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업, 시몬느
『시몬느 스토리』는 한국의 핸드백 제조회사 ‘시몬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한다. 많은 이들이 책 제목을 보고 유사한 이름의 침대회사를 떠올릴 정도로 시몬느는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시몬느’와 거래하는 유명 브랜드를 듣고 나면 ‘왜 이런 회사를 몰랐을까’ 싶어진다.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명품 핸드백 브랜드-루이비통, 코치, 마이클 코어스, DKNY, 지방시, 버버리, 셀린트, 폴로, 겐조의 제품들 중 60% 이상이 시몬느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명품 가방은 모두 이탈리아 혹은 프랑스 장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줄 알았던 소비자들에게는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시몬느, 이 작지만 강한 회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궁금증을 해소해줄 이야기 『시몬느 스토리』가 독자들을 찾아왔다.
지난 4월 26일, 『시몬느 스토리』의 출간을 기념해 저자 유효상이 독자들과 만났다. 장소는 가로수 길에 위치한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 2012년에 문을 연 이곳은 세계 최초의 핸드백 박물관으로, 시몬느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백스테이지Bagstage’라 이름 붙여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명품 브랜드의 조력자에 머물렀던 시몬느가 자신들의 독자 브랜드를 앞세워 무대 위로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담아낸 공간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메이드 인 코리아’ 명품 핸드백이 태동하는 그곳에서 저자는 『시몬느 스토리』의 시작을 이야기했다.
“여러분, 앙트레프레너십(Entrepreneurship)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앙트레프레너의 정신이라는 이 말은 기업가 정신으로 번역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죠. 하지만 앙트레프레너라는 칭호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번 사람에게 부여되지는 않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해서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것만으로는 앙트레프레너가 될 수 없는 것이죠. 반드시 그가 만든 제품이 우리 사회를 윤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하고,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앙트레프레너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저는 그러한 기업인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시몬느’라는 회사를 알게 됐습니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진정한 앙트레프레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저자는 긴 시간 경영 현장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삼성그룹과 동양그룹 등 대기업에서 기획실장으로 근무하며 실물 경제에 대한 감각을 익힌 것이다. 또한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근무하며 국내 최초로 앙트레프레너십 MBA 과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현재는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가 앙트레프레너십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창업을 하고 고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곧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가 발견한 ‘앙트레프레너십의 기업’ 시몬느 역시 핸드백에 대한 무형, 유형의 자산을 전혀 갖지 못했던 독문학 전공자에 의해 설립됐다. 그가 바로 지금의 시몬느를 전 세계 1등 명품 핸드백 회사로 성장시킨 박은관 회장이다. 230명밖에 되지 않는 직원들과 함께 6900억 원의 매출액과 1000억 원의 순이익(2013년 결산 기준)을 기록한 시몬느의 저력에 놀란 저자는 2년 동안 박은관 회장을 인터뷰하며 『시몬느 스토리』를 준비했다.
“박은관 회장은 핸드백을 가업으로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패션을 전공하지도 않았으면서 명품 핸드백으로 세계 1위의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독자적인 브랜드 런칭을 발표했죠. 당시에 우리나라 대기업인 삼성과 롯데는 루이비통의(LVMH)의 인천공항 면세점 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많이 알려지지도 회사가 자신들의 브랜드로 세계 명품 시장에 도전하겠다고 할 때, 우리나라의 최고 기업은 유명 브랜드의 대리점 권을 가져오기 싸우고 있었던 거죠. 그 모습을 보고 빨리 시몬느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이 훌륭한 회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시몬느 스토리』에 담긴 장인정신과 도전정신
『시몬느 스토리』는 시몬느의 창업 스토리와 성공 비결, 그리고 시몬느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에 대해 들려준다. 그 중에서도 저자는 시몬느가 세계의 명품 회사들을 공략한 방법을 직접 들려주었다.
“시몬느는 설립 초기에 중저가 브랜드의 핸드백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방식으로는 비전도 보이지 않았고, 장기적으로 수익성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게 됐죠. 그래서 최고의 명품을 공략하기로 하고 DKNY를 목표로 정했습니다. 당시에 DKNY는 미국 브랜드이면서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급성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패션 변방인 한국에서, 설립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회사가 어떻게 세계의 톱 브랜드를 공략할 수 있었을까요? 누군가의 소개로 DKNY와 접촉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박은관 회장은 직접 찾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전에 백화점에서 DKNY의 핸드백을 구매한 다음 전부 분해했습니다. 자신들이 정말로 똑같이 만들 수 있는지 실험을 해 본 거죠. 그렇게 여러 번 작업한 끝에 샘플을 만드는 수준에 이르자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서 DKNY에 가지고 갔습니다. DKNY에서는 깜짝 놀랐죠. 핸드백을 만드는 기술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상당히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으니까요. 하지만 1980년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은 저품질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박은관 회장은 ‘why not us?’라는 논리로 DKNY를 설득했죠.”
품질도 뛰어나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데, ‘Made in Korea’라는 이유로 거절 당한다는 것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현재 한국은 명품 핸드백 제조와는 거리가 먼 나라입니다. 하지만 볼로냐나 플로렌스의 120년 된 공방도 처음 시작한 누군가는 우리처럼 맨땅에서 일군 것 아닌가요? 우리도 안 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도 처음이 되지 말라는 이유가 없다”, “우리는 왜 안 되는가?”라는 물음으로 정리되는 박은관의 설득 논리는 “Why not us?"라는 표현으로 알려져 세계 핸드백 시장의 전설이 되었다. ”당신과 내가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화두를 던진 것이다. (『시몬느 스토리』 24쪽)
그 결과 박은관 회장은 DKNY 측으로부터 주문받은 핸드백의 수량은 120개.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지금 시몬느는 1년에 1800만 개가 넘는 명품 핸드백을 생산하고 있다. 그 중에는 세계 최고의 명품 기업 LVMH의 핸드백들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이들 유럽 브랜드들과 거래는 인상적인 사건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1999년 루이뷔통 브랜드 열아홉 개를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명품 기업 LVMH의 장 폴 비비어Jean-Paul Vivier 사장이 지방시, 루이뷔통, 크리스챤 디올, 펜디 등 LVMH 계열의 회사 대표 10여 명을 다 불러 모았다. 그리고 시몬느에서 만든 도나 카란 뉴욕과 코치 핸드백, 그리고 이탈리아 공방에서 만든 같은 브랜드 가방을 라벨을 떼어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행했다. 결과는 ‘50대 50’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만든 것과 시몬느에서 만든 것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당시 유럽 핸드백 브랜드 사장들에게는 꽤 충격이었다. 이탈리아가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이 테스트 이후 유럽 브랜드들이 시몬느와 거래를 시작했고, 시몬느는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몬느 스토리』 126쪽)
저자는 『시몬느 스토리』 안에 담긴 것이 박은관 회장과 시몬느의 앙트레프레너십이라고 말한다. 국내 제조업이 하락의 길을 걷고 있던 1980년대 후반에 핸드백 제조업에 뛰어든 식견, 이후 수십 년 동안 묵묵히 가방을 만들어온 장인정신, 그리고 거침없이 명품 브랜드를 찾아가 ‘Why not us?’를 외치는 도전정신이 그것이다. 하지만 박은관 회장의 새로운 도전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유럽의 핸드백 제조 시장이 아시아로 넘어올 것을 예상해 아시아 벨트를 미리 준비했던 그가 이번에는 독자 브랜드 ‘0914’를 런칭한 것이다.
“시몬느가 이렇게 엄청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은 생산 물량이 전부 세계적인 명품 회사에 납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몬느는 변화를 꾀하고 있고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백스테이지(Bagstage)’가 그 변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있고 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백스테이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듯이, 지금까지 시몬느는 명품 핸드백이 빛나도록 뒤에서 묵묵하지만 강하게 힘이 되어 주었는데요. 이제는 ‘백스테이지’에서 나와서 ‘온스테이지’로 나아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축척된 명품 핸드백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자 브랜드를 가지고 ‘메이드 인 코리아’로 세계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거죠.”
한국에서 탄생하는 첫 명품 핸드백 브랜드에 대한 기대를 남기며 유효상 저자는 강연을 마무리했고, 독자들은 안내에 따라 핸드백 박물관 곳곳을 관람했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핸드백 박물관인 ‘백스테이지’에는 현대 핸드백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1550년대의 ‘실크 주머니’부터 1998년에 생산된 시가 1억 원 상당의 에르메스 ‘버킨백’까지 역사성과 상징성을 가진 다양한 핸드백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핸드백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며 독자들은 시몬느가 가지고 있는 핸드백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아직 그곳에 채워지지 못한 핸드백의 미래는 『시몬느 스토리』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시몬느 스토리 유효상 저 | 21세기북스
명품=유럽’이라는 공식이 지배하는 럭셔리 시장에서, 그것도 글로벌 가격경쟁력을 잃고 지리멸렬해진 봉제 제조업 분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 기업의 성장 스토리를 통해 활력을 잃은 한국 제조업의 재도약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는 없을까? 그리고 한국에서도 과연 명품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을까? 『시몬느 스토리』는 이런 화두를 던지는 의미 있는 책이다. 저임금을 바탕으로 가격으로 승부하는 과거의 행태를 버리고 우리의 기획ㆍ개발력 및 디자인 능력을 융합시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냄으로써 차원 높은 성취를 거두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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