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로 가는 길은 막혔소
풍경은 볼 만큼 봤으니 이제 길을 내어 주시오.
얼굴의 수분과 기름기를 1%도 안 남기고 달아나게끔 만든 6월의 우유니였다. 혀끝에는 입술의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고 한 번 터진 입술은 좀체 새살이 돋아나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피부가 팽팽하다 못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빌어먹을, 우유니는 겨울에 오면 안 되는 곳이었어’를 되뇌어도 이미 와 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뭣 모르고 찾아온 여행객들이 뱉는 ‘아이고, 추워 죽겠다’는 곡소리만 마을 곳곳에 울려 퍼질 뿐이다. 추위에 지쳐 우유니 소금 사막을 본 후 지체 없이 떠나려고 했지만 제대로 된 정부나 해결할 수 있을 법한 문제가 우리 발목을 잡았다.
지역 농민들의 도로 점거 시위로 다른 도시로 가는 길이 막혀 버렸다. 길이 막혔으니 여행사도, 버스회사도 덩달아 휴업 중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째 지속되는 시위로 일정이 꼬여버린 여행객들은 심장이 타들어 갔지만 현지인들은 이조차 일상인 듯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도로를 점거하고 길목을 차단하는 것은 볼리비아에서 흔한 시위 방법이라고 한다. 그 이유도 각양각색이어서 부족한 물을 요구하는 것부터 섬유나 광산 업계 노동자들의 해고를 규탄하는 시위는 물론 해발 2,500m 이상이면 월드컵을 개최하지 못한다는 피파 FIFA의 방침을 비판하며 대통령이 홀로 시위를 벌인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이쯤 되면 시위가 내재화된 국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자신들의 생업과 관련된 일에 들고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위에 관대한 편이다. 우유니의 시위가 열흘쯤 지났을 때 대통령이 직접 이곳까지 와서 광부들을 만났다. 정부는 시위에 폭력적으로 맞서기보다 살살 달래가며 진정시키는 방침을 정한 모양이다. 물론 이렇게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몇 달 전, 내무부 차관이 파업 중인 광부들에게 납치됐다가 이들에게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정부에서는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고 있지만 볼리비아의 격렬한 시위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사건이다.
볼리비아를 보면 정부를 길들이는 것도 결국 국민이 아닌가 싶어진다. ‘우리는 더 많은 걸 요구해도 된다.’는 자각을 국민 스스로가 하고 있고 ‘어디까지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시민들 각자가 정부를 상대로 한 승리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마키아벨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인민은 한 번 맛본 자유를 절대 놓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볼리비아노 Boliviano, 스페인어로 볼리비아 사람 각자가 쌓아 올린 승리의 서사는 정부도, 정치인도 그 누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들이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사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극한의 추위’를 맛보여준 ‘선라이즈 투어’를 끝냈다. 쏟아지는 별과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자 사막 한가운데로 향했다. 태양이 사라진 시간, 장화 하나 신고 차가운 소금호수를 걷고 있노라면 발아래가 도려지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이제 볼 만큼 봤으니 하루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길을 막고 있는 시위대에게 무엇이든 해 줄 용의가 있으니 길을 내어 달라고 빌고 또 빌고 싶은 마음이었다. 볼리비아 정부도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길을 막아 버리는 가장 영리한 방법을 사용하는 시위대를 향해 뭐든지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아니하겠는가.
어찌 되었건 이것은 우유니 여행 이야기
알아들을 수 없는 세련됨 보다는 이런 투박함이라도 진실한 것이 옳다.
우유니 소금 사막 투어를 위해 알티플라노 Altiplano, 남아메리카 볼리비아 안데스 산맥 기슭에 위치한 고원의 깊은 자락까지 들어왔다. 이 지역은 계절에 따라 사막이 호수가 되기도 하고, 물로 흥건히 젖었던 대지가 메마른 땅바닥이 되기도 한다. 사진에서 자주 보았던 물 위에 하늘이 반사되어 어디가 위이고 아래인지 구별하기 힘든 ‘소금 호수’를 보려면 12월에, 바싹 마른 입술처럼 쩍쩍 갈라진 광활한 ‘소금 사막’ 위를 몇 날 며칠씩 달리고 싶은 이들은 6월이 적기이다. 소금 사막이 된 우유니는 온도계의 빨간 줄이 늘 0점 아래 머물러 있었다. 이 계절의 추위가 낯선 우리는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피의자처럼 숙소 이불 안에서 움츠린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투어 신청을 위해 여행사로 향했다.
마을의 풍경이라고 해봐야 서부영화에 나올 법한 먼지 휘날리는 황량함 그 자체이고, 번화가는 왁자지껄한 5일장이 지나간 시장터와 같이 휑한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몇 주 전부터 농민들이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 중이라 물류마저 끊긴 이곳은 생기도 찾기 힘든 지경이다. 산업화 시대의 대동맥이라 부를 만한 주요 도로를 막는 방법은 도대체 누가 알려준 것일까?
여행사 앞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투어 팀을 급조하고 차량에 올라타 소금 사막으로 향했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산을 향해 꽤 긴 시간을 달렸지만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한참을 달린 투어 차량이 멈춰 섰다. 그곳은 마치 화성의 표면처럼 거칠었다. 소리마저 증발된 듯한 메마른 풍경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며칠 지내다 보내면 끝나겠지 했던 도로 점거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볼리비아 대통령이 시위 현장으로 직접 날아왔다. 이 나라의 수장 에보 모랄레스 Juan Evo Morales Ayma는 볼리비아 역사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데 그는 2006년 취임 이후 현재까지 국민들에게 사랑받으며 (물론 한편에서는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인기 비결은 세련된 정치인의 언어가 아닌 투박한 농민의 언어로 진심을 다해 국민과 대화를 하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최선을 다해 해결하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을 뿐이나 도로점거 시위는 이내 종료되었다. 이후의 일들은 경제적, 정치적 계산에 따라 진행되었지만 최소한 농민들은 자신의 의견을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대통령을 가졌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자면 ‘정치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정치인뿐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장을 지지겠다’고 해놓고 그리되지 않자 ‘사실이 아닌 보도를 하십니까?’ 라고 억울한 투로 되묻는다. 공약했던 말은 당선과 함께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국어를 배우듯 정치인의 언어를 배워야 하나 싶다. 만약 그렇다면 멀리 이국땅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투박한 우유니 사람들과 바디랭귀지로 이야기하는 게 더 낫겠다. 볼리비아를 여행하며 서로의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추워서 이불이 필요하니 한 장만 더 주세요’처럼 직관적인 몸짓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백종민/김은덕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
책사랑
2016.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