는 관심사들이 있다. 이 모든 것이 한데 모여 그 학문의 ‘문화’를 구성하며, 좋은 질문과 수용할 수 있는 답, 타당한 학술적 추구를 규정하는 각 학문의 ‘표준적 연구’-전문적 훈련을 통해 흡수하는-의 기준을 세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다루게 될 서로 다른 문화ㆍ사회ㆍ국가처럼, 각각의 학문은 으레 나머지 학문을 이질적으로 여기고 상대의 언어가 별나다고 생각하며 서로의 학술적 의제를 잘못 해석하곤 한다. 심지어 관련 주제를 다룰 때조차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힘들어하거나, 다른 학문 분야의 작업을 자신들의 관심사와 연관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심한 경우, 특히나 관련 주제를 다룰 때에는 대개 학문들 사이에 회의주의, 경멸, 심지어 조롱이 만연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더러 그런 상황이 정당화되기도 하는데, 학문이란 특정한 연구 주제에는 더 강하고 나머지에는 약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문학과 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랫동안 생물학과 인간생물학이 사실상 자신의 주제와 무관하다고 믿도록 훈련을 받아왔다. 역사학자들은 각 시대와 장소의 특수성을 부주의하게 다루는 사회학자들의 태도와 종종 조잡한 모델링 작업에 질겁하곤 한다. 반면에 사회학자들은 역사학자들이 특정 시기와 사회의 사소한 부분들을 재구성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하는 나머지 더욱 폭넓고 전반적인 그림을 보지 못한다고 믿는다.

 

이 책을 이끌어나가는 폭넓은 학제간 관점은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전체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기존 지식에 대한 개관이나 단순한 종합이 아니고 교과서는 더더욱 아니며,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본격적인 연구서로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학문의 풍부한 학술적 문헌을 토대로 삼아 거기에서 엄청난 도움을 받는 것 못지않게, 이 책은 여기서 다루는 거의 모든 논점에 관한 기존의 수많은 연구와 논제에 이의를 제기한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나무와 숲처럼, 폭넓은 학제간 관점은 특정 영역에서 연구하는 전문 학자들이 자주 놓치곤 하는, 그러나 그들에게 도움이 될 새롭고 유의미한 통찰을 끌어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분명 그런 작업을 학술적으로 견고하게 하면서 숲으로 나무들을 대신할 순 없는 법이며, 아울러 모든 것은 기존의 연구와 사실에 확실하게 근거를 두어야 한다. 여기서 제시한 작업을 가장 엄격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그리고 그 열매를 관련된 다양한 학술 공동체에 전달하기 위해 나는 이 책의 논제들을 관련 학문의 학술지에 논문 형식으로 발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 논문들을 이 책으로 옮겼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불가피한 오류들에 관해선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란다.

 

그러나 이 책이 무엇보다 학술적 작업이기는 해도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학자들이 더 관심을 가질 전문적인 논점들은 가능한 한 주에 넣었으므로, 그 부분을 읽을지 말지는 독자 여러분이 선택하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지적인 모험에 같이 참여해보자는 초대이다. 이 책을 준비하며 읽고 쓰는 과정은 모든 것을 잊을 만큼 흥미로웠으며 나에겐 엄청난 기쁨의 원천이었다. 부디 이 점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희망한다.


이 프로젝트는 전쟁 연구에 대한 평생의 열정이 낳은 결정판이다. 이스라엘에서 자라면서 어떻게 그런 열정이 생겼고 자라났는지 궁금하게 여길 독자도 있을 것이다. 1967년 6월, 아랍과 이스라엘의 6일 전쟁이 일어났던 때에 나는 여덟 살이었고, 2학년을 마치고 막힘없이 읽는 능력을 습득하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주제는 그 무렵부터 나의 독서와 생각에서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그것이 옥스퍼드대의 박사학위와 학술적 경력, 그리고 근대 유럽의 군사사상에 관한 일련의 저술로 이어졌다. 그러다 드디어 궁극적으로 전쟁이 무엇인지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현상과 맞붙어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기에 이르렀다. 넓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길 좋아하는 역사학자로서 훈련을 받고 정치학과에서 가르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전혀 새로운 지식 분야, 사실상 신세계에 익숙해져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나 개인에게는 이 작업이 가장 보람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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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뉴욕 시 테러 공격. 다음 단계는 비재래식 테러일까?
 

이 책을 집필하는 데 1996년부터 2005년까지 9년이 걸렸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무렵엔 냉전이 끝나고 평화로운 ‘새로운 세계 질서’가 선포되었다. 그리고 2001년 9월 11일 미국에 대한 공격이 종래와는 다른 테러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전쟁이 다시 시사문제로 떠오르고 대중의 관심과 염려의 대상이 된 후에 작업을 끝마쳤다. 비록 이런 사건들의 흔적이 불가피하게 이 책에, 특히 끝에서 두번째 장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의 이면에 놓인 동기와 중요한 논증들은 그런 사건들과는 독립적이다. 아울러, 포괄적인 이해를 목표로 하는 이 책이 세계의 발전?과거와 현재의?을 지켜보며 전쟁이라는 수수께끼를 생각하게 된 모든 독자에게 쓸모가 있기를 바란다.

 

텔아비브에서
아자 가트 Azar Gat


 

 

문명과 전쟁아자 가트 저 / 오숙은, 이재만 공역 | 교유서가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명과 전쟁이 어떻게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해왔는지를 추적하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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