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 이제 만화로 공부하자
『만화 동사의 맛』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초반에 『동사의 맛』 원작자인 김정선 작가님을 만나 뵈었다. 작가님께 예시로 보내 드린 만화에 대해 여쭈어 보았는데 돌아온 답변이 충격이었다. (2017.08.08)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책 속 인물과 내용이 머릿속에 이미지로 두둥실 떠오른다. 그럴 때면 책에 더욱 몰입하게 되고 읽는 속도도 빨라져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는 말의 의미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물론 그 이미지가 원작자의 생각과 완전히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말했듯 신의 영역과 작가의 영역 그리고 독자의 영역이 있다면 나는 독자의 영역에 충실할 뿐이리라. 『동사의 맛』은 내게 그런 경험을 안겨 주었다.
어느 날 마음에 들어오는 한 줄의 문장, 아니 단 하나의 단어라도 얻고자 무작정 서점에 들어가서 책 사이사이를 기웃거리다 『동사의 맛』을 발견했다. 서가의 수많은 책 중 『동사의 맛』을 꺼낸 이유는 다름 아닌 제목 때문이었다. 잘못 생각하면 ‘얼어 죽은 무언가의 맛’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으스스한 제목이 아닌가. 다행히 『동사의 맛』은 우리말 움직씨, 그러니까 동사에 관한 공부책이었다. 서점 구석에 모로 앉아 읽기 시작한 『동사의 맛』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공부책이라면 마땅히 실질적인 쓸모만으로 채워져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마치 소설처럼 등장인물, 배경 그리고 사건 속에 동사를 녹여내 쉽고 친근하게 동사의 활용법을 알려 주고 있었다. 다시 말해 공부책임은 틀림없지만 소설로 읽기에도 충분한, 본격 스토리텔링 공부책이랄까. 그날 서점에서 발견한 『동사의 맛』은 내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의 화자와 남자주인공 그리고 배경이 되는 종로구 사직동 일대였다. 『만화 동사의 맛』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초반에 『동사의 맛』 원작자인 김정선 작가님을 만나 뵈었다. 작가님께 예시로 보내 드린 만화에 대해 여쭈어 보았는데 돌아온 답변이 충격이었다.
“화자를 여자로 바꿔서 그리셨네요?”
“네? 네…….”
아니다. 바꿔서 그린 것이 아니라 단지 화자가 남자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나는 글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제멋대로 작업을 진행한 셈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작업을 보여 드렸다는 생각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있는 찰나에 작가님께서 “확실히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낫겠네요”라고 말씀해 주셔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만화가로 계속 그림만 그리다 보면 쓰기나 읽기 그리고 한글 문법 같은 것을 놓치기 일쑤다. 그저 멋진 캐릭터와 장면 또는 연출에만 신경 쓴 나머지 대사나 문장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한 만화도 꽤 많다.
나 역시 글보다는 그림을 중시하는 만화가였으므로 이 일화는 내 만화 인생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나는 거의 오독에 가까운 읽기를 해 왔던 것일까? 마음을 부여잡고 찬찬히 『동사의 맛』을 읽어 나가면서 내 근심은 점점 더 커다란 갈증으로 변해 버렸다. 머릿속이 더 읽고 싶고, 더 배우고 싶고, 더 단단히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점철되었다.
평소 공부책을 딱딱하고 지루한 책이라고만 생각했던 독자들에게 이 만화가 글쓰기 공부에 입문하는 통로가 되면 좋겠다. 『동사의 맛』은 글쓰기를 업으로 삼거나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만의 책이 아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어우러진 동사와 그 기본형, 활용형을 접하다 보면 글쓰기에 익숙지 않은 독자도 어느새 자신이 쓴 어색한 문장을 스스로 가꾸고, 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화를 다 보고 동사의 활용법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면 주저하지 말고 원작 『동사의 맛』을 읽어 보시길 바란다. 만화 『동사의 맛』은 지면 관계상 원작의 일부 에피소드만 다루었다. 부족한 만화를 책으로 만들어 보려고 찾아간 나를 내치지 않고 작업하는 동안 틈틈이 서울로 불러 밥도 사 주시고 좋은 말씀도 건네주신 원작자 김정선 작가님께 감사하다.
만화가 나오기까지 다방면으로 수고하신 유유출판사 분들께도 고맙다.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단단하게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