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추리소설을 찾아 읽다 보면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범죄를 다루는 미스터리, 스릴러가 ‘사회’와 연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 굳이 ‘사회파’란 말을 붙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검은 집』의 기시 유스케의 말을 빌려 일본 미스터리의 역사를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미스터리의 번성기에는 에도가와 람포나 요코미조 세이시 등을 필두로 엽기적이며 괴기스러운 환상적인 미스터리가 주류였고 이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마츠모토 세이초로 대표되는 사회파가 대두했다....한편 엘러리 퀸이나 S. S. 반 다인의 영미권 고전 추리소설을 주로 읽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논리로 의문을 규명한다는 원점으로 회귀하자는 운동이 생겨났다. 이것이 신본격 추리소설이다.”
일본에서 사회파 추리소설이 시작된 것은 1958년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이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거대한 추리소설 붐이 일어났다. 이전에도 에도가와 람포와 요코미조 세이시 등이 추리소설 애호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를 필두로 한 ‘사회파’ 추리소설은 하나의 장르를 넘어 사회현상이 되었다. 당시 마쓰모토 세이초는 추리소설이 ‘너무 트릭만을 중시하며 유희적 경향으로 빠지는 것에 반대하여 극한상황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파고들 것’을 주장했다. 마쓰모토 세이초, 모리무라 세이치, 미즈카미 츠토무 등 ‘사회파’로 불리는 작가들은 기이한 사건이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보다는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는 추리소설에 힘을 기울였고 본격 추리소설은 침체기에 들어갔다. 이처럼 작품의 사회성과 범인의 동기 그리고 심리를 중시하는 작품들을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부른다.
영화 <검은 집>
당시 마쓰모토 세이초가 인기를 끈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사회파 추리소설은 보통 사람의 보통의 인생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중년 남성의 불륜 이야기나 회사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와 음모 등 현실적인 이야기는 독자에게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을 보는 리얼리티를 느끼게 했다. 추리소설은 특이한 사건과 기발한 트릭을 묘사하는 ‘게임’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걸쳐 있는 범죄와 사회악을 그리는 문학이었다. 추리소설 독자만이 아니라 보통의 독자가 사회파 추리소설을 읽게 된 것은 그런 핍진성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 정통파 작가다운 장중한 묘사와 치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일본 추리소설을 한 단계 올려놓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사회파 추리소설이 단지 동기만을 추적해간 것은 아니다. 『점과 선』은 규슈 지방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펼쳐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녀의 치정에 얽힌 동반자살로 보였지만 이면에는 기업의 부정부패가 뒤얽힌 오직(汚職) 사건과 은폐된 진실이 있었다. 1958년 당시는 신칸센이 막 운행을 시작했을 때였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도쿄에서 규슈의 하카타, 다시 북해도까지 연결되는 신칸센을 이용하여 교묘한 알리바이 트릭을 만들어낸다. 기존의 추리소설 독자라면 『점과 선』의 치밀하게 짜여진 알리바이 트릭에 도전하는 즐거움이 있다. 일반 독자는 마스모토 세이초의 강건한 필력에 힘입어 수수께끼를 따라가다 보면 사소해 보이는 사건의 이면에 거대한 사회악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추리의 재미만이 아니라 사회의 어둠에 대한 것까지 알게 되는 것이다.
초기의 일본 추리소설은 그로테스크하고 엽기적인 환상과 범죄를 많이 다루면서 인기를 끌었다. 에도가와 람포나 요코미조 세이시 등의 환상, 괴기, 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한 소설과는 대조적으로 마쓰모토 세이초 등은 현실적 사건과 치밀한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한 추리소설을 썼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인 에도가와 람포는 『D언덕의 살인사건』, 『괴인12면상』 등 전통적인 추리, 모험소설부터 『다락방의 산보자』 『음수』 등 엽기적인 소설까지 다양한 오락소설을 발표했다. 에도가와 람포의 기괴한 몽상은 추리소설의 직접적인 요소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뒤틀린 충동이라는 점에서 연관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을 의자로 만든다거나 다락방에서 아래층의 여인을 훔쳐보는 남자 등 엽기적이고 에로틱한 몽상인 것 또한 분명하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팔묘촌』 『악마의 공놀이 노래』 등은 당시에 ‘괴기스러운 본격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에도가와 람포와 요코미조 세이시를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추리소설의 작가로만 치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에 기이한 사건들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부를 파고 들어가면 그런 사건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모순들이 존재한다. 에도가와 람포의 환상과 욕망 역시 마찬가지다. 뒤틀린 욕망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런 욕망이 분출했을 때 인간은 어디로 가는지를 에도가와 람포는 예리하게 그리고 있다. 본격 추리 역시,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추리소설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사건이란 대체 무엇이 있을까? 니시오 이신의 『잘린 머리 사이클』처럼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캐릭터가 등장하여 전혀 있을 법 하지 않은 기이한 사건들을 풀어가는 것? 귀신이나 요괴 등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사건들? 에드거 앨런 포우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이나 코넌 도일의 『바스커빌가의 개』 등 초기의 추리소설도 기이한 사건들을 풀어가다 보면 현실 속의 범인과 동기가 드러나게 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결국 사회파는 일종의 안티테제일 뿐이다. 일본에서도 사회파 추리를 ‘본격추리소설’과 대립, 독립된 장르로 보지는 않는다. 소설의 주제에 사회성이 있고, 논리적인 수수께끼 풀이가 공존하는 것은 결코 모순된 일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사회파가 나오고, 다시 신본격이 나오고 하면서 융합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는 고층빌딩의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트릭이 중요하게 제기되면서 동시에 범인의 심리 또한 중요하게 그려진다. 그가 왜 범죄를 일으킬 마음을 품었는지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본격과 사회파란 편의적인 구분일 뿐이다. 마쓰모토 세이초도 본격추리를 결코 폄하하지 않았다. 마니아들이 즐기는 트릭에만 열중하는 경향을 비판했던 것이고, 이후 ‘사회파 추리’라는 명목으로 선정적인 풍속소설에 치우치는 경향도 심각하게 비판했다. 1966년 요미우리 신문사에서 나온 ‘신본격추리소설전집’ 서문에서는 ‘네오 본격’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며 사회파 추리의 선정적인 전락을 비판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70년대 요코미조 세이시 리바이벌 붐에 대해서도, 당대에 좋은 미스터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미스터리 본연의 태도인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트릭을 언제나 중시했던 것이다.
『점과 선』 『제로의 초점』 『짐승의 길』의 마쓰모토 세이초와 『청춘의 증명』 『인간의 증명』의 모리무라 세이치가 형성, 발전시킨 사회파 추리는 일본 특유의 범죄소설을 만들어냈다. 사회파 추리는 사회적인 문제를 테마로 삼고, 탐정보다는 형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트릭보다는 사회적인 범죄에 얽힌 인간군상을 묘사하는 데 역점을 두는 스타일로 발전해갔다.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오히려 희생자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하여, 과거의 만행을 폭로하기 위하여 범죄를 계획한다. 사회파 추리는 급속한 경제개발에 따른 개인이나 집단의 피해, 정치권력의 폭력 등 명백한 ‘범죄 집단’으로 규정되지 못하는 권력의 범죄를 폭로하는 소설로서도 역할을 했다.
사회파 추리의 강세는 한편으로 부작용도 있었다. 사회의 어둠을 쫓는다는 명목이지만, 상업적인 목적으로 성과 폭력의 극단적인 묘사를 일삼는 작품들이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범인의 동기를 추적하고 사회악을 고발하는 본연의 목적보다 범죄, 악당을 쫓는 과정의 액션이나 스펙터클에만 치중하다가는 자칫 미스터리로서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된다. 80년대 한국의 추리소설이 몰락하게 된 이유의 하나도 그것이었다. 사회파 추리를 왜곡된 형태로 받아들여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흘러갔고, 상업적이고 저질이라는 비난과 함께 문학에서 추리소설의 지위는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사회파 추리는 사회의 세속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그대로 담는 것이 아니라, 사회악의 근원을 고발하고 응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광의의 사회파 추리는 지금도 일본에서 인기가 좋다. 본격 추리는 게임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장르 애호가가 아니고는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 독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트릭 자체보다 사람의 마음이다. 왜 그가 죽어야 했는지, 왜 죽여야만 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추리소설을 점점 파고들면 사회만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으로도 깊이 침잠하게 된다. 『마크스의 산』으로 나오키상을 탄 다카무라 카오루가 ‘내가 추리소설을 생각하고 쓰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여성의 마음 그 바닥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아웃』과 『그로테스크』의 기리오 나쓰오가 범죄를 넘어선 세계의 여성을 그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범죄의 이유를 쫓아가면 필연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인간 내면의 도저한 탐구를 요구하게 된다. 추리소설은 범죄와 인간을 그린 소설인 것이다.
[관련 기사]
- '실화 괴담'이 주는 진정한 공포
-화성, 더 이상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장르소설, 알고 읽으면 더 재밌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앙ㅋ
2014.07.02
한국은 웹툰 시장이 사회파물을 파고들어 영화 드라마로 제작되고 있네요.
하이얀별
2014.03.29
다도기
2014.03.26
"모래그릇 1, 2", "점과 선", "불과 해류", "푸른 묘점", "제로의 초점, "미스터리의 계보", "시간의 습속",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선 상, 중, 하", "10만분의 1의 우연", "일본의 검은 안개 상, 하" 요렇게 읽었습니다. 누구에게든 그 분의 작품을 권하고 있지만, 아직 그 분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은 제 주변엔 없어서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주책을 좀 떨어 보았습니다.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