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X 맨'이 재미없는 이유
2005.12.14
<엑스 맨>은 주말마다 제가 꼬박꼬박 보는 프로그램이긴 한데, 최근 몇 개월 동안 그 충성도가 조금 떨어졌습니다. 요새도 틀어놓긴 하는데, 그렇게 집중해서 보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그 동안 이 프로그램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길래, 제 관심이 줄어든 걸까요?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죠.
지나친 육체적 폭력 때문일까? 아뇨, ‘단결, 말타기’와 같은 프로그램처럼 출연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게임은 없어지는 게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죠. 지금은 그렇게 위험한 게임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들이 위험에 빠지는 걸 남몰래 즐겼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지나친 언어폭력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지’ 게임에 대해 그렇게 불평했지요. 하지만 그건 프로 레슬링을 진짜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런 언어 공격이 오간다고 해서 그 출연자들이 그걸 진짜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죠. 애들이 배운다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전 좋은 교육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바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방을 공격하고 자기를 방어하는 방법도 배워야죠. 자신의 위트를 이용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방법을 익히는 건 별 의미도 없는 육두문자들을 게으르게 토해내는 것보다 생산적입니다. 게다가 이런 ‘당연하지’ 게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겨우 그런 게임 때문에 사회적 상하 구조와 규율이 깨질까봐 걱정하는 겁쟁이들이라고요. 하긴 내밀만한 게 선배나 상사라는 딱지밖에 없는 인간들은 겁나기도 하겠어요.
그렇다면 얘들이 게임은 하지 않고 딴 짓만 하기 때문일까요? 스파이 찾거나 상대팀을 이기려는 짓은 안 하고 괜히 로맨스니, 짝짓기니 하는 것에만 목을 매기 때문에? 아뇨, 그것 역시 이 프로그램의 재미인 걸요. 물론 여기에 대해 짚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전 이게 특별히 이 프로그램의 해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재미를 떨어뜨린 요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잠시만요. 이론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괜히 딴 짓하기’는 <엑스 맨>이라는 게임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괜히 딴 짓하기’는 <엑스 맨>이라는 게임 프로그램의 재미를 만들어냈던 일등공신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이런 것입니다. 초반의 <엑스 맨>이 재미있었던 건 이 게임 프로그램이 표면에 내세운 모든 규칙들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룰에 따르면 이 게임은 팀을 갈라 상대편을 이기는 데 집중하고 그러는 동안 자기 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배반자인 엑스 맨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 룰 자체도 조금은 정상이 아니죠. 두 목적은 전혀 다르니까요.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한 수 더 떴습니다. 제대로 된 게임이라면 같은 체급의 사람들이 나와서 같은 조건 속에서 싸워야 하겠죠. 하지만 여기선 급수나 성별 따위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종류의 반칙들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고요. 한 마디로 게임 쇼의 기본 골격이 전혀 다른 오락으로 전환되었던 겁니다. 집안 수리를 하기 위해 전기 재료들을 사왔는데, 애들이 그걸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것과 비슷했어요. ‘당연하지’ 게임의 ‘로맨스’도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도구를 가지고 즉석으로 간결한 연애담의 그릇을 만들었던 거예요. 제가 이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진짜 이유는 사전에 정해진 규율과 규칙을 온갖 방식으로 무시하고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이 만들어내는 쾌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최근 <엑스 맨>에선 제가 왜 그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그게 너무 나갔기 때문입니다. 규율을 파괴하거나 변형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규율 자체가 사라진 난장판은 별 재미가 없지요. 지금의 <엑스 맨>에는 조롱할 법칙이나 규율이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요새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엑스 맨>을 찾는 것에 신경을 쓰나요? 지금의 ‘당연하지’는 이전의 언어 공격 게임도 아닙니다. 거의 각본까지 주어진 연속극이죠. 적수가 굴복하자 오히려 더 따분한 규칙이 그 자리를 지배한 겁니다.
규칙과 형식과 질서는 필요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따분하게 보인다고 해도 필요한 건 마찬가지에요. 심지어 그걸 따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것들은 필요합니다. 조롱하고 멸시할 대상이 없다면 그들도 얼마나 심심하겠어요. 진정으로 흥미진진한 예술작품들은 대부분 규칙과 거기서 벗어나려는 맹렬한 의지의 충돌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게 꼭 고상한 예술 작품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죠. <엑스 맨>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들이 싸울 만한 대상이 되어줄 새롭고 보다 엄격한 규칙과 질서입니다.
지나친 육체적 폭력 때문일까? 아뇨, ‘단결, 말타기’와 같은 프로그램처럼 출연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게임은 없어지는 게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죠. 지금은 그렇게 위험한 게임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들이 위험에 빠지는 걸 남몰래 즐겼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얘들이 게임은 하지 않고 딴 짓만 하기 때문일까요? 스파이 찾거나 상대팀을 이기려는 짓은 안 하고 괜히 로맨스니, 짝짓기니 하는 것에만 목을 매기 때문에? 아뇨, 그것 역시 이 프로그램의 재미인 걸요. 물론 여기에 대해 짚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전 이게 특별히 이 프로그램의 해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재미를 떨어뜨린 요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잠시만요. 이론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괜히 딴 짓하기’는 <엑스 맨>이라는 게임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괜히 딴 짓하기’는 <엑스 맨>이라는 게임 프로그램의 재미를 만들어냈던 일등공신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이런 것입니다. 초반의 <엑스 맨>이 재미있었던 건 이 게임 프로그램이 표면에 내세운 모든 규칙들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룰에 따르면 이 게임은 팀을 갈라 상대편을 이기는 데 집중하고 그러는 동안 자기 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배반자인 엑스 맨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 룰 자체도 조금은 정상이 아니죠. 두 목적은 전혀 다르니까요.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한 수 더 떴습니다. 제대로 된 게임이라면 같은 체급의 사람들이 나와서 같은 조건 속에서 싸워야 하겠죠. 하지만 여기선 급수나 성별 따위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종류의 반칙들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고요. 한 마디로 게임 쇼의 기본 골격이 전혀 다른 오락으로 전환되었던 겁니다. 집안 수리를 하기 위해 전기 재료들을 사왔는데, 애들이 그걸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것과 비슷했어요. ‘당연하지’ 게임의 ‘로맨스’도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도구를 가지고 즉석으로 간결한 연애담의 그릇을 만들었던 거예요. 제가 이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진짜 이유는 사전에 정해진 규율과 규칙을 온갖 방식으로 무시하고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이 만들어내는 쾌감 때문이었습니다.

규칙과 형식과 질서는 필요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따분하게 보인다고 해도 필요한 건 마찬가지에요. 심지어 그걸 따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것들은 필요합니다. 조롱하고 멸시할 대상이 없다면 그들도 얼마나 심심하겠어요. 진정으로 흥미진진한 예술작품들은 대부분 규칙과 거기서 벗어나려는 맹렬한 의지의 충돌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게 꼭 고상한 예술 작품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죠. <엑스 맨>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들이 싸울 만한 대상이 되어줄 새롭고 보다 엄격한 규칙과 질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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