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연극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배우의 연기력이 아닐까 싶다. 특히 직접 관객과 마주하며 생생하게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연극이라면 더더욱 높은 수준의 연기가 요구된다. 헌데 그 작품이 단 배우 두 명만 등장하는 2인 극이라면 어떨까? 아마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고 섬세한 연기로 관객들의 몰입을 극대화시켜야 할 것이다. 관객들은 오롯이 두 명의 배우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고, 배우들의 연기력에 따라 작품의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둑 맞은 책>은 굉장히 상징적인 작품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작품의 몰입도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연극 <도둑 맞은 책> 역시 단 두 명의 배우만 등장한다. 작은 소극장, 오직 한 개의 배경, 그리고 두 명의 배우. 이처럼 최소화된 조건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나리오 작가 서동윤은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스타 작가다. 그는 영화제에서 작품상에 각본상까지 타며 더 없이 행복한 순간을 만끽한다. 그러나 파티에서 의문의 쪽지를 받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눈을 떴을 땐 지하 작업실에 감금된 사실을 깨닫는다.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그 앞에 나타난 이는 자신의 보조작가였던 조영락. 조영락은 서동윤을 결박한 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나리오를 써 내려 갈 것을 요구한다. 결국 서동윤은 조영락의 요구대로,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살인을 하고 작품을 훔친다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본격 심리 스릴러를 표방하듯 작품은 시종일관 모호하고 아리송하다. 관객들은 두 사람의 대화, 그들이 써 내려가는 시나리오를 토대로 이야기의 진실을 함께 추리하게 된다. 시간을 넘나들고, 시나리오와 현실을 넘나들며 이야기는 쉴 새 없이 휘몰아친다.
사실 <도둑 맞은 책>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전개와 어딘가 익숙한 듯한 스토리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그 얇은 트릭을 감싸주는 건 서동윤 역을 맡은 배우 박호산의 놀라운 연기력이다. 처음 등장 순간부터 마지막 퇴장까지 그가 단 한 번도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는 처음부터 위선적이고, 탐욕적이고, 폭력적이면서 두려움이 많은 서동윤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은 디테일 하나 놓치지 않고 완벽히 서동윤을 표현해낸다. 그의 뛰어난 연기 덕분에 더 깊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반면 조영락을 연기한 조상웅의 연기는 다소 아쉬웠다. 2인 극이라면, 두 배우가 팽팽한 수평을 유지하며 작품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런 느낌이 전달되지 않았다. 함께 극을 이끌어가기에는 내공이 조금 부족한 듯 느껴졌다.
앞서 말했듯 <도둑 맞은 책>은 어디서 본 듯한 전개가 아쉽기도 하고, 다소 남성중심적인 시각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동윤을 감금하고 이 이야기 전체를 구성한 조영락의 캐릭터의 당위성도 조금 어색하기도 하다. 허나 이야기의 매끄러운 전개를 위해 영상을 적극 활용하는 점은 <도둑 맞은 책>만이 가진 장점이다. 시간과 공간이 제약된 연극무대에서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그 약점을 풀어나갈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다.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을 스릴 있게 그린 <도둑 맞은 책>은 2월 26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나무와 물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