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이 흘리는 운치는 지독하기 그지없다. 작품에 놓인 까칠한 로큰롤과 수수한 블루스, 포크, 컨트리로부터 흘러나오는 아티스트 특유의 색감은 우리가 오랜 시간 접해 온 만큼 익숙하나, 현재를 살아가는 이 블루스 장인은 여기에 세련되고 매끈한 터치를 더해 신선함까지 도출해낸다. < Crosseyed Heart >는 그래서 근사하고 아름다우며 매혹적이고 또 고혹적이다. 색 진한 스펙트럼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작품은 키스 리처드의 과거와 현재를 멋지게 짚어낸다.
대개의 트랙들이 품은 스타일은 상당히 예스럽다. 숨소리까지 오롯이 담아내 장르 고유의 현장성까지 살린 음반의 오프너 「Crosseyed heart」는 델타 블루스에 맥이 닿아있으며 브라스와 함께 흥겹게 리프가 넘실대는 「Blues in the morning」은 척 베리의 유산을 끌어온 데다 「Amnesia」와 「Trouble」, 「Something for nothing」 등을 비롯한 대개의 로큰롤 트랙들은 키스 리처드의 시그너처 리프들을 안고 롤링 스톤스의 컬러와 궤를 같이 한다. 자기 세계관의 양분이 되는 음악들을 향해 아티스트가 시계 바늘을 꽤나 되감는 셈이다. 그럼에도 음반은 현재와도 상당히 잘 어울린다. 결코 과하지 않은 운용이 균형감 있는 시점 형성의 토대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작품 전체에 로 파이의 톤이 깔려 있지만 그 세기를 자연스러움을 자아내는 수준에 한정시켰으며, 스톤스에서의 여러 작품들처럼 사운드 스케일과 곡의 진행을 크고 길게 확대시킬 수 있었음에도 그 한도를 적당한 정도에 형성시켰다. 결과물들이 상당히 깔끔하게 떨어진 덕분에 작품에는 높은 접근성이 따라붙는다.
감각적인 작곡 역량의 위력이 이 지점에서 배가된다. 고전적인 블루스와 포크, 컨트리에 다수 빚지고 있는 음악을 구사하고 있음에도 시류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데에는 미끈한 사운드 메이킹과 더불어 흡입력 높은 선율을 내놓는 송라이팅이 큰 동기로 작용한다. 직관성을 지닌 리프와 부드럽게 움직이는 벌스 멜로디, 확실하게 펀치를 날리는 훅 라인으로 이룬 구성이 실로 유려하다. 이러한 구성에 역동적인 보컬 퍼포먼스와 리듬 라인으로 질주감까지 더한 「Heartstopper」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는 음반의 베스트 트랙에 해당하며 팝적인 시각이 두드러지는 로큰롤 넘버 「Trouble」과 그레고리 아이작스의 스카 사운드를 잘 살린 「Love overdue」, 트렌디한 블루스 록 「Substantial damage」도 주요한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어느 정도 힘을 빼면서 잘 들리는 선율들을 더욱 잘 노출시킨 발라드 트랙들도 빼놓을 수 없다. 페달 스틸 기타로 푸근한 분위기를 얹어낸 컨트리 스타일의 「Robbed blind」와 단출한 연출로 멋을 극대화한 리드 벨리의 원곡 「Goodnight Irene」도 또한 매력적이다.
짐짓 무신경해보이기까지도 하는 여유와 큼지막하게 에너지를 불어넣는 완력을, 이 오랜 세월을 거친 아티스트는 결과물 전반에 노련하게 녹여낸다. 범접하기 어려운 정중동의 미학이 앨범에서 빛을 발한다. 물론 키스 리처드라는 이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는 부차적일 뿐, 배경을 배제한 개별 곡들과 전체 음반으로 이루어진 핵심만으로도 작품은 높은 값어치를 획득한다. 주인공 뿐 아니라 뮤지션의 솔로 커리어에 늘 힘을 보태는 프로젝트 밴드 디 익스펜시브-와이노스에게도 응당 찬사가 따라야 한다. 공동 작곡과 프로듀싱으로 앨범 제작에 상당수 기여한 드러머 스티브 조단과 명 세션 기타리스트 와디 와첼, 키보디스트 이반 네빌 등이 적재적소에서 솜씨를 뽐냈다. 실로 훌륭한 앨범이 등장했다. 개인의 디스코그래피에서도 가장 뛰어나며 현 시대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손꼽힐만하다. 반세기의 더께가 앉은 연륜이 수작을 낳았다.
2015/10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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