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미각의 비밀』의 저자 ‘존 매퀘이드’에게 묻다
나는 우리가 음식과 맛에 관한 한 아주 흥미진진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화와 인터넷 덕분에 더 많은 문화적 교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셰프들은 새로운 기술을 시험하고 있고, 과학자와 셰프 들은 복잡한 새 향미들을 만들어내는 발효의 잠재력을 막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글ㆍ사진 박찬일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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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왼)과 존 매퀘이드

 

맛을 가르는 방법은 대단히 다양하다. 우선 감정의 카테고리가 있다. 어머니의 손맛, 늙은 주방장의 신뢰 있는 맛, 첫사랑과 나눴던 음식들, 친구들과 신나는 간식. 여기에 인문과 정치의 영역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맛은 실증적인 과학의 세계다. 맛을 과학의 영역으로 다룬 책은 꽤 있었다. 그것들은 텍스트로서 훌륭했다. 『미각의 비밀』은 두어 걸음 더 나아간다. 심지어 백만 년 전 현생 인류의 먼 조상의 ‘미각’까지 파고든다. 고고학에서도 맛을 추출해낸다. 화학과 물리학이라는 맛의 본질적 과학을 먹기 좋게 만들어서 입에 쏙쏙 넣어준다. 읽는 내내 지적 충만감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저자 존 매퀘이드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 그가 쓴 글은 잡지 <스미스소니언> <와이어드> <이팅 웰>과 워싱턴 포스트, 포브스닷컴 등에 실렸다. 퓰리처상을 비롯해 미국과학진흥협회, 미국생물과학협회, 국제요리전문가협회로부터 상을 받았고 저서로는 『파괴 경로: 뉴올리언스의 파괴와 다가오는 초폭풍 시대』(공저)가 있다.

 

정서적 부분에서의 맛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박찬일: 당신은 『미각의 비밀』에서 “맛은 진화를 위한 추진력을, 그리고 최근에는 인간 문화와 사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추진력을 제공했다. 그것은 인간의 투쟁과 갈망과 실패가 써졌다 지워졌다 다시 써지길 반복하는 일종의 서판이었다. 우리의 존재 자체와 인간성도 맛에 큰 빚을 졌으며, 맛은 많은 점에서 우리의 미래도 좌우한다.”(20~21쪽)라고 썼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인간 진화의 전체 과정에서 미각이 추진력을 제공한 가장 드라마틱한 국면 혹은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존 매퀘이드: 인류의 미각 이야기에서 일어난 가장 큰 혁명적인 변화를 한 가지만 꼽으라면, 불을 다스리게 된 사건과 그와 함께 일어난 조리의 발명을 들 수 있습니다. 조리된 음식, 그중에서도 특히 고기는 날것보다 실질적인 이득이 있었거든요. 씹기도 쉽고 소화하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부패하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리지요. 이런 이유들 때문에 과학자들은 조리된 고기가 우리의 음식에 추가된 사건(약 200만~250만 년 전에 일어난)이 우리 뇌를 더 크게 만든 영양학적 요인이라고 믿습니다. 과학자들은 대체로 조리한 음식이 날것보다 맛이 아주 훨씬 더 좋다는 사실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가 더 커지고, 인간 문화가 사냥과 축제 의식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자, 음식이 주는 감각적 즐거움은 점점 더 강렬하고 복잡해지면서 크게 발전했지요.

 

박찬일: 맛은 원래 전통적으로 네 개(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에서 감칠맛, 즉 우마미가 추가되어 이제는 다섯 개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학계에서는 지방맛이 추가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시 추가될 맛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실제 우리가 소화시키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 ‘금속’ 맛도 맛의 영역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존 매퀘이드: 계속 진행되는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미각 체계는 우리가 불과 10년 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혀는 불과 몇 가지가 아니라 많은 것을 감지하고 많은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지방도 하나의 맛(단지 부드러운 질감이나 입에 닿는 촉감이 아니라)이라는 증거가 일부 있고, 한때 대개 아무 맛이 없다고 간주된 녹말(밥, 국수, 빵에 포함된) 역시 독특한 맛 지문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탄산음료에 포함된 것과 같은 이산화탄소입니다. 금속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금속’ 맛 중 일부 요소는 전기적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짠맛과 신맛은 미각 세포들에서 분자적 전기 회로를 통해 탐지됩니다. 그런데 금속도 이것을 활성화시킵니다.

 

박찬일: 당신은 이 책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섯 가지 미각 중 짠맛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짠맛을 내게 하는 원료인 소금은, 인간 진화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체로써 인간의 생존에 관련된 맛이기에 그럴 것이라 짐작합니다(물론 다른 나라나 문화권도 해당하는 사항일 수 있지만). 한국 음식 문화의 기본은 염장 문화라고 할 수 있고 한국에서는 지역마다 ‘짠맛’ 혹은 ‘짠 정도’에 대한 선호도가 다릅니다. 즉 맛있다고 느끼는 짠 정도에 지역차, 개인차가 존재하는 것이고, 한편으론 그것이 음식 문화의 발달을 이끌어옴으로써 한국인에게는 다른 미각의 특이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인간 진화사에 있어서 ‘짠맛’의 역할이 있다고 할 수 있는지요? 있다면 어떤 것일지요?

 

존 매퀘이드: 소금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참 흥미로운 맛입니다.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소금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섭취하면 죽을 수도 있죠. 따라서 인간은 소금에 대해 두 가지 ‘대응 방안’을 마련했지요. 적은 양은 맛있게 느끼지만, 많은 양은 끔찍하게 느끼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작동합니다. 만약 몸에 염분이 부족하면, 갑자기 소금을 강렬하게 욕구하면서 많은 양이라도 맛있게 느끼는 거지요. 소금이 아주 맛있게 느껴지는 한 가지 이유는 다른 향미들을 높이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소금을 첨가하면 거의 어떤 것이라도 향미가 더 높아집니다. 소금이 누구나 찾는 그토록 보편적인 양념이 된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박찬일: 맛은 정서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합니다. 이를 테면, 일본에서 유명한 작가 후지와라 신야는 티베트의 곰파(사찰)에서 ‘파파’라고 부르는 보리떡을 먹고 구토를 합니다. 그러나 며칠을 그 수행공간에서 지낸 후 그 음식이 ‘맛이 있다’는 걸 알아냅니다. 단지 결핍에서 오는 허기뿐 아니라 정서적 이유도 작용했다고 봅니다만, 당신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존 매퀘이드: 음식과 맛은 우리의 가장 깊은 기억과 감정과 연결돼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자궁 속에서 지내던 시절, 그러니까 우리가 어머니가 먹고 마시던 것의 맛을 느끼던 시절까지 되돌아가지요. 그리고 살아온 경험은 우리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데 막대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한 문화에 사는 사람이 맛있게 느끼는 것을 다른 나라 사람은 역겹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력이 아주 뛰어난 동물인데, 그 능력의 일부는 거의 어떤 것이라도 그 맛을 좋아하도록(훈련을 통해) 길들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맛은 또한 사회적 경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즐기는 특정 음식이나 음료를 먹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박찬일: 맛에 있어서 정서의 중요성을 묻는 질문을 하나 더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홈메이드’ ‘엄마 손 맛’ 같은 말들을 마케팅에 이용하는 식으로 맛에 있어서 정서적인 부분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합니다. 이런 정서적 부분에서의 맛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존 매퀘이드: 물론이지요. 감정, 편견, 사회적 불안, 향수, 이 모든 것은 음식을 맛보는 우리의 경험에 영향을 미칩니다(그리고 마케터들은 이것을 아주 능숙하게 활용하지요!). 잘 알려진 실험이 있는데요, 사람들은 같은 와인이라도 더 높은 가격이 붙은 병에 든 것을 더 맛있게 느낀다는 겁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사람들에게 콜라를 마시게 하면서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위들을 촬영했습니다. 만약 그 음료에 코카콜라 캔 이미지를 동반할 경우, 사람들은 뇌가 평생 동안 경험한 콜라 상표와 광고에 접속할 때 그 경험을 더 즐겁게 느꼈습니다. 우리는 매우 유연한 동물입니다.


박찬일: 당신이 이 책에서 쓴 음식의 맛은 혀뿐 아니라 장에서도 분별한다는 말에 대한 과학적 검증 단계가 어디까지 이르렀습니까?

존 매퀘이드: 이 부문의 연구는 현재 아주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약 15년 전에 맛 유전자를 해독하는 방법을 발견하자마자, 몸의 다른 부분들에서도 미각 수용기―혀에서 특정 맛이 존재한다는 신호를 뇌로 보내는 특별한 단백질―를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미각 수용기를 창자뿐만 아니라, 뇌와 생식계, 근육, 콧구멍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장소에서 미각 수용기가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직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창자에 있는 미각 수용기의 한 가지 기능은 특정 영양물을 탐지해 뇌에 신호를 보냄으로써 식욕과 배부른 느낌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찬일: 어떤 기생충은 물고기에 기생하며 그 물고기의 혀를 먹어치우고는 그 혀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연구보고가 있습니다. 혀를 과연 외부 생물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장차 우리가 어떤 ‘외부 혀’를 장착한 상태에서 맛없는 음식을 맛있다고, 우리의 미각을 ‘속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더 조악한 음식을 먹고도 인류가 살아갈 수 있게 되고, 쾌락을 더 얻어서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존 매퀘이드: 맛과 냄새, 향미(즉, 맛과 냄새의 결합)를 나타내는 일종의 가상현실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시각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보다 훨씬 어려운 기술적 도전이 되겠지요. 음식이 아닌 것(대표적으로는 일종의 전극을 사용해)으로 혀를 자극하거나 뇌에 직접 맛 감각을 환기시키는 방법(그 방법은 아직 아무도 고안하지 못했지요)을 찾든가 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설사 뇌를 자극해 예컨대 구운 스테이크 향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이 되지 못하리란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음식을 경험하는 데에는 창자와 몸 전체가 관여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여전히 동물이고, 음식을 먹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경험입니다.

 

박찬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유럽에 매운맛의 원료인 고추가 전해져 유럽인들이 매운맛이라는 새로운 미각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앞으로 인간의 미각을 변화 혹은 진화시킬 새로운 사건이 생긴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이 되리라 예상하는지요?

 

존 매퀘이드: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삼차신경 맛―매운 고추와 생강, 서양고추냉이 같은(삼차신경을 통해 뇌에 도달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음)―은 완전히 다른 범주의 감각입니다. 이것은 엄밀하게는 맛이 아니라, 촉각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계에는 예기치 못한 감각을 일으키는 양념이 분명히 더 많이 있습니다. 나는 장과에서 추출한 미라쿨린 (miraculin)이라는 물질을 소량 먹을 때 신맛이 단맛처럼 느껴지는 ‘향미 트리핑(flavor tripping)’에 대해 쓴 적이 있지요. 이것은 맛 경험을 거꾸로 뒤집습니다.

 

박찬일: 앞으로 미각에 대한 과학 연구가 새롭게 밝혀낼 내용이나 핵심 테마는 무엇이라 예측하는지요?

 

존 매퀘이드: 나는 우리가 음식과 맛에 관한 한 아주 흥미진진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화와 인터넷 덕분에 더 많은 문화적 교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셰프들은 새로운 기술을 시험하고 있고, 과학자와 셰프 들은 복잡한 새 향미들을 만들어내는 발효의 잠재력을 막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과학은 우리가 향미를 겨우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아직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채 탐구되길 기다리고 있는 맛들의 조합은 문자 그대로 수천조 가지에 이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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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기자로 일하던 중 이탈리아 영화에 매혹되어 3년간 이탈리아에서 와인과 요리를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귀국해 셰프 생활을 시작했다.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제대로 권할 줄 아는 국내 몇 안 되는 요리사다. 트렌드세터들이 모이는 청담동,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 등의 레스토랑에서 이탈리아 음식 본연의 맛을 요리했다. 시칠리아 유학 당시 요리 스승이었던 주세페 바로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가장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요리를 만든다”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 ‘동해안 피문어와 홍천 찰옥수수찜을 곁들인 라비올리’,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과 청양고추’, ‘봄 담양 죽순찜 파스타’와 같은 우리 식재료의 원산지를 밝히는 명명법은 강남 일대 셰프들에게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

지은 책으로는 『보통날의 와인』,『보통날의 파스타』,『박찬일의 와인 셀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어쨌든, 잇태리』,『추억의 절반은 맛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