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음악적 동지애가 만들어 낸 유쾌한 합작품 - 카니발(Carnival) <이적+김동률 프로젝트 앨범> (1997)
젊은 음악인들의 음악적 향연이었던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잼 콘서트에서 첫 인연을 맺은 이 동갑내기 뮤지션들에게 이 난관은 서로를 자연스레 음악적 동반자로 맞아들이게 했다.
201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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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붐이 일었던 1990년대, 이를 이끈 두 그룹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동률과 서동욱의 ‘전람회’, 이적과 김진표의 ‘패닉’이죠. 이 중에서도 두 그룹의 음악적 브레인인 ‘김동률’과 ‘이적’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은 대단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서로에게서 리듬감과 스트링의 클래시컬한 멜로디를 수혈받았기 때문이죠. 복고 분위기의 「그땐 그랬지」를 시작으로 「그녀를 잡아요」, 인순이가 리메이크해 다시 한번 히트를 기록한 「거위의 꿈」이 있는 카니발의 프로젝트 앨범입니다.
카니발(Carnival) <이적 김동률 프로젝트 앨범> (1997)
이제 ‘이적’에게는 ‘공감’을 넘어 ‘감동’을 요구하는 음악이 필요했고, 김동률의 느슨한 현 흐름에는 무언가 감각적인 돌파구가 절실했다. 이즈음에 만난 ‘패닉’ ‘전람회’라는 두 그룹의 결합은 그러나 시기상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데뷔작인 <패닉>의 뒤늦은 히트로 쉼 없이 방송에 얼굴을 내밀며 뮤지션과 엔터테이너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던 ‘이적’은 좀 더 록적인 접근을 원했고, 이는 곧 멜로디를 숨기고 둔중한 베이스와 날카로운 사운드가 넘실대는 패닉 2집 <밑>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달팽이」가 패닉의 전부인 줄 알았던 팬들에게는 당연히 이 음침함이 이전처럼 잘 들릴 리 없었고 바짝 날이 선 가사는 몇몇 곡들의 방송 정지라는 후유증까지 동반했다. 김동률의 형편도 더 나은 건 없었다. 전람회의 3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졸업’하고 이제 학생으로 돌아가겠다던 그의 ‘고결한’ 선언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였던 탓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불평 어린 시선들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찰나였다.
젊은 음악인들의 음악적 향연이었던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잼 콘서트에서 첫 인연을 맺은 이 동갑내기 뮤지션들에게 이 난관은 서로를 자연스레 음악적 동반자로 맞아들이게 했다. 24세의 동갑내기, 비슷한 팬 베이스, 싱어송라이터, 각기 다른 두 남성 듀오 그룹의 리더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그들은 그러나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전람회 2집에 들어오면서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큰 규모의 현 세션에 올인한 그는 누가 봐도 정통 문법에 충실한 전형적인 발라드 뮤지션이었다. 가사는 진중해야 하고, 음악은 늘 진지해야 하며, 어떤 일말의 일탈적인 시도도 절대 허용하지 않는, 다분히 클래시컬한 멜로디에 집중했던 그였다.
이적은 달랐다. 「왼손잡이」 「아무도」로 이어지는 펑키(funky) 리듬 속에서 뽑아 내는 캐치한 멜로디 라인은 그의 전매특허였으며 「냄새」 「혀」 등에서 내뱉은 신랄하고도 공격적인 가사, 밀고 당기는 그루브함과 저돌적인 리듬은 그의 곡 전반을 지배했다. 또, 가끔씩은 은근슬쩍 장난도 칠 줄 알았고 은유와 함축으로 거침없이 린치를 가할 줄도 알았다. 조금은 고지식하고 모범생 답안지 같은 김동률의 음악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기 발랄함으로 무장한 이단적인 그의 음악은 이렇게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런 둘이 만났다. 선율과 리듬이 만났으니 이 둘에게도 뽑아 낼 수 있는 절충안 장르는 분명히 있었다. 해답은 펑크(funk). 우선, 해리 코닉 주니어(Harry connick JR.)의 느낌이 나는 뉴올리언스풍의 브라스가 필요했다. 그래서 세계적인 브라스 세션맨인 제리 헤이(Jerry Hey) 팀을 끌어 왔고, 펑키(Funky) 향이 그득한 건반의 재즈 애드립도 필요하니 평소 친분이 있던 ‘김광민’도 불러들였다. 각자의 주특기로 삼은 것을 거침없이 뿜어냈던 타이틀, 그것이 바로 「그땐 그랬지」다.
참 어렸었지 / 뭘 몰랐었지 / 설레는 젊음 하나로 그땐 그랬지.
딴에는 세상이 무너진다/ 모두 끝난 거다/ 그땐 그랬지.
족히 불혹은 넘겨야 나올 것 같은 이런 가사는 겨우 24세의 열혈 청년들의 눈으로 써내려 간 회고에 불과했다. “도대체 인생을 얼마나 살아 봤기에!”라는 애정 어린 투덜거림이 나올 법도 했지만 거기에 숨겨진 20대만의 보편적 정서까지 무시할 순 없었다. 대학 입시, 연애, 군 입대, 동화 같은 소년 시절의 꿈을 담담하게, 어쩌면 능청스러울 정도로 풀어내는 보컬, 「그땐 그랬지」에 발맞추어 정확히 악센트를 두는 멜로디,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절름발이 리듬 덕에 이 곡은 라디오 전파를 독식하며 참 잘도 흘러갔다.
제리 헤이 팀까지 가세한 브라스 편곡, 짙게 배어 있는 오르간은 말할 것도 없고, ‘미디 프로그래밍’을 제한하고 50인조 오케스트라와 어쿠스틱 악기들의 리얼 사운드를 지향한 이 앨범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복고’였다. 이런 이미지는 비단 사운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머리를 붙인 채 앞으로 쓸어내린 헤어스타일, 두툼한 뿔테 안경, 밤색 조끼, 솔리드핏의 바지, 재킷에 꽂은 코사주와 행커칩까지 그들은 복고적인 이미지 메이킹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음악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비친 그들은 결국, 이 곡이 추수한 성공으로 그해 ‘영상 음반 대상’까지도 거머쥐게 된다.
시원한 삼바 리듬이 리드하는 「축배」 역시 「그땐 그랬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당시 가요계를 지배한 조악한 댄스 사운드에 관한 준엄한 경고라 할만 했다. 그들의 말마따나 모든 음원이 담겨져 있는 미디 하나로 ‘뚝딱’ 만들어 내지 않고도 다양한 퍼커션의 리듬만으로 충분히 속도감을 느낄 수 있음을, 어쿠스틱의 악기 사용만으로 그 못지않은 댄서블한 사운드를 그려 낼 수 있음을 훌륭히 증명했다. 그해 댄스 주류와 대치하는 색다른 방법론임에는 분명했다.
사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기반을 탄탄히 다진 두 그룹의 음악 작가가 만난 프로젝트 앨범은 별 어려움 없이 히트를 담보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끝내 해결되지 않을 중요한 문제가 있다. 독특한 색을 띤 둘이 더해져 뭔가 새로움이 창출되는 것이 아닌, ‘패닉’과 ‘전람회’의 곡 나열이라는 비판만은 피하고 싶었을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이 문제에서만큼은 예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공동 작사, 작곡’임을 거듭 강조하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들의 함묵과는 무관하게 작법의 구분은 확연히 드러났다. 완전한 복고 펑크(funk) 리듬을 타고 흐르는 「롤러코스터」, 어쿠스틱 기타의 소리가 듣기 좋은 「벗」은 분명 이적의 것이었고, 아침에 침대에서 함께 눈을 뜬 연인의 모습을 묘사한 「넝쿨」의 가사도, 소년의 순수한 꿈을 그린 「비누인형」의 가사도 분명 그의 것이었다.
반면, 전람회 시절의 「삶」 「Blue christmas」로 이어지는 재즈풍의 「넝쿨」, 김동률이 단골 소재로 삼았던 스트링이 지배하는 마이너 발라드 「농담」, 2007년 인순이가 디지털 싱글로 발표하면서 다시 주목받은 「거위의 꿈」은 바로 두말할 나위 없는 김동률의 것이었다.
이렇듯, 이들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패닉과 전람회의 중간이라는 비판을 피해 갈 수 없었고, 사실 편곡을 위시한 연주 전반적인 면에서도 제리 헤이 팀과 김광민의 피아노가 아주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허나, 후에 그들이 각자의 솔로 앨범에의 변화가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앨범으로 인한 이들의 편견을 조금이나마 해소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김동률 솔로 1집에서 조금은 노골적인(?)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Ebony eyes」의 오마주가 되어 버린 「나의 오랜 친구들」은 이 앨범의 「그녀를 잡아요」의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갔고, 이적 또한 이때의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 이를테면 재즈적인 구성, 대규모의 악기 편성의 발라드를 흡수하지 못했다면 블루스 느낌의 「Rain」, 소울의 터치를 가한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는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팽팽하게 살다가 한번쯤은 느슨해져 보고 싶을 때, 꽉 짜인 일상에서 한번쯤 빠져나가게 해 주는 음악을 꿈꿨던 그들은 여기에 ‘무모함의 미학’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우선, 둘의 만남부터가 이질적이었던 이 앨범은 축제의 요란함과 차분함이 공존하고 요동치는 베이스와 정제된 곡 구성, 복고적이지만 미래를 노래하는 ‘무모한’ 결합이었기에, 곡 자체의 즐거움이 감성의 접속을 쉽게 획득하게 했다.
“저에게는 없는 리듬감을 이적에게서, 또 저는 클래시컬한 현 편곡에 집중해서 서로를 보완한 앨범이죠. 서로 너무 달랐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그렇기에 <이적 김동률 프로젝트 앨범>은 온전히 두 뮤지션의 젊은 패기로, 그리고 그들이 주도한 음악적 결합으로 음악적 정체기를 돌파하려 했던 가장 올바른 접근법이었고, 정신적으로 교류한 두 청년의 순수한 음악적 동지애가 만들어 낸 아주 유쾌한 합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다.
카니발(Carnival) <이적 김동률 프로젝트 앨범> (1997)
이제 ‘이적’에게는 ‘공감’을 넘어 ‘감동’을 요구하는 음악이 필요했고, 김동률의 느슨한 현 흐름에는 무언가 감각적인 돌파구가 절실했다. 이즈음에 만난 ‘패닉’ ‘전람회’라는 두 그룹의 결합은 그러나 시기상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데뷔작인 <패닉>의 뒤늦은 히트로 쉼 없이 방송에 얼굴을 내밀며 뮤지션과 엔터테이너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던 ‘이적’은 좀 더 록적인 접근을 원했고, 이는 곧 멜로디를 숨기고 둔중한 베이스와 날카로운 사운드가 넘실대는 패닉 2집 <밑>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달팽이」가 패닉의 전부인 줄 알았던 팬들에게는 당연히 이 음침함이 이전처럼 잘 들릴 리 없었고 바짝 날이 선 가사는 몇몇 곡들의 방송 정지라는 후유증까지 동반했다. 김동률의 형편도 더 나은 건 없었다. 전람회의 3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졸업’하고 이제 학생으로 돌아가겠다던 그의 ‘고결한’ 선언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였던 탓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불평 어린 시선들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찰나였다.
전람회 2집에 들어오면서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큰 규모의 현 세션에 올인한 그는 누가 봐도 정통 문법에 충실한 전형적인 발라드 뮤지션이었다. 가사는 진중해야 하고, 음악은 늘 진지해야 하며, 어떤 일말의 일탈적인 시도도 절대 허용하지 않는, 다분히 클래시컬한 멜로디에 집중했던 그였다.
이적은 달랐다. 「왼손잡이」 「아무도」로 이어지는 펑키(funky) 리듬 속에서 뽑아 내는 캐치한 멜로디 라인은 그의 전매특허였으며 「냄새」 「혀」 등에서 내뱉은 신랄하고도 공격적인 가사, 밀고 당기는 그루브함과 저돌적인 리듬은 그의 곡 전반을 지배했다. 또, 가끔씩은 은근슬쩍 장난도 칠 줄 알았고 은유와 함축으로 거침없이 린치를 가할 줄도 알았다. 조금은 고지식하고 모범생 답안지 같은 김동률의 음악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기 발랄함으로 무장한 이단적인 그의 음악은 이렇게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런 둘이 만났다. 선율과 리듬이 만났으니 이 둘에게도 뽑아 낼 수 있는 절충안 장르는 분명히 있었다. 해답은 펑크(funk). 우선, 해리 코닉 주니어(Harry connick JR.)의 느낌이 나는 뉴올리언스풍의 브라스가 필요했다. 그래서 세계적인 브라스 세션맨인 제리 헤이(Jerry Hey) 팀을 끌어 왔고, 펑키(Funky) 향이 그득한 건반의 재즈 애드립도 필요하니 평소 친분이 있던 ‘김광민’도 불러들였다. 각자의 주특기로 삼은 것을 거침없이 뿜어냈던 타이틀, 그것이 바로 「그땐 그랬지」다.
참 어렸었지 / 뭘 몰랐었지 / 설레는 젊음 하나로 그땐 그랬지.
딴에는 세상이 무너진다/ 모두 끝난 거다/ 그땐 그랬지.
족히 불혹은 넘겨야 나올 것 같은 이런 가사는 겨우 24세의 열혈 청년들의 눈으로 써내려 간 회고에 불과했다. “도대체 인생을 얼마나 살아 봤기에!”라는 애정 어린 투덜거림이 나올 법도 했지만 거기에 숨겨진 20대만의 보편적 정서까지 무시할 순 없었다. 대학 입시, 연애, 군 입대, 동화 같은 소년 시절의 꿈을 담담하게, 어쩌면 능청스러울 정도로 풀어내는 보컬, 「그땐 그랬지」에 발맞추어 정확히 악센트를 두는 멜로디,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절름발이 리듬 덕에 이 곡은 라디오 전파를 독식하며 참 잘도 흘러갔다.
제리 헤이 팀까지 가세한 브라스 편곡, 짙게 배어 있는 오르간은 말할 것도 없고, ‘미디 프로그래밍’을 제한하고 50인조 오케스트라와 어쿠스틱 악기들의 리얼 사운드를 지향한 이 앨범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복고’였다. 이런 이미지는 비단 사운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머리를 붙인 채 앞으로 쓸어내린 헤어스타일, 두툼한 뿔테 안경, 밤색 조끼, 솔리드핏의 바지, 재킷에 꽂은 코사주와 행커칩까지 그들은 복고적인 이미지 메이킹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음악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비친 그들은 결국, 이 곡이 추수한 성공으로 그해 ‘영상 음반 대상’까지도 거머쥐게 된다.
시원한 삼바 리듬이 리드하는 「축배」 역시 「그땐 그랬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당시 가요계를 지배한 조악한 댄스 사운드에 관한 준엄한 경고라 할만 했다. 그들의 말마따나 모든 음원이 담겨져 있는 미디 하나로 ‘뚝딱’ 만들어 내지 않고도 다양한 퍼커션의 리듬만으로 충분히 속도감을 느낄 수 있음을, 어쿠스틱의 악기 사용만으로 그 못지않은 댄서블한 사운드를 그려 낼 수 있음을 훌륭히 증명했다. 그해 댄스 주류와 대치하는 색다른 방법론임에는 분명했다.
사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기반을 탄탄히 다진 두 그룹의 음악 작가가 만난 프로젝트 앨범은 별 어려움 없이 히트를 담보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끝내 해결되지 않을 중요한 문제가 있다. 독특한 색을 띤 둘이 더해져 뭔가 새로움이 창출되는 것이 아닌, ‘패닉’과 ‘전람회’의 곡 나열이라는 비판만은 피하고 싶었을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이 문제에서만큼은 예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공동 작사, 작곡’임을 거듭 강조하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들의 함묵과는 무관하게 작법의 구분은 확연히 드러났다. 완전한 복고 펑크(funk) 리듬을 타고 흐르는 「롤러코스터」, 어쿠스틱 기타의 소리가 듣기 좋은 「벗」은 분명 이적의 것이었고, 아침에 침대에서 함께 눈을 뜬 연인의 모습을 묘사한 「넝쿨」의 가사도, 소년의 순수한 꿈을 그린 「비누인형」의 가사도 분명 그의 것이었다.
반면, 전람회 시절의 「삶」 「Blue christmas」로 이어지는 재즈풍의 「넝쿨」, 김동률이 단골 소재로 삼았던 스트링이 지배하는 마이너 발라드 「농담」, 2007년 인순이가 디지털 싱글로 발표하면서 다시 주목받은 「거위의 꿈」은 바로 두말할 나위 없는 김동률의 것이었다.
이렇듯, 이들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패닉과 전람회의 중간이라는 비판을 피해 갈 수 없었고, 사실 편곡을 위시한 연주 전반적인 면에서도 제리 헤이 팀과 김광민의 피아노가 아주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허나, 후에 그들이 각자의 솔로 앨범에의 변화가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앨범으로 인한 이들의 편견을 조금이나마 해소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김동률 솔로 1집에서 조금은 노골적인(?)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Ebony eyes」의 오마주가 되어 버린 「나의 오랜 친구들」은 이 앨범의 「그녀를 잡아요」의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갔고, 이적 또한 이때의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 이를테면 재즈적인 구성, 대규모의 악기 편성의 발라드를 흡수하지 못했다면 블루스 느낌의 「Rain」, 소울의 터치를 가한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는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팽팽하게 살다가 한번쯤은 느슨해져 보고 싶을 때, 꽉 짜인 일상에서 한번쯤 빠져나가게 해 주는 음악을 꿈꿨던 그들은 여기에 ‘무모함의 미학’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우선, 둘의 만남부터가 이질적이었던 이 앨범은 축제의 요란함과 차분함이 공존하고 요동치는 베이스와 정제된 곡 구성, 복고적이지만 미래를 노래하는 ‘무모한’ 결합이었기에, 곡 자체의 즐거움이 감성의 접속을 쉽게 획득하게 했다.
“저에게는 없는 리듬감을 이적에게서, 또 저는 클래시컬한 현 편곡에 집중해서 서로를 보완한 앨범이죠. 서로 너무 달랐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그렇기에 <이적 김동률 프로젝트 앨범>은 온전히 두 뮤지션의 젊은 패기로, 그리고 그들이 주도한 음악적 결합으로 음악적 정체기를 돌파하려 했던 가장 올바른 접근법이었고, 정신적으로 교류한 두 청년의 순수한 음악적 동지애가 만들어 낸 아주 유쾌한 합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다.
글 / 조이슬 (esbo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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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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