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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절망 너머에 미래가 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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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나온 그는 전쟁 중인 조국을 내버려 둘 수 없다면서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에 불과했습니다. 더 나쁜 일을 방지하기 위해 함께 싸운 다는 변명이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운명을 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 때는 판단을 내리고 용감해지는 것이 쉽다. 그러나 무언가를 가지게 되면 세상을 달라 보인다. 더 쉬워질 수도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며 때로는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용감해지는 것은 언제든 가능했지만, 이제 그것은 다른 모습이고 전혀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며 또 바로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사랑할 때와 죽을 때』

 


잿빛 고독


사람에게 전쟁은 지옥이라고 하더라도 구더기에게는 천국이겠지요.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점잖게 말하면 시체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구더기의 고기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구더기는 만찬을 마련해준 전쟁의 당사자들은 마음씨 좋은 신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이런 전쟁의 소용돌이는 모든 것을 한순간에 엉망으로 만듭니다. 전쟁은 죄 지은 사람보다는 죄 없는 사람을 더 불행하게 합니다. 어느 때보다 희망보다 불행이 쉽게 전염됩니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 휴가를 나온 그래버는 뜻밖에도 잿빛 고독에 빠졌습니다.


휴가를 나온 그는  전쟁 중인 조국을 내버려 둘 수 없다면서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에 불과했습니다. 더 나쁜 일을 방지하기 위해 함께 싸운 다는 변명이었습니다. 이미 패한 전쟁인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무의미하게 계속하려고 하는 것은 전쟁의 당사자들이 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며 이로 인해 많은 불행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고 했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서 그가 전선으로 다시 돌아가야 전투에 가담한다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공범자가 되는 걸까요?

 

제 2의 전쟁


그가 고민했던 양심의 문제는 반성이 지나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전선이라는 엄중한 현실에서 용기가 없어 보였습니다. 용기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에서 공범자, 더 나아가 살인자가 된다는 것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명령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은 속죄는커녕 동물적인 선택이지 싶습니다. 우리는 하이에나 같은 동물은 아닙니다. 하이에나는 언제나 하이에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변모를 가지고 있는데 탄력적인 양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전후방이 따로 없는 악몽 속에서 가족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전선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것보다 세 곱 내지 열 곱으로 버거운 전쟁이라고 절망하지 않았던가요? 군인이 전쟁에서 명령이나 정의라는 이름으로 총을 들고 싸우는 것은 아주 실용적으로 제 1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이 완전한 흑백 세계……이렇게 보면 모든 것이 우울합니다. 그럼에도 전쟁이라는 폐허 속에서도 꽃들이 피어나는 또 하나의 전쟁이 있습니다. 바로 제 2의 전쟁입니다. 제 2의 전쟁은 제 1의 전쟁의 반대가 아닙니다. 만약에 반대라고 한다면 숨겨진 희망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미래


그러면 사랑은 어떨까요? 사랑은 전쟁의 다른 쪽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엘리자베스와 사랑하면서 기뻐했던 것은 그녀가 곧 그의 ‘제 2의 자신’이라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즉 한계도 없고 과거도 없고, 어떠한 죄의 그림자도 없는 완전한 현재이고 생명이었습니다. 한 번은 그가 그녀에게 술을 마시기 위해 크리스털 잔 과 백포도 잔을 고르라고 하자 그녀는 오히려 사치스럽다고 반색했습니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지금처럼 검은 불안이 휩쓸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사치해야만 하는지 묻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랑에는 충분히 사치가 있어야 하며 이뿐만 아니라 사치 그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평화이고 안전이고 기쁨이고 축제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분명 삶의 기쁨에 큰 영향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사랑이 주는 기쁨이라고 해서 기쁨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두 가지 조건이 있을 것입니다. 즉 사랑하려면 적어도 그것을 손에 넣음으로써 그 빛이 사라지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말했듯 빛이 인간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무런 걱정이 없어야만 그 빛은 무한한 자유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곧 누군가의 걱정을 아는 것입니다. 가령, 그녀가 아기를 가지고 싶다고 했을 때 그것은 너무 이른 희망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전쟁으로 황폐해져 아이가 태어날 세상이 얼마나 비참할지를 생각하면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일 현재와 같은 사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야만스러운 사람들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찌 되겠어요? 그렇게 된다면 누가 이 세상에서 정의를 다시 실현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자신에게 불어 닥친 고통스러운 운명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 즉, 생명이라는 것이 지금 이 곳이 아닌 저 너머의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정의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녀가 아기에 대한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결코 생각하지 않았던 생명이라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미래의 존재에게 생명을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사의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원하기도 하고 원하지도 않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원하는 그 무엇이라는 것, 아마도 불멸이지 않았을까요?

 

탄력적인 삶


우리는 자신에게 닥치기 전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모릅니다. 죽음이 넘쳐나는 부조리한 현실을 파고들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던 의문들은 불투명합니다. 쇼펜하우어는『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죽음을 아는 것, 아울러 삶의 아픔과 고통을 고찰하는 것은 세계를 철학적으로 성찰하고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충동을 가장 강력하게 일으킨다. 만약 우리의 삶에 끝이나 고통이 없다면 누구도 세계가 왜 존재하는지, 왜 바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그냥 당연한 것으로만 간주될 것이다.

 

모든 의문들은 낮이 아니라 밤에 더욱 투명해집니다. 그는 낮 동안에는 병사이더라도 밤에는 병사가 아니라고 하면서 밤에는 그렇게 되어 버린 존재가 아니라, 원래 그래야 하는 존재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삶의 고통 앞에서 절망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절망 너머에 미래가 있다는 용기, 무엇보다도 탄력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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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나온 그는 죄의 그림자 때문에 잿빛 고독에 빠졌습니다. 전쟁 중인 조국을 내버려 둘 수 없다면서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에 불과했습니다. 더 나쁜 일을 방지하기 위해 함께 싸운 다는 변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잿빛 고독이 소리도 색깔도 없이 스며들면서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처참한 배신이었습니다. 그의 싸움은 살인과 거짓과 불의와 폭력과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전의 선생님이었던 폴만에게 기만당한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면서 진실을 알고자 했습니다. 이미 패한 전쟁인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무의미하게 계속하려고 하는 것은 전쟁의 당사자들이 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며 이로 인해 많은 불행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고 했습니다. 한편으로 노예 제도와 살인, 집단 수용소, 대량 학살과 비인도적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전쟁에 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서 그가 전선으로 다시 돌아가야 전투에 가담한다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공범자가 되는 것입니까? 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만약 그가 전선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한다면 교수형이나 총살을 당할 것입니다. 또한 자기 목숨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모에게도 보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선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정작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는다면 자살행위가 되고 말 것입니다.

 

폴먼은 그가 공범자라는 굴레에 대해 ‘죄악’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죄악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도 끝나는지 아무도 몰라. 죄악은 어디서든 시작되지만 어디서든 끝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거야. 아니면 정확히 정반대일 수도 있고. 그러나 공범 관계라는 것,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오직 하느님이 알 뿐이지,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 폴만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 살인하지 마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카이저의 것은 카이저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라는 말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영혼의 함석장이는 어떤 물건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을 읽으면서 그래버가 고민했던 양심의 문제는 반성이 지나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선이라는 엄중한 현실에서 과거를 회상하면서 무기력하다는 것은 용기가 없어 보였습니다. 용기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에서 공범자, 더 나이가 살인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하이에나 같은 동물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이에나는 언제나 하이에나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다양한 변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다양한 변모에 대해 ‘탄력적인 양심’이라고 말했습니다. 탄력적인 양심에 따라 그는 낮 동안에는 병사이더라도 밤에는 병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밤에는 그렇게 되어 버린 존재가 아니라, 원래 그래야 하는 존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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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저/장희창 역 | 민음사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개선문』 등으로 세계 대전의 참화를 겪은 동시대인들에게 뜨거운 울림을 선사하며 감동과 교훈을 동시에 주는 작가 레마르크의 또다른 전쟁소설로, 2차 대전 중 독일군 휴가병이 겪는 짧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며 전쟁의 끔찍함과 그럼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인간의 희망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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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재청(서평가)

책만 보는 바보. 그래서 내가 나의 벗이 되어 오우아(吾友我)을 마주하게 되지만 읽은 책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때만큼은 진짜 외롭지 않아!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저/<장희창> 역12,150원(10% + 5%)

반전 소설의 대가 레마르크가 그려 낸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개선문』 등으로 세계 대전의 참화를 겪은 동시대인들에게 뜨거운 울림을 선사하며 감동과 교훈을 동시에 주는 작가 레마르크의 또다른 전쟁소설로, 2차 대전 중 독일군 휴가병이 겪는 짧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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