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는 엄마들로부터 육아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진료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기 때문에 그런 질문에 일일이 답변해주기가 참 곤란하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속 시원한 답변을 듣기 전에는 진료실에서 나가려고 하질 않는다. 의사가 제대로 답변을 안 해 주면 어디에서 올바른 육아정보를 얻느냐고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연년생 딸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소아질병치료가 전문분야이지 육아문제는 본격적으로 연구한 게 아니라 난감할 때가 많다. 어디에서 정보를 얻어야 할지도 잘 알지 못했다. EBS 교육방송을 시청하고,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보기도 했지만 시원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밤늦게 육아 관련서적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아이들의 자존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고 돈을 잘 벌고,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된다고 해도 어릴 때 자존감이 낮게 형성되면 당당한 삶을 살기 힘들고, 성공의 의미도 많이 퇴색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두 딸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에 육아의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했다.
아이의 자존감을 형성하는 기본 골격은 ‘놀이’와 ‘대화’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놀이는 본능이자 생활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속 마음을 털어놓고 다른 아이들과 만난다. 놀이는 상상의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활동이므로 아이들의 기를 맘껏 살릴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신나고 재미있게 놀수록 아이들의 자존감은 올라간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겪는 정서적인 갈등을 언어보다는 놀이로 해결한다. 1940년 독일군의 런던 공습 때 어른들은 대화를 통해 공포감을 해결하려고 한 반면,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불안감을 해소했다. 블록쌓기로 집을 만든 다음 장남감 폭탄을 떨어뜨려 빌딩을 불태우는 놀이를 하고, 다친 사람들을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이송하는 놀이를 했다. 이런 놀이과정을 통해 공포감을 해결해 나갔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아이들은 언어구사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언어 대신 놀이로 마음을 치유하고 성장시킨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내면의 힘이 놀이라면 외면의 힘은 대화이다.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대화가 올바르지 못하면 아이들은 혼란을 겪는다. 부모가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아이와 대화하면 평범한 아이는 보통 수준에 머무른다. 하지만 부모가 지혜롭고 체계적으로 아이와 공감하는 대화를 통해서 아이의 자신감을 살려주면 평범한 아이도 자존감이 커져서 당당하게 자랄 수 있다.
사실 나 자신도 이 책에 소개하는 대화법을 그대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글을 쓰면서 읽고 실천하고 반성하기를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을 한 번 읽는 것으로 대화태도가 확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에게 나타나는 작은 변화가 아이들에게는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의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모는 자신의 언어습관을 바꾼 것에 대해서 큰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한 보람이 부모의 언어습관을 계속 변화시키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아이들의 마음 판에 어떤 씨앗을 심어주느냐에 따라서 어떤 열매가 맺힐지 결정된다.
우리 큰아이는 첫돌 전에 베이비시터가 네 번이나 바뀐 탓에 정서가 불안정한데다 예민하고, 겁도 많고, 편식도 심하고, 툭하면 울었다. 대화법 덕분에 이제는 두 아이 모두 매사에 적극적이고 늘 즐겁게 지낸다. 놀이, 체육, 음악, 미술, 영어 등 다방면에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한다. 아이들이 이처럼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자존감을 키우는 육아법의 큰 매력이다.
내가 강조하는 대화법은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는 육아와는 엄연히 다르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는 대화를 풍성히 나누고, 대화를 통해서 아이들의 창의력과 자아실현 욕구를 자극한다고 한다. 대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욕구를 절제하고 감정조절을 하는 법을 가르치고, 그를 통해 배려와 타협의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유대인의 밥상머리 교육이 바로 자존감을 키우는 육아법이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육아는 이처럼 아이의 내면에 자리 잡은 자아실현과 성장의 욕구를 부모가 믿고 밀어준다.
반면에 오냐오냐 하는 식의 육아는 부모가 아이의 본능적인 욕구를 자제시켜주지 못하고 무조건 받아주기만 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한 인격체로 존중해주면서 의견교환을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말을 한다. 그것은 아이들의 욕구절제와 감정조절능력을 이끌어내는 대화법이 미숙하기 때문이다. 타협을 가르치지 않고 아이들의 뜻을 받아주기만 하면 아이들은 미성숙 단계에서 절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혼란을 겪는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7단계 대화법』에서 소개하는 육아법은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아이의 말을 잘 듣는 부모’가 되기 위한 대화법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야 아이들의 자존감이 올라간다. 아이들에게 명령, 지시, 판단, 비난하는 식의 말투는 부모와 아이들 사이의 진정한 대화를 막는 장애물이다. 반대로 공감하고, 부탁, 질문, 칭찬, 격려하는 식의 말투는 아이들과의 대화를 진지하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
초등학교 5?6학년생 10명 중 5명은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에 30분도 채 안 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말이 '공부해라.' '숙제 했니.' '책 읽어라.' '살 빼라.' '휴대전화 그만 해라.' 등이고, 부모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해.' '잘했어.' '학원 다니지 마라.' '실컷 놀아라.' '뭐 사줄까.' 같은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은 나 스스로 아이들에게 쓰는 대화의 방법을 바꾸면서 아이들이 보여준 세세한 변화와 생생한 경험담을 담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다섯 살, 여섯 살이다. 내 아이와 비슷한 연령대의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이 있을 것이다. 병원에서 많은 어머니들의 육아고민을 들으면서 느낀 현실적으로 유용한 양육법들도 많이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첫돌 지난 아이에서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자녀를 둔 엄마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독자들은 ‘이 소아과의사는 자기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라는 호기심을 갖고 책을 펼쳐들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아이와 나누는 독자들의 언어태도에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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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7단계 대화법최유경 저 | 프리뷰
이 책에서 소개하는 대화법은 자녀를 ‘부모 말 잘 듣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아이 말을 잘 들어주는 부모’가 되는 방법을 담고 있다. 책은 소아과 전문의인 저자 스스로 아이들에게 쓰는 대화의 방법을 바꾸면서 아이들이 보여준 세세한 변화와 생생한 경험담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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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7단계 대화법』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