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국제도서전 주빈국은 타이완이었다. 한국을 찾아온 타이완 작가만 해도 서른 명에 달했고, 방한한 타이완 출판계 사람들도 삼백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서울국제도서전 시기에 타이완 소셜 미디어에서 “지금 타이완 출판계는 한국에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로 나눌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였다. 이번 도서전에서 타이완관이 “대만 감성(臺灣感性)”을 주제로 삼으면서, 무엇이 “대만 감성”인가, 라는 고민이 역으로 타이완으로 넘어가 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서울국제도서전이 끝나면서 타이완 작가들과 출판계 사람들은 타이완으로 돌아갔고, 타이완 젊은 창작자들의 교류 기지처럼 쓰이고 있다는 현류 서점(現流冊店, hiān-lâu tsheh-tiàm)은 이번 방한 경험을 공유하는 강연을 시리즈로 주최해 타이완 독자들에게 한국-타이완 출판 교류를 알리기도 했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 타이완 문학이 한국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인상이 타이완 문학, 더 나아가서는 타이완 문화에 대한 이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중화권 문학 번역을 업으로 삼은 나조차도 이 부분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타이완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화적 창구 자체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너 장르를 파는 덕후는(나다) 땅을 파며 홀로 좌절하기보다는 더 많은 이들을 자기 장르로 끌고 올 방법을 고민하면서 적극적으로 영업하는 법이다. 혹시라도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 타이완 문화와 문학에 관심이 생겼다면, 관심은 있으나 진입 장벽이 있다고 여겨져 선뜻 책을 펼쳐보지 못하고 있다면, 출간된 작품들을 모두 읽어서 더는 읽을 책이 없다면(이런 독자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의 바람 속에……) 타이완 음악이라는 창구는 어떠냐는 제안을 해보고 싶다.
마침, 여기 딱 맞는 타이완 인디밴드가 있다.
타이완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화적 창구가 되어줄 만한 밴드가.
타이완 이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인디밴드 동근생(A_Root 同根生)은 민족 악기와 현대 음악을 결합한 사운드에 타이완 문화(전설, 괴담, 민담 등)를 희곡적으로 담아서 노래로 부른다. 타이완에서 금곡상(베스트 앨범 프로듀서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밴드인데, 동근생의 노래를 한 곡씩 톺아보면 타이완 문화의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양상을, 더 나아가서는 타이완 문화를 받아들이고 만들어 나가는 타이완 창작자들의 고민까지도 엿볼 수 있다.
타이완의 문화적 정체성
🎧타이완 문합(臺灣文蛤)
타이완 문합은 타이완의 토종 조개이다. 타이완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조개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전해졌다고 여겼고, 가끔은 중국 남부 해안에 있는 중국 조개와 혼동하기도 했다. 이 조개는 토종임이 증명되면서 2023년에야 정식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타이완 문합의 ‘문합(文蛤)’은 문화 혁명의 줄임말인 문혁(文革)과 발음이 같다. (둘 다 ‘원거’라고 읽는다) 바로 여기서 이 노래는 ‘타이완 문화’라는 또 다른 맥락을 얻게 된다. 타이완 토종 조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타이완 문화도 이야기하는 것이다. 타이완 원주민, 내성인(한족, 명·청 시기에 타이완으로 이주한 이들), 외성인(한족, 국공 내전에서 패한 뒤 국민당 정부와 함께 타이완으로 이주한 군인들과 그 가족들)으로 이루어진 타이완. 타이완을 하나의 공동체로 보았을 때 그 문화는 어디서 형성이 되었고, 다른 문화들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그렇기에 타이완 문합의 역사는 오늘날의 타이완 창작자들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일본 외래종이라고 여겨지기도 했고, 중국 조개와 헷갈리기도 했지만, 타이완 토종임이 증명되어 자기만의 이름을 얻게 된 타이완 문합. 이는 타이완 문화의 또 다른 이름이다.
괴담과 역사
🎧린터우 언니(林投姐姐)
‘린터우 언니’는 타이완 남부에서 널리 전해지는 민간 괴담이다.
이조낭(李昭娘)은 남편이 죽은 후, 남편의 친구인 주아사(周亞思)에게 속아 돈과 몸을 모두 빼앗겼으며 삶 또한 나락으로 떨어졌다. 두 아이가 잇따라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자, 그녀는 막내 아이를 목 졸라 죽였고, 판다누스 나무(林投樹, 린터우수)에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그녀는 원혼이 되어 떠돌았고, ‘린터우 언니(林投姐)’라고 불리게 되었다.
린터우 언니가 지전으로 로우쫑(肉粽, 찹쌀 주먹밥)을 산 이야기는 가상화폐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녀는 사랑을 위해 복수에 나섰으며 ‘나쁜 남자 킬러’가 되었다. (동근생의 「린터우 언니」 뮤직비디오 소개 글 중 일부)
근 10년간 타이완 창작자들은 타이완 고유의 민간 전설, 괴담 등을 꾸준히 채록하고, 정리, 연구하며 이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창작을 해오고 있다. (아예 이를 모토로 삼는 창작 집단도 있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 때 한국에 왔던 샤오샹션 작가가 속한 타이베이 지방 이문 공작실이 그러하다) 이러한 움직임도 앞서 말했듯 타이완 문화란 무엇인가, 타이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언어적 다원성
🎧산귀 아모이(山鬼阿妹)
타이완의 민간 괴담 중에 ‘붉은 옷을 입은 여자아이(紅衣小女孩)’에 대한 괴담이 있다. 일종의 모신아(사람을 길 잃게 만드는 존재) 괴담이라고 볼 수 있는데, 동근생은 이 붉은 옷을 입은 여자아이를 퀴어적으로 해석했다. 노래 속 귀(鬼, 붉은 옷을 입은 여자아이)는 남성이 되기도 하고, 여성이 되기도 하면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택한다. 이 노래에서 두려움의 대상은 귀가 아니라 사람이다. 귀는 자신이 잘생겼다고 외치면서 오히려 네(인간)가 나보다 더 괴력난신처럼 생겼다고 폭로한다. 가장 흥미로운 건 이 노래 속 설창(說唱, 중국 전통 공연 예술에서 산문인 강설講說과 운문인 가창歌唱이 섞인 공연 형식을 말한다) 부문이 하카어(객가어, 客家語)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언어적 다원성을 추구한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소통 불가를 추구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쓰겠다는 거니까. (나만 해도 하카어를 할 줄 모른다) 그러나 자기가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해서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쓰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을까? 효율적인 소통보다 더 중요한 건, 본연의 모습을 온전히 남긴 채로도 함께할 수 있는 공존이 아닐까?
* 동근생의 리더인 양즈보(楊智博, Jipo Yang)는 하카인인데, 자기가 알고 있는 하카어를 총동원해서 노래에 집어넣었다고 한 방송에서 밝히기도 했다.
📚 동근생의 음악과 함께 읽기 좋은 책
🎧타이완 문합(臺灣文蛤)
양솽쯔 저/윤지산 역 | 마르코 폴로
타이완 최초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양솽쯔는 타이완이란 무엇인가, 라는 고민을 역사 소설 안에 꾸준히 담아왔다.
『대만의 역사와 정체성을 찾아서, 대만의식과 대만문화』
황준걸 저/정선모 역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타이완 사람들은 일제라는 강력한 타자를 마주하고 나서야 타이완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아주 흥미로운 역사서.
🎧 린터우 언니(林投姐姐)
리앙 저 | 문학동네
타이완 괴력난신 문학의 거장과도 같은 작가. 타이완X여성X괴력난신X역사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자.
『요괴 나라 대만』 1·2권
허징야오 저/장지야 그림/김영문 역 | 글항아리
타이완 괴력난신 대백과 사전.
🎧 산귀 아모이(山鬼阿妹)
탕푸루이 저/강초아 역 | 글항아리
다원성이 강조되는 작품이라 언어적으로도 중국어, 영어, 아미족 언어, 인도네시아어 등이 나온다. 번역본이기에 다른 언어가 자기 모습 그대로 나오지는 못하지만, 그 안에 담긴 다원성을 함께 읽어낸다면 배로 더 재미있는 작품이다.
뤄아이메이 저/신봉아 역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한족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여겨지는 하카. 가부장제 속에서 구축된 전통적 하카 여성 프레임에 균열을 내 사유하는 목소리로 채워 넣은 한 타이완 하카 여성 가수의 이야기.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쓰웨이가 1번지
출판사 | 마르코폴로
눈에 보이는 귀신
출판사 | 문학동네
요괴 나라 대만 1~2권 세트
출판사 | 글항아리
바츠먼의 변호인
출판사 | 글항아리
사유하는 목소리, 하카 음악의 여성성
출판사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김이삭
평범한 시민이자 소설가 그리고 번역가. 중화권 장르 소설과 웹소설, 희곡을 번역했으며 한중 작가 대담, 중국희곡 낭독 공연, 한국-타이완 연극 교류 등 국제 문화 교류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한성부, 달 밝은 밤에』, 『감찰무녀전』,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등이, 역서로는 『여신 뷔페』, 『다시, 몸으로』 등이 있다. 홍콩 영화와 중국 드라마, 타이완 가수를 덕질하다 덕업일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서강대에서 중국문화와 신문방송을, 동 대학원에서는 중국희곡을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