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꽤 오래전부터 대학생들과 독서클럽을 만들어서 함께 책을 읽고, 읽은 책에 관한 감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2013년 여름에는 그중 대여섯 사람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햄릿』, 『리어 왕』, 『맥베스』, 『오셀로』 등 네 편의 비극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삼십 년 이상의 ‘나이’라는 시간적 간극을 잊은 채 그해 여름을 셰익스피어 비극의 매력에 흠뻑 빠져 아주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저에게는 예전에 읽었던 책을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는 기회였고, 나의 어린 친구들에게는 명성만 알고 있던 작품을 실제로는 처음 접하게 된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작품 자체도 최고였지만, 모두가 자신의 나이와 처지에 따라 자기 나름의 시각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극중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하는 양태도 서로 많이 달랐습니다. 예컨대 저는 희곡 『맥베스』의 맥베스 장군에게 가장 큰 일체감을 느꼈는데, 그것은 그때 내 처지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가슴속의 욕망’을 억누르고 있었던, 개인적으로 아주 ‘답답한’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책을 함께 읽은 다른 한 친구는 맥베스장군을 ‘최고의 악당’으로, 또 다른 친구는 ‘무능한 경영자’의 전형으로 묘사했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을 읽는 사람이 경우와 처지에 따라 제각각 다르게 받아 들이고 해석하는 데 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 후 저는 제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읽기와 쓰기’라는 새로운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게 2014년 봄 학기였습니다. 이때 다시 80여 명의 학부 학생들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이 네 작품을 한 학기 동안 함께 읽고,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써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또다시 셰익스피어가 마법의 텍스트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에게 글을 꼼꼼하게 읽히고 줄거리요약을 시켰는데도 읽는 사람마다 제각각 서로 다른 줄거리를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 희곡에 등장하는인물들이 그만큼 입체적이고 성격 또한 복합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햄릿』에 등장하는 햄릿 왕자 한 사람만 해도 과감하면서 우유부단하고, 사색적이면서 성급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성격적 특징들을 한 몸에 안고 있는 인물입니다. ‘너무 길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랜 고민에 빠졌다가도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칼로사람을 찔러버리는 사람. 아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내용의 독백을하다가도, 자신이 한 때라도 사랑하던 연인에게 그토록 모진 말을 쉽게 내뱉어버리는 사람.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햄릿은 마치 만화경처럼 보는 구도와 시각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독자나 관객은 햄릿을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지금 처한 입장에 맞추어서 읽거나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저는 영국 시인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만큼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읽는 사람과 시대, 환경에 따라 그 모습이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난 몇백 년 동안 자신과 자신이 처한 환경을 셰익스피어의 등장인물이나 대사에 투영하면서 때로는 위로받고 때로는 거친 삶의 앞길을 비추는 등불로 삼아왔습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은 인간의 희로애락,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어쩌면 세상의 삼라만상을 그 작품 속에 품고 있기에 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대한 거울과도 같다고 말해도 크게 과언이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 작가 중 셰익스피어만큼 잘 알려진 사람이 있을까요? 셰익스피어는 신문 기사, 방송 멘트 논술 등 우리 주위의 많은 글과 말에 인용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원전의 텍스트를 제대로 읽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등장인물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참 많다는 것입니다. 햄릿의 유명한 독백 때문에 햄릿이 마치 ‘우유부단한 인간’ ‘고뇌하는 인간’의 전형인 줄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비단 햄릿이나 맥베스에 관한 선입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을 왜곡하고, 사고를 정지시키고, 흥분시켜서 우리가 진실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기제들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기제들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세계와 사물을 스스로의 눈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남이 정해주는 대로 사물을 보는 습관을 떨치는 일입니다. 한 가지 시각, 하나의 이론 틀로 사람과 사회를 보게 만들려고 하는 시도와 주입을 거부해야 합니다. 유혹의 시대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사물을 판단할 때 특히 낭만, 감성, 사랑, 진실,우정, 조국 등등의 감성적이지만 모호한 단어들을 의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단일한 논리, 딱 떨어지는 설명은 우리의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그런 편안함에 익숙해져서는 안 됩니다. 타인의 말이 편안하고 어느새 의심을 품지 않게 되었다면, 이미 그에게 휘둘리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단순명쾌함의 유혹을 물리치고, 넓고 깊고 다원적으로 사람과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이든 조직이든 사상이든 국가든 가족이든 그 대상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마세요. 몰입하지 마세요. 멀리 떨어져서 오직 나만의 눈으로 보세요. 그러면 진실이 꼭 하나뿐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다원적 시각을 기르는 연습을 하기에 참 좋은 교재입니다.
저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어떠한 외부의 설득이나 선전에도 휘둘리지 않고 세계와 타인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본으로 받아들입니다. 인간과 세계를 내 눈으로 생생하게 보고 내 머리로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첫째,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놓은 틀에 빠져서 선입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타인의권위에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자신의 눈으로 꼼꼼히 관찰해야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그런 연습을 할 절호의 텍스트입니다.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셰익스피어가 쓴 네 개의 비극을 ‘또박또박’‘제대로’ 읽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떤 고정관념도 없이 자기 자신과 타인을 더 넓게, 더 깊게,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작게나마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목적은 사람의 ‘생각의 중심’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일입니다. ‘생각의 중심’이란 어떤 사람의 삶과 말과 행동을 규정하는 씨알입니다.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 사람의 삶의 방식, 일의 순서, 기쁨과 노여움, 그리고 죽음에 대한 철학에도 이 생각의 중심이 작용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직장을 옮기려고, 또는 결혼하려고 결심했다고 칩시다. 다른 선택지를 없애고 그것을 결단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 그것이 생각의 중심입니다. 생각의 중심을 관찰하는 데 셰익스피어 4대 비극만 한 텍스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중심을 알면 ‘사람’이 보입니다.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해석하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또 생각의 중심을 알면 ‘자기’가 보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꿈을 이루고,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첫 단추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독자 여러분과 함께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9명의 ‘생각의 중심’을 간파해나가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진정 누구였는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 진실에 함께 다가서고 싶습니다. 예컨대 1장에서는 왕자 햄릿이 널리 알려진 대로 단순히 ‘선택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우유부단한 지식인’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라도 역사의 주인공이 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정치적 인간’임을 간파할 것입니다.
저와 함께 아홉 명의 아홉 가지 생각을 만나러 떠나 봅시다.
아, 하나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는 영문학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책은 셰익스피어에 관한 전공서도 아니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항간의 오해를 바로잡으려는 사명을 가진 문학 이론서도 아닙니다. 나는 이 책에서 오직 이 네 편의 비극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내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스스로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보면, 세상과 사람을 타인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판단하는 법을 깨달을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자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가 아니라 ‘휘둘리지 않는 힘’인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이 책을 셰익스피어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담은 책인 줄 알고 손에 집으셨다면, 지금까지 읽게 해서 죄송합니다만, 서점이나 도서관의 서가에 도로 꽂으셔도 좋습니다.
시인 에드워드 토머스Edward Thomas는 “다들 햄릿이 자기를 위해 쓰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 책은 나를 위해 쓰였다”고 말했답니다. 물론 농담조의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은 엄중한 진실을 품고 있습니다. 나는 이 말을 어떤 사람도 셰익스피어를 읽은 다른 누군가에게 “네가 읽은 셰익스피어는 잘못 해석한 거야”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로 듣습니다. 만약 천 명의 독자가 햄릿을 읽었다면 천 명의 햄릿이 존재하고, 만 명의 독자가 읽었다면 만 명의 햄릿이 존재하겠지요. 그것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매력입니다. 저 또한 이 책을 통해 제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셰익스피어라는 거울에 투영시켰을 뿐입니다.
더불어 많은 이들에게, 특히 가파른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이 거울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과 맞닥뜨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신과 셰익스피어의 만남이 새로운 ‘나’를 쌓아올리기 위한 흔들리지 않는 힘의 원천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이라면 무엇에도 타협하지 않는 ‘더숲’의 식구들과 또다시 함께 책을 내게 된 일을 참 기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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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둘리지 않는 힘 :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서 ‘나’를 지키는 힘을 얻다 김무곤 저 | 더숲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 이 시대의 눈으로 새롭게 재해석함으로써 왜 이 시대에 셰익스피어를 다시 읽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작품 『햄릿』은 정치학과, 『맥베스』는 경영학과, 『오셀로』는 사회심리학과, 『리어왕』은 커뮤니케이션학과 조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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