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전과 노력의 가치
유토피아 까지는 바라지 않는다해도 디스토피아를 피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와 윤리적 선에 대한 가늠자를 위한 가치관은 각자가 미리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책이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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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새소년>, <소년중앙>과 같은 어린이잡지를 보거나 윤승운 화백의 <요철발명왕>이란 만화책을 보면 빠지지 않고 소개되거나 등장하는 상상의 기계가 있었으니 바로 ‘공부해주는 기계’였다. 머리에 그 기계를 쓰고 있으면 교과서의 내용이 그대로 머리로 입력이 된다. 가만히 앉아있기만해도 다음날 시험은 백 점이다. 이게 좀 허황되보였는지 어린이 잡지에는 배게 모양의 기구가 소개되기도 했다. 이 기계를 베고 자면 다음날이면 그 안의 내용물이 자연스럽게 머리 안으로 이식이 된다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고도 백 점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수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공상과학 만화의 물건들 중 여러 가지가 현실화가 되었지만 공부해주는 기계는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가장 유사한 기계가 아마도 집중력을 높여주는 기계로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엠씨스퀘어 정도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오래된 과거부터 지금까지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능력치를 높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었다. 실제 지금껏 현실화된 의학이나 생명공학, IT의 기술을 이용하는 것 중 일부는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 능력치를 높이는 곳에 사용되는데 이것은 윤리적으로 옳은 일일까, 또다른 치팅키의 사용일까?

 

1)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로 치료를 받던 소년이 십대 중반이 되어 집중력이 호전이 되어 정상수준이 되어 치료가 필요치 않은 정도가 되었다. 그렇지만 소년은 시험때만 간헐적으로 복용하고 싶다고 한다. 실제로 서울 강남 일대에서 학습클리닉에서 머리좋아지는 약이라고 처방되기도 한다.


2) 저성장증으로 지나치게 키가 작은 아이의 키를 늘리기 위해 사용하던 수술과 성장호르몬 치료가 ‘키크게 해주는 치료’로 정상수준의 키인 아이가 큰 키가 되기 위해 사용한다. 나중에는 돈이 많은 사람은 부모가 작아도 키가 커질 수 있어서 키큰 부자와 가난한 난장이로 나뉘게 될까?


3) 무대에 오를 때 긴장을 많이 하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연주전에 심박수를 떨어뜨리는 베타차단제 계열의 약을 복용하고 무대에 선다. 이것은 스포츠 선수의 스테로이드 복용과 다른 것일까?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정도가 아니라, 더 나아지고, 완벽한 존재가 되려는 인간의 욕망은 위험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고 이는 허용되고 도리어 장려되어야할 것인가? 과학의 발전이 겉잡을 수 없는 속도로 빨라지는 것을 느껴 과학의 발달을 도덕과 상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이 시점에 생각할 거리는 위와 같이 참 많다. 그런데, 이를 충분히 심사숙고 하고 사회적 합의가 일어나기도 훨씬 전에 일부 과학기술을 세상에 확 퍼져버려서 일상화 되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미리미리 생각을 해둘 필요가 있다.

 

과학의 발전이 일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생각의 틀을 전해주는 좋은 책이 있으니 마이클 샌델의 『완벽에 대한 반론(The case against perfection)』이다. 마이클 샌델은 우리나라에서는 정의란 무엇인가로 널리 알려진 하버드대학 교수다. 그는 2002년부터 4년간 ’대통령 생명윤리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에는 대학에서 ’윤리학과 생명공학, 그리고 인간 본성의 미래‘를 비롯해 다양한 강의를 하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 생명체 복제, 유전적 강화 약물 복용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 고민, 윤리적 이슈를 다각도로 연구하고 토론을 했다. 그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그는 인간의 노력과 자연을 조작해서 랜덤의 가능성을 통제하는 것 사이에서 인간과 사회는 어떤 합의를 해야 할 것이라 조언한다. 과학의 힘으로 능력치를 높이는 것은 금지하며 오직 노력과 훈련을 통해서만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아마추어리즘이 진정 순수한 것인지에 대해서 몇 가지 예를 들어서 반박한다.

  

운동선수가 금지된 약물로 운동능력을 높이는 것은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인체공학에 입각해서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 공기역학에 최적화된 수영복과 같을 개발해서 착용하는 것은 왜 허용되는 것일까? 야구선수에게 압축배트는 금지하지만 좋은 스파이크를 신어서 달리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허용하는 경계는 무엇인가?


마라톤 선수들 중 일부는 인위적으로 고산지대에서 장기간 훈련을 해서 적혈구형성을 촉진한 후에 나중에 산소활용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만일 고산지대를 가지 않고 이와 유사하게 저산소를 유지하는 텐트를 만들어 그곳에서 장기간 지내거나, 합성epo란 물질을 주사해서 사용하는 것은 운동능력에 미치는 효과가 동일하다. 스테로이드와 같은 약을 먹는 것은 작용만큼 부작용도 분명히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문제지만, 이 경우에는 생리적 기능을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는 허용하고 후자는 금지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고산지대에 훈련캠프를 차릴 금전적 지원과 환경이 안되는 선수는 경기력을 다른 식으로 강화시켜서는 안되는 것인가.
 
사실상 1920년대만 해도 진정한 아마추어리즘은 ‘코치 없이 선수 혼자 연습해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릇 연예인이라면 성형 수술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완벽하게 타고난 미모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만일 수술을 한 사람이라면 뭔가 속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여론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TV에서 사람들은 당당히 수술에 대해서 얘기하고 보톡스나 필러와 같은 간단한 시술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이런 세태의 변화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조금 더 나아가보자. 인공수정이나 정자, 난자은행을 이용하는 곳에서 환영받는 유전자는 고학력, 매력적인 몸매이지, 유전병이 없는 건강한 신체가 아니다. 이는 부모가 처음부터 큰키, 좋은몸매, 매력적 얼굴과 머리색을 갖기 위한 나름의 노력인데, 이는 태어난 후에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영재교육과 같은 사교육으로 후천적으로 극복해야할 것들을 한 번에 해결하고 나오는 것이다. 이는 도적적으로 불편한 일로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모는 이런 조건을 가진 정자/난자를 한결같이 원한다.

 

마이클 샌델은 이런 세태의 변화, 부모와 각 개인의 욕망에 대해서 이런 조언을 한다.


신학자 윌리엄 F 메이의 말을 인용하면서 부모의 태도는 "선택하지 않은 것을 열린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여야 한다고 한다. 이를 따르지 않고 자녀를 설계하려는 부모의 오만함, 생명의 신비로움을 통제하려는 욕구를 가지면 선택하지 않은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공감과 겸손함을 잃게 된다. 그러면서 함께 살아가는 타인에 대한 공감, 겸손함, 배려심을 잃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극대화하고 욕망을 현실화하는 이기주의로만 천착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나 현대사회는 정복과 통제를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타고난 개인의 능력을 찬양한다. 이때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아이를 만난다는 것은 부모가 한 개인으로 겸손을 배울 학교를 만나는 것과 같다. 원하는대로 자녀를 고를 수 없다는 사실은 예상치 못한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한다는 점을 알게 한다.

 

즉,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인생의 불완전성, 비예측성을 감내하고, 불협화음을 수용하고 자기 식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충동을 자제하는 것을 배워나갈 수 있다. 만일 이런 마음을 갖지 못한 채 유전공학과 생명과학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만 사용하려 할 때 세상은 혼돈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 면에서 유전학은 인간의 불완전성이 지닌 재능과 한계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정치적 제도에 부응하여 함께 발전해나가야한다고 조언을 하고 있다. 많은 SF영화가 예언하는 세상이 멀지 않은 시기에 올 것 같다. 저건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아니겠지 싶은 것 중 일부는 의외로 십 년안에 우리 안방에서, 일상에서 만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훅 하고 세상은 변화할 것이다. 여기에 휩쓸려버리는 순간 SF에서 우려하는 무서운 ‘디스토피아’의 세상에 상상이 아닌 현실의 내가 내던져질 위험이 있다. 유토피아 까지는 바라지 않는다해도 디스토피아를 피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와 윤리적 선에 대한 가늠자를 위한 가치관은 각자가 미리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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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저/김선욱 감수/이수경 역 | 와이즈베리
마이클 샌델 교수는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이 밝은 전망과 어두운 우려를 동시에 안겨준다고 말한다. 밝은 전망은 인간을 괴롭히는 다양한 질병의 치료와 예방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고, 어두운 우려는 유전적 특성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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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대한 반론 #하지현 #마음을 읽는 서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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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6.09.27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훅 하고 .. 그렇죠. 세상이 이렇게 될줄 몰랐으니까요. 삐삐시절이 그립습니다. 발전은 참 낭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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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