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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에게 이 세상은 아직도 생지옥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저자 이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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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의 공기가 답답하고 뻑뻑하다고 느끼는 분들,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에 짓눌리고 버틸 여력이 없다고 여길 만큼 많이 지친 분들, 삶의 방향을 잡아 주는 나침반이 고장 났다고 여기는 분들, 다른 자아, 다른 영역, 다른 꿈, 다른 언어에 관심 많은 분들, 오지랖 넓고 다정하고 센 선배 언니들의 조언이 필요한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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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는 힘들 때마다 저자에게 힘이 되어 준 여성 작가 열 명의 삶과 필생의 역작을 조명한 책이다.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로자 룩셈부르크, 시몬 드 보부아르, 잉게보르크 바흐만,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프랑수아즈 사강, 실비아 플라스, 제인 오스틴이 그들이다. 이들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불온한’ 여성들이자 ‘나쁜 페미니스트’였다. 이화경 저자는 인생의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이들에게서 용기와 지혜를 얻었다. 또한 자신이 받은 그 에너지를 후배 여성들에게 전해 주려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열애를 읽는다』 『화투 치는 고양이』 『꾼: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등을 썼고, 제6회 현진건문학상 등을 받았다.

 

열 명 다 여성 작가군요. 이유가 있는지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바로 여성이고 글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생의 모든 불편을 초인적으로 감내하며 작품을 써 냈던 제인 오스틴의 작가적 견인주의를 빌려서 힘을 내고, 글쓰기의 고단함과 일상의 노동이 섞이면서 체력과 창의성이 고갈되는 걸 느낄 때 ‘집 안의 천사’부터 죽이라던 버지니아 울프의 독기 어린 질책으로 버티곤 했습니다. 그 외에도 너무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덟 분의 여성 작가를 통해 제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 명의 작가 중 선생님께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를 뽑는다면 누구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기보다는 영향을 받고 싶은 작가가 있다는 말이 더 맞겠는데요. 바로 로자 룩셈부르크입니다. 책에서도 썼다시피 로자 룩셈부르크는 어린 시절에 장애를 겪습니다. 육체적 불구성과 그런 인해 생긴 아웃사이더적인 성정에 저는 무척 공감했습니다. 저 역시 상처 때문에 아무도 믿지 않고 불행하다고 여겨 모두에게 적대적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소도시에서 저질러졌던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과 맞물리면서 세상을 뒤집어엎을 혁명, 금지된 모든 것을 위반하고 과거와 결별하는 혁명을 갈망하던 때에 로자 룩셈부르크를 처음 알게 되었죠. 그녀는 언제나 실천의 현장에 있었고, 그 현장의 한복판에서 살고 죽었습니다.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투쟁 중인 길거리나 감옥에서 생을 마치기를 소망했죠. 그녀는 삶이 제시하는 그 모든 것 속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를 갈망했습니다.

 

한 자 한 자 새기듯이 글을 써 내려간 느낌을 받았습니다. 깊이 교감한 것도 느껴지고요. 어떤 분을 얘기할 때 가장 힘드셨는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은 자신의 글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아주 섬세한 붓으로 작업하는 2인치 너비의 작은 상아 조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논리를 연마하기 위해 수도승처럼 글에 매달리고, 아침에는 냉수마찰을 해 가면서 혹독하고 날카롭게 펜을 벼렸습니다. 그분들의 섬세하고 강인하며 진실되고 치열한 글쓰기에 혹여 누가 되지는 않을지 문장마다 되짚어 보곤 했습니다. 지금도 제 문장의 한계로 그분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송구스러움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실비아 플라스를 다룰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가부장적인 세상의 유리 벽 안에 갇힌 여성 실존의 위태롭고 참혹한 비극적인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 준 작가였기 때문입니다. 허위로 가득 찬 세상과 가부장제에 대한 냉소와 허무 속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면서 문학적 완결성을 지향했던 모습에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 책은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등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는 분들의 삶을 쉽고 흥미롭게 소개했다는 점에서 ‘인물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각 인물들을 잘 조명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작가들의 주저작물을 선정한 다음에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텍스트들을 찾아 읽었습니다. 작가를 다룬 평전, 작가의 일기, 작가의 다른 저작물들, 작가와 긴밀하게 관련된 주변 인물들(부모, 형제, 친구, 애인, 동지, 적대자들), 편지들, 논문들, 시대적 상황에 대한 정보들도 최대한 구해서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울러 저의 삶과 연루된 지점들을 잇대면서 재구성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으리라 생각하시는지요?

 

지금 이곳의 공기가 답답하고 뻑뻑하다고 느끼는 분들,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에 짓눌리고 버틸 여력이 없다고 여길 만큼 많이 지친 분들, 삶의 방향을 잡아 주는 나침반이 고장 났다고 여기는 분들, 다른 자아, 다른 영역, 다른 꿈, 다른 언어에 관심 많은 분들, 오지랖 넓고 다정하고 센 선배 언니들의 조언이 필요한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작가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늘 타인과 세계를 향해 있었죠.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고, 어떻게 해야 잃지 않게 될까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냉대와 멸시를 받았던 경험들이 오히려 타인과 세계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단련시키지 않았을까요. 무엇보다 언어를 통해 존재 증명을 하고 실존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했던 여성 작가들이기에 가부장제의 허위를 꿰뚫는 힘센 통찰력과 타인의 고통을 보듬는 따뜻한 지성과 연민, 생에 대한 웅숭깊은 시선을 갖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다룬 분들 외에 요즘 선생님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여성은 누구인지요?

 

저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성에겐 충분치 않으며, 아직도 생지옥이라고 여기며, 당당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생산하고 돈 벌고 싸우고 창조하고 진보하고 세계의 전체성과 미래의 무한 속에서 자기를 초월하는 인생을 살라며 같이 고민해 주고 등 떠밀어 주고 아파해 주는 여성들(선배, 친구, 동지, 후배)이 제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이화경 저 | 행성B잎새
인생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힌트라도 주는 존재가 있다면 구원받는 기분일 것이다.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는 이화경 소설가가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추동력이 되어 준 여성 작가 열 명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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