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강력한 록을 만난다. 여기서 록은 당장의 트렌드인 포스트록이나 신스록 혹은 일렉트로닉 록이 아닌 전성기 1970-80년대에 록 인구에 회자된 재래(在來), 정통 록이다. 주체는 어두웠던 1970년대 후반에 한국 록 부활의 불을 밝힌 산울림의 김창훈. 그는 3형제 그룹 산울림의 둘째로 또 1992년부터 솔로로 록의 행보를 지속적으로 밟아왔지만 더욱 록을 본격화하기 위해 올해 들어 밴드 ‘블랙 스톤스(Black Stones)를 결성했다.
이번 앨범은 ‘김창훈과 블랙 스톤스’를 대중들에게 신고하는 의미의 처녀작이다. 하지만 신곡으로 엮은 게 아니라 그간 김창훈이 산울림 시절에 남긴 명작들 「황무지」, 「회상」, 「독백」, 「산할아버지」 등과 대학가요제의 시그니처 송 「나 어떡해」, ‘댄싱 퀸’ 김완선에 준 곡들인 「오늘 밤」, 「나 홀로 뜰 앞에서」, 2012년 솔로 3집의 동명 타이틀곡 「행복이 보낸 편지」 등 11곡 전부 기존 작품으로 채웠다. 밴드는 따라서 신보를 ‘0집’으로 명명한다. 우선은 산울림의 또 다른 한 축이었던 김창훈의 중후한 존재감을 알리려는 의도를 담았다.
친숙한 곡들이지만 록 사운드 틀과 규범에 충실하다. 동요 같은 「산할아버지」 그리고 김완선에게 제공해 ‘댄스’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나 홀로 뜰 앞에서」(김완선이 보컬에 참여했다)와 「오늘밤」은 기본이 강력한 록임을 재확인한다. 강성 록은 포효를 동반해야 제격이다. 「황무지「와 「특급열차」에서의 그로울링(growling) 울림과 아우성은 놀랍다. 김창훈은 블랙 스톤스 밴드 결성의 이유를 ‘본능’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앨범의 사운드와 보컬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은 아마도 그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블랙 스톤스의 리더이자 앨범의 편곡과 프로듀싱을 담당한 유병열은 그 본능을 인테리어 화했다. 자신의 빼어난 기타 솔로에다 안정된 베이스와 드럼을 지휘하면서 전체 문법을 강하고도 미끈한 록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상당수 곡에서 클라이맥스로 고조시켜가는 후반부 강조 방식은 록의 동격인 공연을 염두에 둔 편곡이다. 이미 디지털 싱글로 공개한 곡 「독백」의 경우는 이러한 접근으로 새롭게 재탄생했다. 밴드의 견고한 연주 덕에 김창훈의 와글거리고 때로는 아마추어 같은 순수한 보컬이 한층 살아나는 느낌이다.
김창훈의 변화무쌍하고 광대한 표현 영역이 단연 놀랍다. 처절한 「황무지」, 감상적인 「나 홀로 뜰 앞에서」, 귀여운 「산할아버지」, 서정적인 「회상」을 한 사람이 모두 작사 작곡했다고는 믿기 어렵다. 「회상」, 「독백」, 「화초」, 「초야」는 놓쳐서는 안 되는 김창훈 서정성의 꼭짓점이다. 앨범이 다채로움으로 가득한 것은 다양하게 곡을 풀어내는 장인의 솜씨에서 비롯된다. 빨리 ‘1집’을 듣고 싶다.
임진모(jjinmoo@izm.co.kr)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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