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품 경매회사의 신입으로 입사한 직후 컬렉팅을 시작했습니다. ‘컬렉터가 되어야지!’ 목적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작가와 작업이 내뿜는 에너지에 매료되어 나의 세계에 들이다 보니 어느새 작고 소중한 컬렉션이 만들어지더군요.
이후 100% 재택근무를 하는 미국회사에 입사 이후 개인사업, 이직한 현 직장에서까지 집에서 근무를 하게 된 지 4년 차.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일할 때도 밥 먹을 때도 나와 함께하는 이 작품들이 나의 단조로운 일상에 부어주는 이 상큼하고 따스한 에너지를 새삼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술시장에 몸담고 있다 보니, 미술품을 시장 관점으로 바라보고 설명하고 구매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구매 후 가치가 올랐을 때 다시 재판매한 작품도 많고요. 그러나 한 두 푼이 아니기에 투자를 생각하며 소장하게 된 작품이라도, 집에 걸어두게 된 작품들은 결국 제 일상 속에 스며들고 깊은 정이 들어버려 ‘내 새끼’가 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희로애락을 조용히 다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숨결이 담겨있는 그 작품들과 매번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연재에서는, 나의 작고 소중한 컬렉션의 ‘내 새끼들’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제 ‘작소컬’의 시작과 현재를 사적이지만 누구나 쉽게 따라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로 녹여 공유해보겠습니다.
일상 속 기분좋은 달콤함, 김재용의 핑크 스파클링 도넛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 같은 건강 전도사였다. 콜라 먹지말고 단것도 먹지 말고 야식은 절대금지. 도넛은 아주 가끔씩 던X의 쬐그마한 먼치킨을 허락받아 맛보았을 뿐, 스프링클이 가득 뿌려진 글레이즈드 도넛은 어린시절 먹어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본가에서 독립해 자유를 만끽하던 20대 대학생이 된 나는 각종 글레이즈드 도넛과 온갖 형형색색 도넛을 사먹으며 미각의 자유를 만끽했다. ‘길티 플레져’ 일지라도, 설탕코팅이 한겹 입혀진 달콤한 도넛을 한입 파삭 베어 무는 행복은 나에겐 러닝머신에서 뛰는 한시간의 고통과 맞바꾸어도 그리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그로부터 또 몇 년이 지나 드디어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 27세의 어느 날, 나는 영원히 녹거나 썩지 않는 ‘핑크 글레이즈드 스프링클 도넛’을 소장하기에 이르렀다. 김재용 작가의 도넛과 함께하는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1973년 서울에서 출생, 미국에서 도자와 조각을 전공한 김재용은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애호가들에게는 ‘도넛 작가’ 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도예가이다. 그는 미국, 중국, 홍콩 상하이, 유럽 각지 등 전세계에서 수많은 전시를 개최하였고, 상하이의 파워롱 뮤지엄을 비롯한 유수 소장처에서 작품을 소장하기도 한 명망있는 작가이다.
작가는 사실 어릴 때부터 적록색약을 가지고 있었고, 작가의 꿈을 꿀 때부터 ‘포기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색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어두운 색만 사용해 그림을 그려오던 시기도 있었다고. 그러던 2008년, 뉴욕에서 생활하고 있던 그는 금융위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직격탄으로 맞으며 예술가로서의 꿈을 포기하느냐 끝까지 가 보느냐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꿈을 선택한 작가는 ‘정말 나를 즐겁게 하는 작업’을 하고자 했고 어린시절부터 좋아하던 도넛을 흙으로 빚기 시작했다. 절망의 시기가 가져온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 후 작가는 수천, 수만개의 각기 다른 도넛을 구워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색감과 감각을 통해 수많은 컬렉터와 미술계의 사랑을 받게 된다. 소위 ‘오픈 런’ 작가가 된 것이다. 내가 작품을 구매했던 서울옥션의 ‘Now, K-Art’ 전시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일매일 수많은 작품을 보는 회사이기에 직원들이 같은 작가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당시 동료 다섯 명 정도가 모두 김재용의 도넛을 한두점씩 소장하기 위해 “이건 제 도넛입니다. 제가 찜했어요” 하며 홀딩 경쟁 (?) 을 했던 기억이 있다.
사진 : 리빙센스
나는 작품을 소장한 후 액자를 하지 않고 뒷면의 홈을 이용해 벽에 그대로 걸어두며 감상하고 있다. 당연히 작품을 배치한 곳은 주방.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엽서를 액자로 만든 소품과 아래 위로 배치해 두었는데 이 작은 핑크도넛이 주는 기쁨이 매일 상당하다.
사진 : 리빙센스
주방에 걸어두었던 나의 도넛과 그 옆의 호박 포스트카드. 요리할 맛을 나게 하는 주방의 완성이었다.
“달콤한 음식을 마구 먹는 게 아니라 걸어 놓고 꿈처럼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바라보고 별처럼 쫓아가자는 생각에 여러 도넛을 만들었어요. 모두의 인생이 달콤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작가의 말처럼, 일상 속 반짝이는 핑크 도넛 같은 순간들이 더 많아지는 봄이길 바라본다.
컬렉팅 팁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의 가장 최신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창구는 요즘은 아무래도 작가의 인스타그램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 해 두고, 전시 소식도 팔로업 할 뿐 아니라 작가가 기존에 올렸던 작품들 중 마음에 드는 도상을 인스타그램의 ‘저장하기’ 기능을 이용해서 아카이브 해두자. 나의 경우에는 인스타그래밍을 하다가 우연히 스치게 되는 내 취향의 작업들, 작품들을 모두 저장해두고 주기적으로 훑어본다. (저장된 글들만 수백 개!) 몰랐던 작가들과 해외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되고, 오랜 기간 걸쳐 저장해둔 ‘아트’ 탭의 개별 포스팅들을 한 번에 모아서 보면 확실한 내 취향을 다시한번 발견하며 웃게 될 수도 있다.
확실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 생겼다면, 전시를 기다리기 보다 미리 갤러리나 에이전시에 연락해서 ‘ㅇㅇ 작가의 xx도상을 소장하고 싶다’ 라는 문의 메일 / 전화를 해두는 것이 좋다. 전시하지 않았거나 이전 전시에서 비슷한 도상이 판매되지 않은 작품이 있다면 프라이빗 세일 제안이 올 수도 있고 커미션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 다 불가하더라도, 이후 전시가 시작되기 전 갤러리스트들이 잠재 컬렉터를 파악하고 있는데 도움이 되고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컬렉터 풀’에 넣어 놓는 것을 추천한다.
*사진 출처 : 학고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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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널위한문화예술 시니어 아트 디렉터)
이화여대에서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한 뒤 영국 런던대 SOAS에서 동양미술사학 석사과정을 마친 김예지 씨는 서울옥션 홍콩 경매팀과 글로벌 사업팀, 세계 최대 글로벌 온라인 미술작품 거래 플랫폼 ‘아트시(ARTSY)’의 아시아 비즈니스팀 서울 담당 디렉터로 재직하며 전시 기획, 국내외 갤러리, 기관,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글로벌 미술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쌓았다. 현재는 문화예술전문미디어 널위한문화예술에서 시니어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