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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내일, 당신의 옆 사람이 죽는다면∙∙∙”

『망각과 자유』 강신주 저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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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8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강신주 박사는 최근 펴낸 『망각과 자유』를 들고 독자들과 만났다.

망각은 삶의 축복이다. 니체는 그것을 유쾌하게 설파했다. “망각한 자에겐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의 망각에 대한 예찬이기도 했다. 망각함으로써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그때의 망각은 ‘적당한’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해야 한다. 문제는 망각의 과잉이다. 과잉의 망각 때문에 현재의 노예가 돼 삶의 의미와 방향을 상실하기도 한다. 그것은 되레 현재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침몰하고 붕괴하며 절멸한다. 앞선 침몰(들)을 망각한 우리는 ‘세월호’라는 거대한 현재의 침몰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러므로 얼마 전 타계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을 곱씹어야 하는 이유도 충분하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일과 당신이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사실 이상으로 그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강신주 박사는 깊이와 체험 등을 통해 이것을 곱씹게 한다.

 

강신주

 

 

제자백가를 찾는 이유 


과거 우리 선조들은 이십대에 모든 것을 다 경험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무서워서 집을 떠나지 못한다. 삼십대가 넘어서도 부모와 함께 지낸다. 스물여덟에 세상을 떠난 시인 이상. 그 나이를 지금 나이로 환산하면 오십대라고 할 수 있다고 강신주 박사는 말한다. 즉, 이상(의 詩)을 알기 위해서는 경험의 나이가 오십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책을 보면, 내가 어디까지 성숙해졌는지가 보인다. 고전은 언제 이 책을 버리지, 못 버릴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얄팍한 책은 물을 조금만 부어도 넘치는데 고전은 큰 항아리다. 붓고 부어도 차지 않는다. 젊은 시절, 영원한 고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저자가 한수산이다.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대표적인 작가는 하루키다. 단언컨대, 극단적으로 말해 이혼이나 실직 등을 하고 하루키를 읽자면 못 읽는다. 하루키의 등장인물은 돈을 벌지 않는다. 대학생들이나 유산을 많이 받은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책이다. 힘들게 산 사람은 하루키 인물의 연애에 동감하지 못한다. 육십이 넘어도 하루키가 좋으면 누가 돈을 주고 있는 거지(웃음).”

망각과자유

 

강 박사는 인문학은 깊이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그에 의하면, 사람이 가장 깊어지는 때는 생사나 생계가 위협에 빠질 때다. 따라서 아주 잘 사는 집안의 아이나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는 깊어지기 힘들다. 너무 살기 힘들 때 사람은 깊어진다. 그는 전쟁을 겪은 아이의 눈빛을 봤는지 묻는다. 그 눈빛엔 희망 같은 게 없다. 그는 400년 전쟁이었던 춘추전국시대(BC 8세기∼BC 3세기)를 꺼냈다. 400년 동안 지속되다가 3천개이상의 국가에서 7개국이 남았을 때 가장 치열했던 장평전투(주. 기원전 262년에서 기원전 260년에 걸쳐 중국 진나라와 조나라 사이에 벌어진 춘추전국시대의 판도를 변하게 만든 대표적인 전투)

 

이 전투, 조나라는 항복을 한다. 진나라는 조나라 사람들을 생매장을 한다. ‘장평 대학살’이었다. 그만큼 피와 살이 튀는 시대였다. 그러한 때,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에는 허위허식, 수사가 없다. 디테일도 없다. 살과 살이 부딪히고, 욕망과 욕망, 피와 피가 부딪힌다. 자연스레 깊이도 따랐고, 사상이 꽃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도 보자. 6.25를 겪은 작가의 글 깊이는 다르다. 박완서 작가는 일제강점기와 6.25, 개발독재시대를 다 겪었다. 신경숙은 그렇게 못 쓴다. 그런데 신경숙 글이 더 아름답다? 허접한 연애편지는 아름다운 것 같아 보인다. 고통은 깊이를 준다. 그러나 그 순간은 너무 힘들어. 부모가 고통 없이 아이를 키우고자 하나, 나중에 고통의 쓰나미가 밀려든다. 고통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라고 온다. 그게 고통의 목적이다. 아이를 낳아보니 엄마를 알잖나. 고통이 오면, 사람은 왜 나만 그러냐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깊이만큼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다. 책에서는 못 찾는다. 그래서 제자백가는 다 위대하다. 왜? 더럽게 힘들었으니까!”

 

강 박사는 힘들 때 제자백가를 읽는다. 쉽고 편한 책보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의 책을 읽는다. 그래서 나의 고통은 사치 같아 보이는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한단다. 힘들고 답답하고 아프면, 더 힘든 사람을 찾아가라고 권한다. 고통에서 완화되면서 깊이를 구하는 방법이다. 

 

“헤밍웨이는 마초다. 그런데, 전쟁에 참여한 마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마초다. 부모에게 뭐든 잘 물려받은 마초와는 다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진짜 마초가 없다. 헤밍웨이 작품을 읽어보면 알잖나. 강하다. 문체도 수식이 없다. 헤밍웨이 작품은 깊다. 1, 2차 세계대전이 유럽 중심으로 일어나는데, 20세기 유럽의 작가들이 그래서 좋다. 평화로운 시기의 책은 수사가 화려하다. 그러나 20세기 서양 소설은 수식이 없다. 힘이 있다.”

 

성선설과 성악설이 나온 계기


대부분의 우리는 순자의 성악설, 맹자의 성선설, 이렇게 도식화하고 있다. 강 박사는 이렇게 외우지 말자고 권한다. 그 맥락을 알자고 말한다.

 

 “순자는 위기에 빠지면 친구들이 같이 죽자고 얘기했다. 막상 위기에 빠졌는데, 친구들이 자신을 두고 가니까 성악설이 나온 거다. 그러니 순자는 살 때는 낙천적이었다. 다 믿었다. 그러나 맹자는 굉장히 허무적인 사람이었다. 다 못 믿을 놈들이었던 거지. 그런데 전쟁이 나니 다 나를 도와주러 온 거다.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내세웠다.”

 

강 박사는 성선과 성악을 보편적인 주장이라고 보지 말라고 강조한다. 본성이라는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배신의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단순화된 도식으로 외우지 말고, 맹자와 순자를 읽을 것.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더불어 그는 빨리 보편화시키지 말라고 덧붙였다. 가장 나쁜 담론이 빨리 보편화하는 담론이다. 남자는 다 그래, 여자는 다 그래, 일본 사람들은 다 그래, 일베는 다 그래와 같은. 섣부른 일반화가 폭력을 낳기 때문이다.

 

장자에 대한 언급으로 들어가, 그는 자신이 쓴 장자는 2천년 동안 없었던 장자라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노자와 장자는 대립된 생각을 가졌다. 노자와 장자를 묶어 도가사상, 노장사상이라고 일컬으나, 두 사상가를 갈라지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장자의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이다. 길은 걸어가야 만들어진다! 그 말이 강 박사에게 어느 날 갑자기 확 다가왔다. 그전까지 장자를 다섯 번이나 읽고 원문을 필사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럼에도 그 한 마디로 장자는 그에게 다시 다가왔다.

 

“앞선 5~6년 동안 읽은 것은 읽은 게 아니었다. 내가 읽고 싶은 것만 읽은 거지. 보통 사람들은 이해되는 부분만 보고 받아들인다. 우리는 실제로는 안 읽는다. 책을 보면 변하고, 세상이 달리 보여야 한다. 그래야 책을 읽은 거지. 아니면 확인했을 뿐이다. 많은 사람이 『자본론』을 읽지만, 『자본론』을 읽지 않은 거다. 그걸 제대로 읽으면 자본이랑 맞장 뜨고 삼성과도 맞장을 떠야지. 책은 그런 거다. 나도 그전에는 허투루 읽은 거지.”

 

장자는 노자와 가장 큰 차이는 ‘도행지이성’에 있다. 노자에겐 도가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지만, 장자는 우리가 걸어가야 도가 만들어진다는 입장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노자는 기독교적, 장자는 무신론에 가깝다. 두 사람은 그만큼 다르다는 것이 강 박사의 설명이다.

 

“모든 사람들은 장자를 노자의 똘마니로 봤다. 장자는 인문주의자다. 신과 같은 존재에 복종하지 말고, 우리가 만들어가자고 주장했다. 각자가 길을 가고, 그 길로 합류되면 통일이 되고 평화가 올 거라고 봤다. 자기가 걸어가서 만나야 한다고 봤다. 이것, 민주주의의 원칙 아닌가. 민주주의는 백 명이 있어도 내가 있고, 열 명이 있어도 내가 있고, 한 사람이 있어도 내가 있는 것이다. 누가 길을 깔아줘서 가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너 각자의 길을 가라고 한 거지.”

 

책 읽기 전과 후, 당신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그렇게 만난 장자는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때서야 책 읽는 법을 알았던 것이다. 앞 사람의 해석서, 주석서를 읽고 아는 것이 아니라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과 같은 책 읽기의 필요성이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바람과 꽃에서도 배울 수 있는 자세.

 

“박사학위를 받은 날 정말 지쳤었다. 그리고 그날 다짐했다. 대학 같은 곳에 다시는 들어가지 않으리. 인생은 그렇게 결정된다. 도행지이성. 걸어가는데 까지가 길이다. 책에서 확인하지 마라. 책은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책은 읽고 나서 읽기 전과 달라져야 한다. 어디 가서 무슨 책 읽었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도 그렇게 해야 한다.”

 

세월호에 대한 언급 또한 잊지 않는다. 세월호의 전과 후, 그리고 나의 변화. 그는 고민거리를 던졌다. 세월호 사건으로 나는 과거와 달라졌을까. 아니면 TV에서 본 아주 슬픈 영화 같은 것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몇몇 사람들만 세월호로 인생이 바뀔 것이고, 몇몇 사람은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좌절하진 마라. 다른 것에서 그런 순간이 올 수 있다. 다만 한 번은 와야 한다. 인문학과 고전을 읽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살아 있으니 읽는 거다. 주변에 고전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에겐 고전이 아니어도, 여러분에겐 고전일 수 있다. 살아 있어서 고마운 거다.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보자. 내일 죽을 것 같다고 했을 때 옆사람을 어떻게 대할까. 우리는 평소 죽는다는 생각도 않고 아무렇게 사람을 대한다. 이번에 세월호 사건으로 아팠다면 주변 가족이나 사랑했던 사람을 보면, 지구라는 배를 타고 언젠가는 죽고 실종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달라질 것이다.”

 

고통을 경험하면 깊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고통을 경험하고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잖나.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오에 겐자부로가 개인적 체험에 대해 묘사한 구절이 있다. 늪에 천천히 빠져드는 것을 묘사하는 구절인데, 정말 괴롭다. 나쁜 사람이다(웃음).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을 탄 이유가 있다. 깊이가 있다. 세월호를 통해 바닥의 경험을 한 경우가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있을 때 잘하자, 이런 것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겪을 필요가 없는 고통도 있다. 아버지가 성추행을 했다거나. 그런 걸 겪어서 뭐하겠는가. 안 겪어야 하는 것이 있다. 너무 아파서 다른 사람 아픈 게 보이는 경우가 있고, 아직도 계속 아파서 다른 사람 고통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을 파괴로 몰아가는 고통은 비극이다. 인문학자가 손을 델 수 없는 부분이다. 삶에는 그런 것이 있다. 인간의 담론이 얼마나 작은데. 인간의 담론을 연구하다보면 가장자리와 여백이 보인다. 교훈을 얻을 수 있을 만큼만, 성숙해질 수 있을 만큼만 힘들면 좋겠다. 뿌리 채 뽑히는 고통은 식물을 죽이나 적당히 바람이 불면 식물은 강해진다. 다른 사람에게 뿌리 채 뽑히는 고통을 주지 마라. 뿌리를 뽑아버리는 폭력성은 위험하다.

 

결혼 10년 차이다. 예전에 강신주씨가 했던 사랑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좀 어렵더라. 공감은 할 수 있는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더라.

 

부부 간에 싸움도 줄어들고 고요해지는 건 성숙이 아니다. 상대방에 대해 욕망을 안 가지는 건 무욕의 땅으로 간 거다. 베르테르의 슬픔을 왜 이해 못할까. 사랑을 못해본 아이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어도 안 읽힌다. 읽을 준비가 안 돼 있는 거지. 아직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이다. 격정적으로 살아가고 사랑해야 한다. 읽어도 모르겠다면, 또 읽어야 한다. 내가 베르테르 시절에 살면, 나도 이랬을 거라고 공감이 돼야 한다.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친구를 위로해줬다고 치자. “사람은 다 죽는다”는 말로 위로가 안 된다. 결혼 10년 차 됐다는 남편이 했다는 이 질문은 되게 중요하다. 이해보다 공감이 됐다는 것도 되게 중요하다. 부부가 이 자리에 함께 온 것은 비범한 일이다(웃음). 우리는 사랑이 이뤄지지 않을 때 연애편지를 쓴다. 글을 쓴다. 사실 내가 쉽게 설명을 못한다.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면 내 잘못이다.

 

강 박사의 마지막 인사말로 강연은 마무리됐다.

 

“많은 사건, 많은 일이 있다. 삶은 겪으려고 태어나는 것이다. 보호 받으려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많이 사랑하려면 많이 아파야 한다. 엄마가 많이 아프고 많은 일을 겪으면 아이가 난리를 쳐도 다 품는다. 품이 넓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거칠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힘들고 사랑을 줄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있다. 이건 좋은 대학을 다녀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용기다.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함이다. 세월호 경험은 크게 도움이 되는 경험이 아니다. 고통이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 사람을 파괴하는 경험도 있고,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경험도 있는데, 세월호는 가장 끔찍한 사건이다. 잘 지내시길 바란다.”


망각과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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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과 자유 강신주 저 | 갈라파고스
철학자 강신주는 장자를 통해 인문학의 최종 목적이 사랑과 연대를 가능하게 새로운 기억들을 구성할 수 있으며, 장자의 정신을 모든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고 밝힌다. 이 책에서 핵심어로 등장하는 망각은 단순한 단절이나 잊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망각은 어떤 의미에서 타자에게로 건너가기 위한 가벼움과 경쾌함을 제공해줄 뿐이지만, 망각이나 비움을 통해서 그나마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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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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