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콘다로 빙의한 ‘화나콘다’가 허영으로 뒤덮인 힙합 신에 일침을 가한다. 사태를 초래한 주범은 힙합을 상업과 영합시킨 <쇼미더머니>. 지난 2006년, 힙합의 부흥을 꿈꾸며 「그날이 오면」을 노래하던 화나는 이번 「가족계획」에서 ‘여전히 오지 않을 그 날’이라 외치며 ‘그 날’에 대한 회한을 드러낸다. 힙합에 대한 편견이 비교적 사그라지고 많은 대중에게 랩의 작법이 친숙해진 것이 언뜻 힙합의 성공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힙합의 성공’이 아닌 ‘<쇼미더머니>의 성공’임을 들추고 있다.
진작 현란한 랩으로 인정받은 그는
그럼에도 역시 앨범의 가장 큰 핵심은 메시지. 그의 진솔한 이야기는 언더그라운드 래퍼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예술을 올곧이 구가하는 순수종을 포괄하기에 더욱 대중적으로 기능한다. 전반부 힙합 신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여 「POWER」에서 그가 겪은 고초를 개인의 시점 안으로 회귀한 후, 후반부 「대면」, 「세상이 어디로」를 통해 각종 문제의식을 사회 전체로 확장시킨다. 이센스 「독」의 감상을 연상시키는 「대면」이 인상적이다.
이 모든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프로듀서 김박첼라의 빼어난 성취가 돋보인다. 록의 타격감을 기반으로 각 곡의 성격에 맞춰 얼터너티브하게 변용한 사운드가 특정 장르에 구속되지 않은 개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야말로 화나콘다(fanaconda)를 형상화한 셈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악기를 활용한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태평소와 해금 등을 사용한 「FANACONDA」, 「진실은 저 너머」와 같은 곡들이 한국 힙합 고유 정체성의 단초를 영민히 싹틔워낸다.
자본의 권위에 굴복한 온갖 거짓과 폐해를 꼬집는 화나. 4년 만에 신보로 찾아온 그는 전작보다 더욱 시의적이고 사회적이며, 예술적인 지점에서 그만의 목소리를 낸다. <쇼미더머니6>의 방영을 앞둔 시점에서, 상당한 가격을 호가하는 본 앨범이 초판 품절된 현상은 힙합 고유의 가치를 상업주의 원칙으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을 방증한다.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