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분위기다. 독자들이 철학자를 앞에 두고 상담을 받는 모양새지만, 일방적으로 누군가 상담하고 상담을 받는 분위기가 아니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서로의 이야기와 의견을 건넨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경험과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욕 들어먹기 좋은 것이 상담이라지만, ‘서로 상담’은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지난 2월 24일, 『도서관 옆 철학카페』의 안광복 작가와 함께하는 ‘철학자의 상담실’이 만든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도서관 옆 철학카페』은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됐던 <성장을 위한 철학노트>의 원고를 다듬어 출간한 책으로 안광복 작가는 고등학교에서 철학 교사로 재직하면서 ‘일상에서 철학하기’를 실천하는 임상 철학자다. 이날 훈훈했던 분위기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정리했다.
어떻게 하면 아득바득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전에 쓴 책인데, 『인생고수』라고 있다. 이 책 서문에 ‘인생의 어떤 문제도 이해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라고 썼다. 한 심리학과 대학원생이 사람이 사람의 문제를 어떻게 안다며 이렇게 폭력적인 말을 하느냐며 그러더라. 깜짝 놀랐다. (내 의도와 다르게) 이렇게도 읽힐 수 있구나. 단어 하나에도 숱한 무의식이 움직인다. 상담이 그만큼 어렵다. 내가 하는 얘기는 철학이라는 지평위에서 말하는 것이고, 그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서 이를 받아들인다. 상당히 오랜 시간 말하면서 손을 잡고 서 있구나, 이런 느낌이 올 때 상담이 가능하다. 그래서 오늘 이런 시간은 참 어렵고 두렵다(웃음).
학교에서 이중적인 모습도 본다. 학교에 진취적인 동료 선생이 있었고, 모범적인 삶을 사는 선생이었다. 도전적이고 남과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하면서 학생들에게 너의 꿈이 뭐냐고 늘 물었다. 2년 동안 자신의 역할을 잘하다가 계약이 끝날 무렵 막상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연장이 되셨는데 갈등을 하더라. 그러다 ‘철밥통’을 하고 싶다고 좀 더 안정적인 곳으로 가시더라. 진취적인 사람이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안정적인 철밥통을 바라기도 한다. 연애할 때도 불같은 사랑을 바라지만 아이를 갖고 싶고 안정적인 관계를 꾸리고 싶어 한다. 불륜을 예로 들면, 어둠에서 사랑을 키우다가 서로 이혼하고 결혼하면 잘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정규직을 바라면서 아득바득한 삶에서 철밥통으로 가면 행복하냐. 교직 사회에도 사이코가 엄청 많다(웃음). 학교 폭력이 괜히 일어나는 게 아니다. 인간은 권태를 견디는 것을 힘들어한다. 안정된 삶이 행복을 주냐. 아니다. 한 달 동안 휴식을 주면 일주일 후면 지겨워서 죽으려고 할 것이다. 아득바득 사는 이유를 들자면, 불안을 견디고 여가를 선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자기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득바득한 삶을 살지 않으려면 물질이 없어도 최소한의 수입으로 시간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여가 속에서 자기를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아득바득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역설적인 것이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아이는 모든 것을 놓아버린 아이다. 방법이 없다. 아득바득한 삶이 괴롭다고 생각하지만 알렉산더 왕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키라고 말한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의 삶을 보면, 이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욕망이 없는 사람을 이길 방법은 없다. 그 정도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재벌도 될 수 있다(웃음).
아득바득한 삶이 이중적인 것이, 서울대에 가는 학생들을 보면 대개 3~4시간을 자는데, 입시가 끝나고 스승의 날에 찾아오면 하는 말이 고3때가 가장 재밌었다고 한다. 공부가 재밌었던 거다. 아득바득한 게 재미있어서 그렇게 한 거다. 그걸 즐긴 거다. 재미가 없는 삶은 그야말로 삶을 못 견디게 만든다.
남산도서관에 가보라. 접근성 떨어지는 도서관인데 5층 열람실에 가면 어떤 할아버지들이 『성문종합영어』를 보거나 『논어』를 보고 계신다. 열댓 분이 그렇게 하시는데, 그들이 강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들의 욕구는 훈련시킨 욕구다. 책 한 권으로 일주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많겠나. 돈에 대한 욕구가 없다고 봐야 한다. 책 한 권으로 자신의 시간을 채우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아득바득 쫓아갈 필요가 없는 거지. 아득바득이라는 재미를 추구하던지,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욕구를 키우던지, 그게 방법이다.
한국사회에는 나이에 따라 정답이라는 삶이 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과업의 연속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래서 아득바득이 오는 것은 아닐까.
요즘 일본어 공부를 하는데, 원사료에 재미를 붙였다. 원사료라 함은 만약 1930년대를 공부하고 싶으면 그 당시에 나온 책을 뜻한다. 러일전쟁 직후 일본인의 모습을 보면 지금 우리 사회와 다르지 않다. 취업은 안 되고 일자리는 막히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일제가 식민지 침탈에 열을 올린 이유는 일자리 창출 때문이었던 거지. 인생 진도표가 있다고 치자. 지금은 노력을 해도 이 진도표대로 살 수 없다는 게 명백하다. 구조적인 문제지만, 인구론을 봤을 때 한 사회에 젊은 층이 많으면 혁명을 꿈꾸거나 해외로 나가는 등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한다. 이슬람권은 지금 출산율 어마어마하다. 그만큼 젊다. 그래서 IS는 청소년 같이 행동한다. 한국사회의 평균연령이 올해 마흔이다. 한국의 지금 움직임은 딱 40대의 움직임이다. 40대의 특징을 보자. 정리해고를 당해도 새로운 길을 찾는 게 아니라 익숙한 길을 찾고자 한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20대의 사회에서 꿈꾼 것처럼 혁명을 꿈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꼴같잖은 사회를 탈출해서 세상을 전복하는 거지(웃음).
출판사에서 일하는 10년차 직장인인데, 처음 이 직업에 들어왔을 때는 좋았는데, 점점 그것이 줄어든다. 선배들도 40세 전후로 독립하는데, 내 미래도 보이는 거지. 지금의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민이다. 지금 직업이 좋은데 어떻게 변화시키면 좋을까.
철학자의 관점으로 보면, 둘 중의 하나다. 첫째는 군대에서 사격을 하면 3발을 쏘고선 시선을 표적지에서 잠시 뗀 후에 다시 3발을 쏜다. 표적지만 계속 보면 그것만 보이기 때문에 주변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쉬라고 하잖나. 이때는 충분히 낯설 정도로 멀어지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렇게 떠난 경험조차도 인생 진도표에 나온 것일 수 있다. 직업에서 멀어지는 것도 인생 진도표의 한 챕터나 매뉴얼이지, 변곡점이 아닌 거지. 그러니 아예 내려놓고 침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둘째는 좀 더 현실적인 것이다. 대학의 철학과 3~4학년은 취업 등으로 고민이 많다. 나도 그럴 무렵에 교수가 신경 쓰지 말고 칸트나 읽으라고 하더라. 그게 위안이 됐다. 동양의 수양론이 그런 것이다. 세상이 어떻든 간에 내 업에 충실한 것. 칸트를 읽으면서 수양을 하다보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영혼이 만들어지고 새 길이 열리기도 한다. 내가 있는 학교가 위치한 대치동은 인생의 진리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전교 1등을 하는 아이들은 한 번도 자기가 1등을 꿈꾼 적이 없다고 한다. 눈앞의 과제를 하다 보니 자기 위에 아무도 없는 거지. 지금 직업에 열심히 하는 것이 하나의 답일 수도 있다.
장단점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인데,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고 공무원인 지금 직업이 권태로워서 바꿔보고 싶은 생각도 한다. 그래서 핵심 기술을 갖추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서른넷이라는 나이가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서른세 살에 예수가 십자가에 박혔다. 서른세 살 묘한 나이다. 교과서적인 답변을 하면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얇은 책이 있다. 이 책이 공무원이나 교사에게 던지는 임팩트는 크다. 교사 사회에서 서른넷이면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승진의 욕구를 키운다. 변화를 꿈꾸면서도 발전이 없으니 장학사, 장학관 등을 추구한다. 나머지 하나는 업무시간은 영혼을 팔 뿐이지 나머지 시간은 자기만의 인생을 꿈꾼다. 칸트는 철학 역사상 최초의 공무원 철학자다. 연금을 받으면서 철학을 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에는 국가의 봉록을 받고 계약된 일과에는 직장인으로 살고 퇴근 시간 이후에는 자유인으로 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계약된 시간이 내 삶의 전부인 것 같다. 한 철학자는 마흔 이전에 빛을 좇았다면 그 이후에는 그림자를 쫓으라고 한다. 요즘은 서른셋이 그런 기점이 되는 것 같다. 서른셋 이후는 자기를 찾아가는 시점 같다. 그림자를 잘 보면서 여가를 잘 꾸리면 행복하지 않을까. 농담을 곁들이자면, 결혼을 안 해도 된다(웃음).
지금-여기를 살라고 하지만, 나중을 위해 하기 싫은 걸 하는 것이 지금 대부분의 삶이다. 지금의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행복한 사람은 행복이 뭔지 묻지 않는다. 고대부터 행복의 기준은 정해져 있다. 행복의 순간은 몰입의 순간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 있는 순간. 쾌락과 행복은 다르다. 물건을 사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쾌락에 가깝다. 행복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마음이 가라앉고 평정이 오면 몰입할 수 있는데, 평정과 몰입은 비슷한 것 같다. 물질적인 쾌락이 아닌 마음을 가라앉혀서 눈앞의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면, 업무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면 행복해지는 길인 것 같다. 지적 지구력을 늘리는 방법이 중요하다. 지속적이고 항구적으로 꾸준히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은 도넛을 보면 혐오스럽다고 말한다. 몸의 습관으로 도넛을 밀쳐내는 거지.
시야를 넓게 가져가되 규칙적이지 않고 편안하게 흐름을 맡기면서 사는 게 좋을까, 규칙적으로 열정을 갖고 사는 게 좋을까.
고3 담임의 입장에서 보면, 재수하는 학생들이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사는 것 같더라. 반면 노력을 별로 안 했는데 명문대에 가는 아이들이 되레 불행해지거나 밋밋하게 산다. 치열하게 살아본 경험이 한가함의 귀중함을 알게 한다. 버림받는 기억이 인생의 약이 되기도 한다. 엄마의 욕구대로 살아온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모범생이 주변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좌절한다. 지금 대치동의 학생들을 보면 각 집안의 대표선수로 나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라캉은 공부만큼이나 욕망도 연습해야 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기 욕망을 연습해본 적이 없다. 이런 친구들이 난감한 것이 자기 존재감을 찾기 위해 연애를 하는데, 왜 관계가 꼬이느냐면 공부하듯이 연애를 한다. 가령 연인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연인에게 의지를 한다. 자신만의 욕망을 연습하고 키우는 방법은 좋은 삶을 많이 보는 것이다. 평전도 많이 보고, 영화도 보고. 하루아침에 영혼의 근력이 생기지 않지만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내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주변의 말에 흔들린다.
나도 그런다. 내 안에 없는 것은 상대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상대의 꼴같잖은 모습은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그래서 충고를 하기도 한다.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다. 주어를 바꿔봐라. 삶은 안정된 상황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성공한 사람을 보면 하루하루가 리추얼의 성공이다. 수도승 같다. 매일 똑같은 패턴으로 해야 할 것을 한다. 많은 이들은 해야 할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한다. 좋은 목표를 찾는 것은 좋은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삶의 모습이 패턴화 돼 있다. 『리추얼』이라는 책도 추천하고 싶다.
좋은 친구는 좋은 욕구를 지닌 사람이다.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 사람을 만날 때 어떤 좋은 사람을 만날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할 때를 생각해보라. 내가 어떤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이상형의 여자를 찾는 게 아니라 내가 그런 여자의 모습을 스스로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실 책보다 재밌는 것이 사람이다. 요즘 보고 있는 소설이 『키다리 아저씨』인데, 요즘은 키다리 아저씨의 심정이 느껴진다. 내가 아닌 저 사람이 행복해지면 좋겠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면서 행복하게 잘 살면 좋겠다.
성장을 원하나, 성공을 원하나.
성장의 욕구는 성공의 욕구와 비교가 안 된다. 사람은 고통스럽더라도 성장하고 싶어 한다. 성장은 사람을 이끄는 힘이다. 아득바득한 삶이 성장에 대한 욕구를 잃게 만든다. 성장에 대한 감수성을 끊임없이 가지는 게 중요하고 책과 철학이 그런 감수성을 키울 수 있다. 많이 보고 많이 배출해야 한다. 지적 변비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참았다 터뜨리는 쾌감은 좋지 않다. 철학책을 보면 내가 정말 작다는 느낌을 준다. 철학은 정말 무거운 작업이라 인생을 가볍게 만든다. 철학은 무거워야 한다. 내 책은 지나가는 책이고, 철학책을 진짜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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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옆 철학카페 : 세네카부터 알랭 드 보통까지, 삶을 바꾸는 철학의 지혜안광복 저 | 어크로스
『도서관 옆 철학카페』는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사색의 공간이다. 세네카부터 알랭 드 보통까지, 걸출한 사상가들의 저작을 통해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정면으로 맞선다.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철학자이자 10여 권의 철학 교양서를 출간한 대표적 인문 저자인 안광복은 공들여 뽑은 35권의 책에서 삶의 불안과 고민을 덜어낼 창조적인 해법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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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rkem
201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