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악한 걸까? 아픈 걸까?
그때 확실히 알았다. 정말 나쁜 사람은, 자기 자신 조차도 속이는 것이라고. 그는 자신의 악한 행동이 회사에 얼마나 많은 금전적, 조직적 손해를 끼치고, 내가 얼마나 자신을 위해 괴로워하고 힘들었는지를 눈꼽 만큼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글ㆍ사진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201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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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문장(안 이후 로소 보이는 문장)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차매 드디어 무리 앞에서 입술을 여신 예수님은 이렇게 당신의 말씀을 시작하셨다.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중략)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악을 행하지 않는다. 자신을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기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동기에 자주 마음이 걸리는 사람, 자신의 본성이 드러나게 될까 봐 마음 졸이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는 악은 결코 저질러지지 않는다. 이 세상의 악은 영적인 특권층에 의해 저질러진다.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 그들은 자기 성찰의 불쾌감을 눈꼽만큼도 견뎌 낼 마음이 없으면서 그걸 핑계 삼아 자기는 죄가 없는 깨끗한 존재라고 스스로 치부한다.

 

『거짓의 사람들』, 스캇 펙 지음, 128 쪽

 


1.

 

살다 보면 악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하고 습관적으로 사기를 치며 주변을 풍비박산 내는 사람들이다. 이런 이와 한번 엮이면 설령 그 관계가 아주 짧았다고 하더라도 후유증이 오래 남는다. 물론 나와 입장이 다르다거나, 또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에게 거짓말을 했다거나 하는 경우는 여기서 예외로 한다. 그런 정도를 악인으로 분류한다면, 세상에 악인 아닌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악마라 부르는 사람들, 종교적인 표현으로 ‘마귀에 들린’ 사람이 아닐까 의심을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지금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확신범들이다.


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런 직원을 한 명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자기 프라이드가 강했고, 추진력과 애사심을 표현해 내는 재주가 있었으며, 나처럼 귀 얇은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총애했고, 그가 콩으로 매주를 쑨다고 해도 믿었으며, 그래서 자주 독대했고 내 사적 생활까지 공유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원들이 단체로 항명을 했다. 그 사람이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것, 그리고 묵혀왔던 사실들이 줄줄줄 쏟아져 나왔다.


당사자는 억울하다며 회사를 그만뒀다. 그러나 똑 같은 일이 그가 새로 출근한 회사에서 3개월 만에, 그리도 또 그 다음 회사에서 몇 달 만에 발생했다. 그 사장들은 물어 물어 나를 찾아왔고 횡령 금액을 이야기했으며 집단 고소를 하자고 권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명색이 한 솥밥을 먹었던 직원인데, 그가 잘못했다면 그 절반의 잘못은 나에게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참 시간이 지났고, 어느 장례식장에서 그 직원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나를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나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그때 사장님을 위해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사장님 회사가 있었겠어요?“ 나는 그때 확실히 알았다. 정말 나쁜 사람은, 자기 자신조차도 속이는 것이라고. 그는 자신의 악한 행동이 회사에 얼마나 많은 금전적, 조직적 손해를 끼치고, 내가 얼마나 자신을 위해 괴로워하고 힘들었는지를 눈꼽 만큼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2.

 

“무엇이든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는 해괴망칙 국정농단의 시절에, 우리는 참 나쁜 사람들을 많이 목격한다.


청문회에 나와서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권한 밖이다”, “모르는 일이다” 를 반복하던 김기춘은 정작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야 하는 사안에서는 천재급 기억 복원력을 발휘했다. 그 ‘선택적 기억 상실증’은 ‘선택적 표정 변화술’과 한 쌍을 이루는 바,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가 감독했던 영화 <자백>에서는 공항에서 인사하는 최피디를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환하게 웃어주다가 정작 명함을 받은 후에는 백팔십도 다른 얼굴로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역시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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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장에서, 서슬 퍼런 야당 국회의원의 기세에도 눌리지 않고, 사람 많은 공항의 대기실에서도 집요한 인터뷰어와 카메라의 위세에도 기죽지 않고, 조곤조곤, 따박따박,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김기춘의 자기 확신을 보면서, 사람들이 그를 향해 말했던 “절대적 악의 화신” 이라는 수사가 너무 적확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뿐인가. 최순실의 남자라 지목된 홍모 의원은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국정농단의 몸통 대통령 방치했으니 부끄럽고 죄스럽다고 석고대죄하기는커녕 대통령의 남자도 아닌 최순실의 남자가 뭐냐고 농을 했다. 국회의원이 청와대 일의 어디까지 알아야 하냐며, 탄핵에 표를 던진 동료의원도 당과 대통령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장면에서는 김기춘이 한 두 명이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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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분에서 정점은 역시 대통령이다. 거짓말투성이 대국민 담화에서는, 이럴려고 대통령을 했는지 자괴감이 든다고 하더니, 탄핵 당일에는 피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억울함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법대로 하라고 말하는 대통령을 보노라면, 저 이가 정말 악한 것인지, 아픈 것인지, 교활한 것인지, 금치산자인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면서 여전히 궁금하다. 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뻔뻔한 것일까? 악한 사람의 특징이 뻔뻔함인걸까? 아니면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일까? 혹은, 저리 뻔뻔하지 못한 나는 사회부적응자인가, 라는 자학적 생각까지 슬쩍.


3.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은 이런 의문이 들 때 읽으면 여러 번 고개를 끄떡거릴 수 있는 책이다.


종교와 심리학을 연결시키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책을 써 온 스캇펙은 정신과 의사겸 심리 상담자 답게 자신의 내담자 사례를 예로 들면서, 악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예수님 등장하면 두드러기가 나거나 “ 해결책이 결국은 사랑이었어?” 와 같은 푸념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비록 내담자의 이름을 모두 가명 처리 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재가 되는 만큼 책은 가독성있고 재미있게 잘 읽힌다.


스캇 펙은 악을 질환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귀 들린 사람, 즉 악마를 환자로 생각하게 되면 그는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이 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마치 죄수의 딜래마처럼 또 다른 논쟁을 만들어낸다. 연쇄살인범을 환자로 보면서 그에게 용서와 치료를 베푸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행위이지만 정작 그 살인범의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파괴적 폭력의 피해를 어떻게 보상받고 관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악을 질환이라 명칭하고자 하는 스캇 펙의 의도는, 좀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악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출발한다. 비록 이 책의 5장은 귀신들림을 치료하기 위해서 축사와 구마(驅魔, DELIVERANCE)까지 등장시키는, 살짝 많이 나간듯한 흔적이 분명 있지만 그래도 책의 곳곳에 주목해야 할 주장들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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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뜬금없음

 

특히 길라임씨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으면 더 잘 읽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스캇 펙은 악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성격 장애 질환의 공통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
2) 파괴적인 행동, 희생양 찾기 행동이 일관성 있게 나타나며 그 양상은 대개 미묘하다.
3) 비난 등 나르시시즘에 상처 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4)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이미지”에 유별난 관심을 갖는다
5) 지적 속임수를 자주 쓰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것이 가벼운 정신분열증적 장애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대목도 있다.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심각한 자폐증과 무엇이든 자기 방식대로만 하려는 찰린이라는 여자를 치료하는 것에 실패한 스캇팩은 이렇게 후감을 전한다. 


“그녀에게 한 나라를 주어 보라. 히틀러나 이디 아민과 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들의 자기 의지와 고집이 참으로 정도를 벗어나는 것이기에, 그리고 항상 힘에 대한 욕구를 수반하는 것이기에 나는 악한 사람들이란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으로 자기 자신을 과대화시키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들은 그 어는 것에도 자기를 굽힐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극단적인 자기 의지와 고집은 정치적 와해로 몰아가게 되어 있다. (340 쪽)


이외에도 악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나르시시즘 증상과 그 폐해, 그리고 절대적인 공감능력의 부족 등을 악자의 특징으로 설명하는데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 노비 문장에 소개된 악인의 특징이 가장 인상적이다. 이미 나치 전범의 재판을 지켜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했던 한나 아렌트처럼, 스캇 펙이 특징 짓은 악의 특징은 절대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질병, 그것이 한나 아렌트가 내린 악의 분석이며 스캇펙은 이에 동의한다.
 
나르시시즘적 자기 만족이라는 허상의 존재감 위에 자신을 구축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 반추하고 성찰하지 않는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 내가 이러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의 눈치, 내가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의 자기 반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악의 특징이다.

 

그래서 저들은 저렇게 뻔뻔하고 자기 확신에 차있던 것이다. 스캇 펙은 이러한 악에 대해서 결국 사랑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파란 집의 일당 등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매주 토요일, 여전히 꺼지지 않고 광화문을 밝히는 촛불 속에서, 그리고 그 촛불 주변을 울리는 하나의 노래 가사 속에서 , 이것이 악에 대처하는 유일한 신념이라는 것을 믿는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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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펙 #거짓의 사람들 #나쁜 사람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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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