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청춘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2001년 발표한 데뷔작 『빙과』 는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라이트노벨이다. 살인이나 폭력 같은 엄중한 범죄가 벌이지는 것은 아니고 『빙과』 는 과거의 사건을 ‘문서’를 통해 파헤치는 단순하면서도 정적인 이야기다.
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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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고등학교 시절은 장밋빛인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빙과』 는 이렇게 시작된다. ‘고교 생활 하면 장밋빛, 장밋빛 하면 고교 생활. 이렇게 호응관계가 성립된다.’라고.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오레키 호타로는 회색의 인간이다. 어디에도 참여하지 않고, 열광하지 않고, 고고하게 홀로 생각하고 움직인다. 오랜 친구인 후쿠베 사토시에 의하면 ‘호타로는 움직이기 귀찮아해서 먼저 생각부터 하는 소극적인 녀석’이다. 호타로 자신의 말에 의하면 ‘안 해도 되는 일은 안 한다. 해야 하는 일은 간략하게’ 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일 뿐이고, 어느 쪽이건 비슷한 말인데, 사토시가 말하는 회색은 그리 부정적인 뉘앙스가 아니다. 만약 비판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면 ‘무색’이라 했을 것이라고 사토시는 말한다. 어쨌거나 『빙과』 는 회색의 호타로가 ‘옆집 잔디밭이 더 푸르러 보이게 마련’인 세상 이치대로 조금씩 ‘장밋빛’으로 다가가는 이야기다.
인도에 여행을 간 누나에게 편지가 온다. 지금 호타로가 다니는, 자신의 모교 동아리인 고전부가 폐교 위기에 있다며 가입해 달라는 것이다. 적만 두면 되는 것이고, 어차피 하고 싶은 일도 없었기에 들어주기로 한다. 그런데 고전부의 첫날 동아리실에서 지탄다 에루를 만난다. 삼촌이 다녔던 고전부에 들어온 에루는 모든 것에 호기심이 가득한 여고생이다. 사토시도 어쩌다 보니 고전부에 가입하고, 사토시를 좋아하고 어린 시절부터 호타로의 적수였던 이바라 마야카도 들어온다. 고전부가 4명의 어엿한 동아리가 된 것이다.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상은 애초에 파탄 났고 호타로는 계속 뭔가를 해결해야만 하는 혹은 풀어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지탄다 에루가 고전부에 들어온 것은 외삼촌 때문이다. 지금은 행방불명 상태인 외삼촌은 에루가 어릴 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느 날 삼촌이 다녔다는 고전부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을 때, 에루는 너무나 무서워서 울었다. 그런데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서웠다는 사실만이 기억날 뿐. 이제 삼촌은 실종 7년째이고, 그 기억을 찾으면서 매듭을 짓고 싶다는 에루의 말에 호타로는 넘어간다. 그리고 사토시, 마야카와 함께 과거의 사건에 대한 단서들을 찾아간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2001년 발표한 데뷔작 『빙과』 는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라이트노벨이다. 살인이나 폭력 같은 엄중한 범죄가 벌이지는 것은 아니고 『빙과』 는 과거의 사건을 ‘문서’를 통해 파헤치는 단순하면서도 정적인 이야기다. 고전부 부장이었던 에루의 외삼촌에 대한 단서는 과거의 문집에 있었다. 우선 문집을 찾아야 하고, 문집에 실린 ‘그 사건’에 대한 글을 찾아낸다. 그리고 다른 문서들을 찾아간다. 삼촌을 찾아내면 바로 증언을 들을 수 있겠지만 불가능하니 과거의 흔적을 쫓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찾아낸 단서들을 종합하고, 분석하고, 가설을 세워 합당한지를 검증한다. 필요한 것은 단서를 찾아내는 능력, 찾아낸 증거를 분석하는 능력,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능력 등등이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전부의 학생들은 저마다 캐릭터가 있다. 화자인 호타로에 의하면 무척이나 개성적이다. 후쿠베 사토시는 ‘쓸모없는 지식은 쓸데없이 풍부한 주제에 학업에는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다.’ 역사, 과학 등 온갖 지식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파고드는 것. 하지만 단점이 있다. ‘심원한 지식과 풍부한 정보를 갖추고 있으나 사용에는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는 것.’ ‘데이터베이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말처럼 사토시는 일단 정보를 늘어놓기는 하지만 사건의 핵심으로는 들어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바라 마야카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는지 항상 검증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성적이 상위권이다. 다만 더욱 연마해 최고의 경지에 달할 마음은 조금도 없는 것 같다.’ 마야카는 호기심이라기보다 사실을 의심하고, 상황을 검증하기 위해 도전한다. ‘이바라는 의심한다. 따지고 추궁한다.’ 정보를 모아놓고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다. 상황이나 감정에 치우치는 경우도 없기 때문에 브레이크 역할도 종종 한다.
지탄다 에루는 ‘부품이 아니라 시스템을 알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삼촌에 관한 이야기로 말하자면, 삼촌이 한 말을 앎으로써 지탄다는 삼촌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인식을 보완하고 싶은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에루는 그야말로 호기심 아가씨다. 그녀가 궁금한 건 단지 ‘사실’이 아니다. 그 사실을 통해서 전체상을 파악하는 것, 관계를 통해서 그 흐름과 변화를 지켜보는 것. 사토시가 하나의 사실을 파고든다면, 에루는 그 사실들이 쌓인 전체를 바라본다. 대신 에루는 현실의 작은 것들에 서툴고, 소홀하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 이상의 기억력과 웬만하지 못한 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호타로는? 스스로 ‘나는 보통이다. 회색.’이라고 말한다. 그의 행동에서 보면 일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회색이라는 의미는 뭔가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호타로는 바라보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에루가 보려고 하는 시스템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다. 그것이 탐정의 기본 요건이고.
‘고전부’ 시리즈의 1권인 『빙과』 는 과거의 문집과 다른 정보들을 통해 1967년에 있던 사건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이야기다. 추리소설 마니아였던 요네자와 호노부는 정통 미스터리의 요소들을 『빙과』 에 한껏 담아냈다. 고전 추리소설인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독초콜릿 사건』 와 조세핀 테이의 『진리는 시간의 딸』 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학교 축제의 이름인 ‘간야제’와 문집 이름인 ‘빙과’에도 수수께끼가 담겨 있다. 현실과 비현실이 미묘하게 겹쳐진 라이트노벨의 공간에서 본격 미스터리는 대단히 조화롭다. ‘고전부’ 시리즈는 함께 출간된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에 이어 『쿠드랴프카의 순서』, 『멀리 돌아가는 히나 인형』, 『두 사람의 거리 추정』 으로 이어진다. 작품 속의 시간은 고등학교 3년간이지만, 소설이 쓰여진 시간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다. 『빙과』 는 단지 데뷔작이 아니라 요네자와 호노부의 지대한 애정이 담긴, 원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빙과』 는 단지 게임으로 과거의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풀고 나자 그들은 조금씩 성장한다. 그들이 보게 된 것은 30년도 전의 사건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버린 사건. 그리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 ‘일본 전역에 에너지가 요동치던 시대는 내게, 그리고 십중팔구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녀석들에게도 상상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외삼촌은 에루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강해지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만약 약하면 비명도 지르지 못할 날이 올 거라고. 그렇게 되면 전 산채로…’ 시대는 변했지만, 인간의 조건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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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여행을 간 누나에게 편지가 온다. 지금 호타로가 다니는, 자신의 모교 동아리인 고전부가 폐교 위기에 있다며 가입해 달라는 것이다. 적만 두면 되는 것이고, 어차피 하고 싶은 일도 없었기에 들어주기로 한다. 그런데 고전부의 첫날 동아리실에서 지탄다 에루를 만난다. 삼촌이 다녔던 고전부에 들어온 에루는 모든 것에 호기심이 가득한 여고생이다. 사토시도 어쩌다 보니 고전부에 가입하고, 사토시를 좋아하고 어린 시절부터 호타로의 적수였던 이바라 마야카도 들어온다. 고전부가 4명의 어엿한 동아리가 된 것이다.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상은 애초에 파탄 났고 호타로는 계속 뭔가를 해결해야만 하는 혹은 풀어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지탄다 에루가 고전부에 들어온 것은 외삼촌 때문이다. 지금은 행방불명 상태인 외삼촌은 에루가 어릴 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느 날 삼촌이 다녔다는 고전부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을 때, 에루는 너무나 무서워서 울었다. 그런데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서웠다는 사실만이 기억날 뿐. 이제 삼촌은 실종 7년째이고, 그 기억을 찾으면서 매듭을 짓고 싶다는 에루의 말에 호타로는 넘어간다. 그리고 사토시, 마야카와 함께 과거의 사건에 대한 단서들을 찾아간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전부의 학생들은 저마다 캐릭터가 있다. 화자인 호타로에 의하면 무척이나 개성적이다. 후쿠베 사토시는 ‘쓸모없는 지식은 쓸데없이 풍부한 주제에 학업에는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다.’ 역사, 과학 등 온갖 지식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파고드는 것. 하지만 단점이 있다. ‘심원한 지식과 풍부한 정보를 갖추고 있으나 사용에는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는 것.’ ‘데이터베이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말처럼 사토시는 일단 정보를 늘어놓기는 하지만 사건의 핵심으로는 들어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바라 마야카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는지 항상 검증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성적이 상위권이다. 다만 더욱 연마해 최고의 경지에 달할 마음은 조금도 없는 것 같다.’ 마야카는 호기심이라기보다 사실을 의심하고, 상황을 검증하기 위해 도전한다. ‘이바라는 의심한다. 따지고 추궁한다.’ 정보를 모아놓고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다. 상황이나 감정에 치우치는 경우도 없기 때문에 브레이크 역할도 종종 한다.
지탄다 에루는 ‘부품이 아니라 시스템을 알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삼촌에 관한 이야기로 말하자면, 삼촌이 한 말을 앎으로써 지탄다는 삼촌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인식을 보완하고 싶은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에루는 그야말로 호기심 아가씨다. 그녀가 궁금한 건 단지 ‘사실’이 아니다. 그 사실을 통해서 전체상을 파악하는 것, 관계를 통해서 그 흐름과 변화를 지켜보는 것. 사토시가 하나의 사실을 파고든다면, 에루는 그 사실들이 쌓인 전체를 바라본다. 대신 에루는 현실의 작은 것들에 서툴고, 소홀하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 이상의 기억력과 웬만하지 못한 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호타로는? 스스로 ‘나는 보통이다. 회색.’이라고 말한다. 그의 행동에서 보면 일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회색이라는 의미는 뭔가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호타로는 바라보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에루가 보려고 하는 시스템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다. 그것이 탐정의 기본 요건이고.
‘고전부’ 시리즈의 1권인 『빙과』 는 과거의 문집과 다른 정보들을 통해 1967년에 있던 사건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이야기다. 추리소설 마니아였던 요네자와 호노부는 정통 미스터리의 요소들을 『빙과』 에 한껏 담아냈다. 고전 추리소설인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독초콜릿 사건』 와 조세핀 테이의 『진리는 시간의 딸』 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학교 축제의 이름인 ‘간야제’와 문집 이름인 ‘빙과’에도 수수께끼가 담겨 있다. 현실과 비현실이 미묘하게 겹쳐진 라이트노벨의 공간에서 본격 미스터리는 대단히 조화롭다. ‘고전부’ 시리즈는 함께 출간된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에 이어 『쿠드랴프카의 순서』, 『멀리 돌아가는 히나 인형』, 『두 사람의 거리 추정』 으로 이어진다. 작품 속의 시간은 고등학교 3년간이지만, 소설이 쓰여진 시간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다. 『빙과』 는 단지 데뷔작이 아니라 요네자와 호노부의 지대한 애정이 담긴, 원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빙과』 는 단지 게임으로 과거의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풀고 나자 그들은 조금씩 성장한다. 그들이 보게 된 것은 30년도 전의 사건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버린 사건. 그리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 ‘일본 전역에 에너지가 요동치던 시대는 내게, 그리고 십중팔구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녀석들에게도 상상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외삼촌은 에루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강해지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만약 약하면 비명도 지르지 못할 날이 올 거라고. 그렇게 되면 전 산채로…’ 시대는 변했지만, 인간의 조건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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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과 요네자와 호노부 저/권영주 역 | 엘릭시르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호평을 얻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데뷔작이자 애니메이션 <빙과>의 원작 소설인 ‘고전부’ 시리즈가 엘릭시르에서 출간되었다. 고전부 시리즈는 고등학교의 특별 활동 동아리 고전부에 소속되어 있는 학생들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수께끼를 해결해 나가는 학원 청춘 미스터리이다.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의 근간이 되는 고전부 시리즈는 고등학생의 일상에 미스터리를 접목시켜 독특한 분위기의 청춘 소설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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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책읽는낭만푸우
201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