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뮤지컬] <멤피스> 글래디스, 잘못된 나를 버릴 줄 아는 어른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가 차별과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 뮤지컬 <멤피스> 속 글래디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글 :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 쇼노트
202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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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음악을 사랑하는 백인 청년과 흑인 가수의 러브 스토리. 뮤지컬 <멤피스>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1951년 미국 멤피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74년 전, 한국에서는 10,0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벌어졌다. 작품을 둘러싼 인종 갈등은 오롯이 우리의 것도 아니다. 하지만 2025년 서울 한복판에서 공연 중인 <멤피스>는 아주 뜨겁다. 흥겹고 화려한 로큰롤 음악과 춤이라는 쇼뮤지컬의 요소들이 관객을 먼저 사로잡지만, 무엇보다 작품이 ‘인종’이라는 소재로 차별과 혐오를 넘어 공존의 주제를 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종 분리 정책이 한창이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유색 인종 차별은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거리는 유색 인종을 향한 물리적 폭력과 위협으로 가득하고, 비하와 조롱 같은 언어폭력도 쉽게 발견된다. 로큰롤은 ‘흑인’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탄의 음악”이라 불렸다.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차별을 더욱더 단단하게 만드는 걸까. 휴이의 엄마, 글래디스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보수적인 글래디스는 다른 인종의 삶을 모르는 것을 넘어 논외의 대상으로 여긴다. ‘못 됐다’라거나 ‘무섭다’라는 유색 인종에 대한 인상 역시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이지만, 구체적인 의문은 갖지 않는다. 무지와 편견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글래디스가 나만 옳다는 믿음에 매몰되어 상대를 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나이가 많고 신념이 굳건하다는 점에서 글래디스는 변화가 가장 어려운 사람처럼도 보인다. 

 

<멤피스>는 차별과 편견을 깨고 공존하는 법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뮤지컬은 백인 청년 휴이가 흑인 클럽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휴이는 흑인 음악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듣고 자랐지만, 로큰롤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던 길잃은 그를 구원했다. 영혼의 노래를 찾은 휴이는 백인에게 불법으로 여겨지던 언더그라운드에 기꺼이 들어간다. 짧은 오프닝에서 작품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했던 것을 마주한다면, 호기심을 갖고 대상과 가까워지려 노력할 것. 이후 휴이는 백인 전용 백화점과 라디오에서 로큰롤을 전파한다. 음악은 낯선 세상과의 접촉면을 늘리는 도구가 되고, 휴이는 이들을 다양한 삶의 경험으로 이끌며 변화의 중심에 선다. 

 


휴이가 로큰롤로 세계를 확장한다면, 글래디스는 종교를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기독교가 백인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그는 할렘 출신 목사의 예배에 출석한 후 알게 된다. 그들 역시 나약한 순간에 신을 찾고, 강하고 담대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기도한다는 것을. 신을 향한 같은 마음을 찾아낸 글래디스는 자신의 믿음이 그동안 얼마나 기울어져 있었는지를 감각한다. 새롭게 마주한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고, 글래디스는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나답지 않은 일”을 계속하기로 다짐한다. 그의 변화는 오랜 고민 끝에 스스로 교회를 찾은 본인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낯선 이를 향한 환대의 결과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우리가 글래디스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차별은 무지의 두려움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분리된 공간은 서로의 삶을 차단하고, ‘알 수 없다’라는 사실이 상대를 쉽게 추측하고 단정 짓게 한다. 의심 없는 맹목적인 믿음 역시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방해한다. 그러니 공존을 위해서는 불편하더라도 조금씩 자리를 내고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서로를 구체화하기 위한 휴이의 음악과 글래디스의 종교 같은 공통의 감각도 필요하다. 구체적인 얼굴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가치를 일깨운다. 글래디스가 펠리샤를 ‘아가씨’가 아닌 ‘펠리샤’로 지칭했을 때, 그가 흑인 여성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처럼. 

 

사실 글래디스는 140분간의 뮤지컬에서 6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만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나 누군가를 배제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 비해 갈등의 범위는 촘촘해졌고, 상황과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목소리도 커져만 간다. 누구나 차별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차별의 순간에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웃음 뒤에 새겨진 글래디스의 질문이 묵직하다. 당신은 어디의 글래디스인가. 나를 둘러싼 차별과 편견의 자각, 변화를 위한 행동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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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엔터테인먼트 웹매거진 <매거진t>와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10년 동안 콘텐츠 프로듀서와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다. 공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무형의 생각을 무대라는 유형의 것으로 표현해내는 공연예술과 관객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