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몸 안에 품고 있는 시간이 왜 10개월일까, 생각해봤다. 그건 아이의 머리와 팔과 다리가 자라는 시간으로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엄마가 아이를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받아들일 준비의 시간으로 주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배가 많이 나오고 살이 찌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끼고 있던 반지를 뺀 것이다. 나중에 119에 전화해 반지를 절단하지 않으려면 뺐다 꼈다 하는 일이 가능할 때 퉁퉁 부은 손가락에서 반지를 제거해야 했다. 그다음에 한 일은 복대로 배를 받치고 다니는 것이었다. 보드랍고 커다란 손이 배를 고르게 감싸 올려주는 것처럼 든든했다. 배는 점점 더 나오고 아래로 처졌기 때문에 복대 없이 외출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어떤 때는 몸이 무거워 앉아서 일하는 게 힘들었고 이러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누워서 지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이대로 배가 더 나오면 터져버리는 게 아닐까, 무섭기도 했다. 거울을 보면 눈사람이 뒤뚱거리며 서 있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무겁다는 느낌 없이 잘 걸어 다니고 앉아서 글도 몇 시간씩 썼다. 배가 터질 리 없다는 확신 속에서 복대를 두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도 했다. 순환선에 탄 채 힘들었다가 견딜 만했다가 편안해지는 시기를 차례로 지나는 것 같았다.
나조차도 배가 매순간 조금씩 커지는 건지, 하루 단위로 자라는 건지, 며칠에 한 번씩 훅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에는 임신한 나를 아주 생생하게 느끼지만 아주 가끔 의식 속의 나는 오롯이 혼자였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내가 거울 속에 있어서 놀란 적도 있다. 혼란과 괴리는 점차 횟수가 줄어들었다.
아이를 몸 안에 품고 있는 시간이 왜 10개월일까, 생각해봤다. 그건 아이의 머리와 팔과 다리가 자라는 시간으로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엄마가 아이를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받아들일 준비의 시간으로 주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온 몸, 온 마음으로 변해가며 임신 후기에 접어들었고 아이를 만날 날이 가까워졌다.
[관련 기사]
- 여자의 배
- 천천히 걷기
- 하지 않을 용기
- 무리와 조심 사이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