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면도날』 1분이라도 정신적인 삶을 사는 것

내가 제안하는 삶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풍성한지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많을 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 당신에게 알려 줄 수만 있다면…그건 정말 끝없는 즐거움이고, 말로 형언하기 힘든 행복이야.


내가 제안하는 삶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풍성한지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많을 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 당신에게 알려 줄 수만 있다면…그건 정말 끝없는 즐거움이고, 말로 형언하기 힘든 행복이야. 그것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어. 바로 홀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 때의 기분이지. 높디높은 저 위에서, 사방이 온통 무한한 공간뿐인 곳에서 날고 있을 때 말이야. 그럼 끝없는 공간에 취하게 돼. 그때 느끼는 흥분이란, 세상 그 어떤 권력과 영예를 준다 해도 바꾸고 싶지 않아. -『면도날』




가슴 뛰는 일



세상에는 속물(俗物)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속물이란 사회적인 신분이나 지위, 그리고 돈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풍요로움이 행복이며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있습니다. 서머싯 몸은『면도날』에서 이러한 속물들의 끈질긴 근성을 식물학자 같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진귀한 야생란을 찾기 위해서 홍수와 지진과 열병과 적대적인 원주민의 위험도 기꺼이 감수해서 그렇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너무나도 노골적인 희망, 즉 살고픈 욕망이 강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방향으로 철학자들의 책을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면도날』에서 래리는 데카르트처럼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평온함이며 품격이며 명석함, 그는 드넓은 정신세계를 여행하면서 자신이 의심하는 것에 대한 대답들을 찾았습니다. 그 때 느끼는 흥분은 발끝으로 서서 손을 한껏 뻗으면 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결코 상식이나 분별력에서 얻어지는 간단한 대답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 강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확신은 수학적인 계산으로 아우성치는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절박한 욕구라는 것입니다.


영혼에 대한 배신



만약에 전쟁에서 허망하게 전사한 전우를 보지 않았다면 그는 그렇게까지 사회에서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남들처럼 적당한 일을 하면서 이사벨과 아무 걱정 없이 결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은 모든 게 수수께끼가 된 느낌이랄까. 모든 것이 싫었고 아무것도 안하고 싶었고 돈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백지상태에 놓이면서 많은 사람의 기대감을 저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제발 남자니까 남자다운 일을 하라고 하면서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그런 헛된 꿈 때문에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안 돼, 그럴 수 없어, 이사벨. 그건 내게 죽음과도 같아. 내 영혼에 대한 배신이이야.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눈 먼 운명의 신이 만들어 내는 비극적인 실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라는 현실적으로 별로 쓸모없는 문제를 푸는데 몇 년이 걸릴까요? 그는 수천 년 동안 그런 질문을 던져 왔다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만족했습니다. 이러한 고뇌가 뭔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결국 그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뒤따른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몇 년쯤 공부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조국에 대한 배신이 되는 것은 아니며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적어도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보다 더 궁색하게 살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열정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야!



한때는 괜찮은 청년이라 그는 정상적인 어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데카르트를 읽으며 흥분했던 탓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지식 그 자체를 열망했습니다. 문제는 쓸모없는 지식을 갈망한다고 해서 멸시당해야 할 정도의 욕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일에 만족을 느끼는 것처럼 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서투르게 항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지독하게 괴로워하면서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럴 때 대서양이 놓이는 가슴앓이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심리학자들은 사랑을 일종의 부수현상(附隨現象)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식이 그 자체로 두뇌 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그저 두뇌 작용을 수반하고 두뇌 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그 무엇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의식은 마치 수면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처럼 나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나무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열정 없이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간혹 열정이 죽은 후에도 사랑이 지속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다른 무엇으로 사랑을 착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지 결코 열정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열정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파괴적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완성



그는 인도 생활을 끝으로 자신이 찾고자 했던 의문에 대답을 찾았습니다. 인도인들에게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에 있었습니다. 그저 돈은 성공의 상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랜 방황 끝에서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이상은 자기완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데카르트는『방법서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각각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이성적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길을 따라 생각을 이끌고,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는 엄청난 덕행을 할 수 있는 반면에 엄청난 악행도 할 수 있으며, 천천히 걷되 곧은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뛰어가되 곧은길에서 벗어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먼저 갈 수 있는 것이다. - 『방법서설』



현실감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가슴 뛰는 행복이란 자신이 갈망하는 것인지 무엇인지 알면서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식물학자처럼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쓸모없는 지식을 찾는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쉽게 돈에 집착합니다. 1분이라도 시간을 절약하는 실용적인 목적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최대로 쓸모 있게 사는 것은 1분이더라도 정신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요?



 

img_book_bot.jpg

면도날서머싯 몸 저/안진환 역 | 민음사
『면도날』은 세상이 정해 놓은 레일을 뛰어 넘은 래리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 준다. 누구에게나 잠재하는 숭고함의 씨앗은, 삶을 통해서 증명될 때 비로소 명징한 빛을 밝힐 수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동시에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숭고함을 절대시하기보다, 가치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긴 채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의 삶에서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추천 기사]

-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캄보디아에 간 까닭
- 주 5일제, 육아휴직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 박건웅 “김근태 이야기, 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 이기호 “당신들 책만 읽고 있을 건가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6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임재청(서평가)

책만 보는 바보. 그래서 내가 나의 벗이 되어 오우아(吾友我)을 마주하게 되지만 읽은 책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때만큼은 진짜 외롭지 않아!

면도날

<서머싯 몸> 저/<안진환> 역11,700원(10% + 5%)

『인간의 굴레에서』, 『달과 6펜스』와 함께 서머싯 몸의 3대 장편소설 중 하나 1930년대 유럽, 그 풍요와 야망의 시대를 배경으로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한 젊은이의 구도적 여정을 그린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축은 주인공 래리의 구도적 여정이다. 비록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유복한 후견인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ebook
면도날 -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저/<안진환> 역9,100원(0% + 5%)

『인간의 굴레에서』, 『달과 6펜스』와 함께 서머싯 몸의 3대 장편소설 중 하나 1930년대 유럽, 그 풍요와 야망의 시대를 배경으로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한 젊은이의 구도적 여정을 그린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축은 주인공 래리의 구도적 여정이다. 비록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유복한 후견인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