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적
돈이 가난의 최고의 처방전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과학적일까?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카를 마르쿠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돈은 불가능한 일들을 친숙한 일들로 만들며, 자신과 모순되는 것들에게 자신과 입 맞추도록 강요한다. 그러니 돈과 입맞춤을 하게 된다면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돈이 없으면 하루라도 살기 힘든 탓에 어떻게든지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할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만약에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된다면 A. J. 크로닌의『성채』에 나오는 앤드루처럼 돈 때문에 영혼을 팔아야 한다.
젊은 의사 앤드루는 어떤 병(病)이더라도 과학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가치관은 삶의 목표와 가치를 명확하게 세우고 오직 그 길로 걸어가게 한다. 인생이 미지의 것에 대한 도전이며 언덕 위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힘겹게 언덕을 오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가치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증세의 직접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청진기 끝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믿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임상의 실력이며 과학적인 치료의 승리였다. 그래서 가치관이 없다고 한다면 즉 어떤 목적으로만 산다고 했을 때 언덕을 오르다 주저앉게 된다.
성공이라는 강장제
그는 돈만 밝힌다거나 구태의연한 처방전을 쓰는 의사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병원을 개업한 일주일 내내 수입이 형편이 없자 그는 병원의 재정적인 문제로 압박감을 느꼈다. 그것은 식욕이라는 순수한 고통만큼 그를 미묘하게 물질주의자로 만들었다. 그는 3실링 6펜스를 벌려고 악착을 떠는 데도 지쳤고 어떻게든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상류층 여인을 치료하고 12기니를 받으면서 점차로 허영심이 자극을 받았다. 그는 수표를 받으면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양심적으로 살아왔던 지난날을 비웃었다.
그가 수표를 받으면서 즐거워할수록 물질적인 욕망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되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도 공허해졌고 더 두려운 것은 앞서 말한 가치관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행복의 기준이 남보다 성공해야 한다는 질투심으로 몰고 갔다. 훌륭한 의사의 조건이 돈이나 물질적 성공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이상은 타락해졌다.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내기가 어려워졌다. 성공이라는 강장제는 모든 면에서 그를 지탱해 주었으며 영혼까지도 팔아버릴 정도였다.
영혼은 살아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영혼을 팔지 않아도 좋을 지 생각해보다가 문득 그가 크리스틴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홍역에 걸린 아이를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하느냐의 문제로 그들은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우유를 먹을 수 없다는 그녀의 주장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물질적인 만족으로는 채울 수 없는 순수하고도 묘한 감정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으나 그녀 때문에 가슴에 묘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무의식중에 그녀에게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했던 그 시절.
그 시절 그는 훌륭한 의사였다. 더구나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비록 돈과 지위와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치료했다. 하지만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고부터는 물질적인 성공이 전부라고 여겼다. 그는 돈 때문에 하느님의 눈을 속였다. 그래서 그녀가『성서』를 읽는 모습조차 못마땅했다. 그녀가『성서』가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고 하자 그는 그녀가 노이로제를 앓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 때 그녀는 복받치는 감정을 자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난 심한 노이로제 환자지만 영혼은 살아 있어요. 하지만 지독한 성공 병에 걸린 당신의 영혼은 이미 죽어 버렸다고요!
자발적 가난
돈으로 성공한다면 행복할까요? 지나칠 정도로 이기적으로 건강을 걱정하다보면 오히려 건강에 치명적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 돈이라고 해서 언제나 돈만 걱정한다면 우리의 균형 감각은 깨지고 말 것이다. E. F. 슈마허는『자발적 가난』에서 다음과 같이 러스킨의 말을 인용한다.
어떤 사람에게 돈이 주된 목적인가 아닌가를 알아볼 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실험이 있다. 생의 한가운데서 만약 그가 “지금 나에게는 살기에 충분한 만큼의 돈이 있고 그것으로 앞으로도 살기에 충분할 것이며 나는 정당하게 번만큼 바르게 쓰고 올 때처럼 가난뱅이로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에게는 돈은 주된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성품과 지위에 맞게 충분히 소유하고도 더 많이 벌기를 또 부자로 죽기를 바란다면 그에게 돈은 주된 목적이다.
세속적인 돈 때문에 우리의 삶이 빚 구름에 가려지고 있다. 빚에는 물질적인 빚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이 주된 목적이라고 하면 정작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했던 일을 하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이 오히려 커다란 빚으로 남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 이러한 부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끔씩 하늘을 보면서 성채 모양의 구름이 펼쳐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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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1 ,2 A. J. 크로닌 저/이은정 역 | 민음사
전후 영국의 가장 중요한 작가 크로닌의 자전적 소설 현실과 맞서 이상을 구하는 인간의 싸움을 감동적으로 그린 드라마 크로닌이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전 의사 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경험하고 느낀 문제들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주인공의 삶을 뒤흔드는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 긴장 넘치는 사건들이 이루는 극적인 플롯, 굴곡진 인생행로 속 갈등과 좌절을 딛고 참된 가치관을 회복하는 종교적 휴머니즘을이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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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청(서평가)
책만 보는 바보. 그래서 내가 나의 벗이 되어 오우아(吾友我)을 마주하게 되지만 읽은 책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때만큼은 진짜 외롭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