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공학도임에도 대학이나 연구소가 아닌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일하는 이가 있다. 『데이터는 답을 알고 있다』 이후 약 2년 8개월 만에 『쿠팡, 우리가 혁신하는 이유』로 독자들에게 다시 찾아온 저자 문석현이 그 주인공이다. 자신이 쌓은 지식을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 재미있게 일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그는 인터넷 쇼핑몰과 게임 업계 등에서 비즈니스 데이터 분석 전문가의 길을 걸었다. 현재는 조직을 떠나 ‘데이터경영연구소’를 설립해 비즈니스 데이터 분석에 관한 교육과 컨설팅을 하고 있다는 그를 『쿠팡, 우리가 혁신하는 이유』의 출간에 맞춰 만나봤다.
아이티(IT) 업계를 비롯해서 우리나라에서 주목할 만한 흥미로운 기업들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 우리는 지금 왜 하필 쿠팡에 대해 읽어야 할까요? 쿠팡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 회사인가요?
쿠팡은 처음 헤드헌터가 입사를 권유했을 때부터 파격적인 인상이었지만, 회사를 떠나는 순간까지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었어요. 헤드헌터가 ‘쿠팡은 다른 기업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어도 믿지 않았죠. 그런데 신규 입사자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신규 입사자들을 만나는 자리임에도 김범석 대표가 직접 나서서 회사의 비전과 전략, 그리고 문화에 대해서 한나절 가까이 설명을 해주더군요. 마치 투자 유치장에서 투자자에게 하듯이 대표가 직원을 존중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신규 입사자들이 여러 질문을 했는데, 김범석 대표가 그 많은 질문에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변해주었습니다. 이후 쿠팡에 다니면서도 회사가 직원들을 존중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어요. 회사가 나를 이렇게 대해주니 ‘이 회사 잘 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라고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능동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고 싶어지고요. 그래서 ‘나중에 내가 회사를 차리더라도 이런 회사를 만들고 싶다. 한국에 쿠팡 같은 회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쿠팡에서 일하는 동안 맡았던 직책이 PO(Product Owner)는 다른 회사에는 없고 쿠팡에만 있는 독특한 직책인데요. 그래서 쿠팡의 색깔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인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주세요.
쿠팡의 PO(Product Owner)라고 하는 직책은 사실 한국의 다른 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PO의 가장 큰 역할은 ‘우선순위 결정’입니다. 팀이 무슨 일을 할지를 정하는 게 일이지요. 보통, 조직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고, 조직 내에서 가장 힘이 있는 사람이 합니다. 그런데 쿠팡에서는 ‘우선순위 결정’은 PO 더러 하게 해놓고 정작 관리자로서의 권한은 주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힘으로 밀어붙일 수가 없죠. 오로지 실무자들을 대화로 설득하고 그들이 일의 필요성에 공감해서 스스로 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일을 진행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쿠팡에 있을 때 제가 구상했던 프로젝트들 중 절반도 못 했습니다.(웃음) 그래서 잘 안 됐던 일을 하나만 꼽기는 힘드네요.
뿌듯했던 일은 몇 가지 떠오르네요. 한번은 아마존의 상품 추천을 살펴보는데 서로 관계 있는 상품을 패키지로 한 번에 구매하는 기능이 있는 거예요. 당시 이 기능은 국내 어느 사이트에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쿠팡에서도 이 기능을 추가해보자고 팀에 제안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초기 연구 도중에 제가 회사를 떠났는데, 나중에 보니 실제로 기능이 추가되어 있더군요. 그걸 보니 ‘아, 다른 팀원들이 정말로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해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고맙고 뿌듯했어요.
『쿠팡, 우리가 혁신하는 이유』의 부제가 ‘수평적 조직문화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입니다. 쿠팡을 읽는 여러 가지 코드 중 특히 조직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조직문화가 바로 직원이 일하는 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이에요. 조직이 커지면 커질수록 경영자가 직접적으로 실무에 관여할 수 있는 범위는 줄어듭니다. 100명 미만의 작은 회사라면 경영자가 의사결정 하나하나에 직접 관여할 수 있어요. 다만 그것보다 커지면 불가능해지죠. 어떤 기업이든 경영진은 열정에 넘칩니다. 하지만 큰 조직이라면 직급이 내려갈수록 경영자의 의지와 에너지가 직원들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말단 직원들은 그저 ‘위에서는 뭐라고 떠들지만 나하고는 관계없는 이야기네. 시키는 일이나 잘하자’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조직은 경직되고 수동적이 됩니다. 경영자와 실무자의 이런 간극을 최대한 줄여줄 수 있는 장치가 바로 조직문화입니다. 그리고 구성원 모두에게 ‘우리는 공통의 정체성과 목표를 가지고 함께 뛰는 동료다’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은 조직문화이고요.
이런 점에서 볼 때 쿠팡의 조직문화에는 지금 우리 기업들이 배울 점들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문화만 가지고 회사가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치밀한 전략과 이것을 실행하는 열정이 없으면 안 되겠죠. 회사가 커질수록, 특히 현대의 IT 중심의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데이터를 통해 객관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이터 경영 등도 중요한 성공 요소입니다.
비즈니스 데이터 분석 전문가로서 쿠팡의 데이터 경영에 대해 다룬 부분이 눈길을 끄는데요. 기업들이 어떤 시각으로 데이터를 바라봐야 할지, 그리고 성공적인 데이터 경영을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사실 비즈니스 하는 데에 데이터를 참고한다는 것 자체는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에요. 국내 많은 기업들도 경영자들에게 올라가는 보고나 주간회의 자료를 보면 전부 데이터로 빼곡하게 들어 차 있잖아요. 어느 정도 기본적인 것들은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가 정작 어디에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면 문제가 보입니다. 한국 기업들에서는 데이터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조직의 수장이 이미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데이터를 놓고 자유롭게 의견을 내며 토론하기보다는 군대식으로 상사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조직문화이기 때문이죠. 이제는 이 단계를 넘어서 더 합리적이고 유연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조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평적인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쿠팡, 우리가 혁신하는 이유』에서 조직문화와 데이터 경영을 함께 이야기했고, 이 책에 나오는 쿠팡의 사례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쿠팡에는 아마존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IT 기업에서 일했던 외국인들이 많은데요. 외국인 동료들과 일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점이 있으신가요?
외국인 동료들과 협업하며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상대방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한국 사람들끼리 회의 할 때는 의견이 대립하면 이것을 싸움으로 인식하고 서로 이기려 듭니다. 즉, 어떻게든 상대방을 꼼짝 못 하게 만들어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이 목표가 되죠. 그런데 외국인 동료들은 ‘저 친구가 왜 저런 이야기를 하나? 혹시 내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면서 일단 들어보고, 그 논리가 타당하다고 생각되면 자신의 생각을 바꿀 줄도 압니다. 이런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는 점이 문화적으로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 사람들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해요. 예를 들어 “우리끼리라 하는 이야기인데…”라는 개념이 그들에게는 희박합니다. 더욱이 소위 ‘눈치’라고 하는 한국 사람들의 암묵적인 커뮤니케이션도 그들의 머릿속에는 없습니다. 이런 부분 때문에 점점 인식의 차이가 생기고 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봤습니다. 퍽 안타까운 경우였어요.
쿠팡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분분한 편인 것 같습니다. ‘쿠팡은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이므로 수년 내로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고요. 선생님께서도 책에서 쿠팡은 지금 ‘죽음의 계곡’에 있다고 하셨는데요. 쿠팡은 과연 이 계곡을 빠져나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사실 객관적인 여건만 보면 누가 봐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큰 폭의 적자를 내고 있는데다가 경쟁사들의 견제도 더욱 거세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쿠팡 비즈니스 전략이 그럴 수밖에 없는 전략입니다. 기존의 유통 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하겠다는 것이 목표니까요. 경쟁자의 입장에서는 사활을 걸고 막아야 하죠. 하지만 쿠팡은 경쟁자를 보지 않고 고객을 봅니다. 경쟁자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쿠팡의 브랜드 평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 전략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죠! 그렇다면 서비스가 안착할 때까지 쿠팡이 견딜 수 있느냐인데, 아마 김범석 대표와 쿠팡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쿠팡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세계적인 벤처 투자자들이 쿠팡에 투자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의 화두입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쿠팡의 혁신에 대해 쓴 저자로서 기업과 비즈니스맨들에게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해야 할지 말씀해주신다면?
현대의 직업 세계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변화의 핵심은 그동안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와 컴퓨터가 대신 하면서 점점 더 사람이 덜 필요한 구조가 된다는 것이죠. 산업화 이후에 공장이 자동화 되면서 공장 일을 기계가 맡고 대신 사람이 서비스와 사무직에 몰리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정보기술의 발달로 서비스업과 사무직 일자리까지 점점 줄어들어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옛날에는 팀 하나가 했던 일을 요즘은 혼자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성이 높아졌으니까요. 이제는 신기술 하나 때문에 사람이 평생토록 연마한 능력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혁신을 시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것을 용인하는 쿠팡의 문화에 그 답의 일부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면 우리 사회가 4차 산업혁명에서도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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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우리가 혁신하는 이유문석현 저 | 갈매나무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한국 기업, 어디서부터 혁신해야 할까? 『쿠팡, 우리가 혁신하는 이유』는 쿠팡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들이 혁신을 위해 지녀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동글
2017.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