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수어를 사용하며 거리낌 없이 젖을 물리던 결혼식에서 논알콜 맥주를 마시며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행복한 수유를 했다. ©영화사 고래
바깥에서 젖 먹이기의 끝판왕은 기내에서의 모유수유다. 젖 물리는 일에 익숙해진 출산 10개월 차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리개 없이 수유를 했다. 그러나 유독 몸이 움츠러드는 장소가 있었는데 비행기 안이 그랬다. 좌석 간의 거리가 좁아 젖을 물리는 몸과 타인의 몸이 가까웠고,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와 있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금세 우리를 향했기 때문이다.
낮잠 시간을 놓쳐 울고 짜증을 내는 아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은 젖을 물리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이 방법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옆에 앉은 승객이 누구냐에 따라 몸의 긴장도는 달라진다. 나는 바깥에서 수유하는 게 아무렇지 않다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옆에 앉은 승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아이를 싫어할 수도 있고, 어째서 공공장소에서 젖가슴을 드러내는지 모르겠다고 여길 수도 있고, 그로 인한 돌발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
젖을 물리면서 여러 상황을 상상한다. 가슴을 드러낸 채 아기를 안고 앉아 있는 나와 눈을 감고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아기에게 고함이나 고성이 쏟아진다면 어쩌지. 혀를 차는 소리랄지 한숨 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취약함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면서 아기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지. 상황과 상황 사이를 오가며 두 손 모아 빈다.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앉기를, 가능하다면 출산과 육아의 경험을 가진 이가 앉아 나를 딱히 여기고 이해해 주기를 간곡하고 간절하게 빈다. 그러고는 상의를 올려 젖꼭지와 가슴을 최대한 보이지 않게 한 채로 젖을 물린다. 허기지고 목마르고 진이 빠지지만 나를 둘러싼 주위의 이목과 관심을 신경 쓰면서 동시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만약 항공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모유수유 및 착유를 적극 장려하고 돕겠다고 쓰여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모유수유의 풍경과 그를 둘러싼 팽팽한 긴장은 새롭게 구성된다. 아이와 함께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장비와 아이를 동시에 챙겨 유럽으로 향하는 항공편을 알아볼 때였다. 아이와의 장거리 비행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편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항공사마다 유아와 함께 여행하는 승객에게 어떤 편의를 제공하는지 살펴보았다. 그중 네덜란드 항공사인 KLM은 웹사이트의 도움이 필요한 승객이라는 카테고리에 휠체어를 탄 승객,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하는 승객과 함께 수유에 대한 안내 사항을 명시하고 있었다. 기내에서 모유수유가 필요한 경우 최선을 다해 돕겠으며 사생활의 보호가 필요하다면 승무원에게 요청하라는 내용이었다. 수유뿐 아니라 착유 또한 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도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고 쓰여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권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식 웹사이트에 “위 항공사는 수유와 착유를 장려하고 지원한다”라고 쓰여 있다면 기내에서 수유하거나 착유를 하는 승객은 항공사가 허용한 공식적인 행위를 하는 이가 된다. 아이 역시 다른 승객이 기내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는 것처럼 공식적으로 젖을 먹는 것이 허용된다. 수유부와 아기의 존재는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환대받는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스페인은 2023년 합계출산율이 1.19명으로 OECD 주요 회원국의 평균 합계출산율인 1.58명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국가다. 스페인 역사상으로도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안정적인 육아 환경 조성을 위해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특히 마드리드는 여성 주지사인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Isabel Díaz Ayuso)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행하면서 유일하게 전년 대비 출산율을 높인 지역이 되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공공장소에서 모유수유를 하는 여성을 쉽게 자주 볼 수 있었다는 거다.
마드리드에 머물 때였다. 친구가 결혼식 준비 관련 회의를 해야 한다고 함께 가자고 했다. 그곳에서 친구의 친구이자 결혼식의 플래너인 L을 만났다. 그는 이제 막 8개월이 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수어통역사로 일하는 그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이번 주부터 복직했다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고충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는 나처럼 농인의 자녀인 코다 친구와 그의 농인 파트너가 함께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국제수어(International Sign)와 간단한 영어를 섞어 대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L은 아기가 배가 고픈 모양이라며 옷을 들추고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었다. 그는 아이의 입에 젖꼭지를 물리고는 한 손으로는 아이의 몸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하던 이야기를 이었다. 옷가지를 들춘 가슴이 훤히 보인 채였다. 마드리드 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카페, 그것도 야외 테라스 자리에서 젖을 물리며 수어로 말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서 감격스럽고 벅찼다.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코다 친구와 그의 농인 파트너의 결혼식에서였다. 2박 3일간 열린 결혼식의 참석인원은 80여 명 정도였는데 그중 15명 정도가 유아동 및 청소년이었다. 이제 막 6개월이 된 아기에서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였다. 엄마의 젖을 먹는 아기들도 꽤 있었는데 모두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유했다. 결혼식의 주 언어가 수어였고, 참석자 대부분이 농인이거나 농인의 자녀인 코다이거나 농인의 가족이거나 수어통역사와 같은 수어 사용자 공동체의 일원이거나 조력자였기에 대부분이 시각언어를 사용했다. 바깥에서 거리낌 없이 수유하며 수어로 대화하는 이들이 여럿 모인 풍경은 꽤 장관이었다.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상대방이 수유를 하면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돌려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치 내가 수유를 할 때마다 몸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곤 하는 파트너의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러나 시각언어인 수어로는 그렇게 소통할 수 없다. 대화 중에 누군가가 옷을 들추고 젖을 아이 입에 물리면 상대방은 수유부가 손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잇는다. 수유부는 한 손으로는 아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모두가 그렇게 수유를 하고 말을 한다. 진풍경을 바라보며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의 청인 파트너가 농인 부모와 수어로 대화하며 젖을 먹이는 나를 보고 아기 떨어뜨릴까봐 불안하니 젖 먹이는 것에만 집중하면 좋겠다고 말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가장 멋진 장면은 파아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수유 장면이었다. 이제 막 6개월이 된 아기를 안은 농인 여성이었는데 그는 몸에 딱 달라붙으면서 가슴골이 보이는 원피스를 입은 차림이었다. 그는 첫째 아이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는 둘째를 안아 가슴골 사이에서 젖을 꺼내 젖꼭지를 물렸다. 그는 대화 중이었고 수어 사용자였기 때문에 상대방의 시선이 정면을 향해 있는데도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 이와 같은 장면을 여러 차례 마주한 파트너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 아무 데서나 젖 먹이는 보라에게 제발 좀 가리고 수유하라고 핀잔을 주었는데 미안하고 부끄럽더라고.”
이곳에서는 ‘젖 먹이는 게 뭐 어때서’라고 말하며 온몸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 기운을 받아 나도 어딜 가든 자유롭게 젖을 먹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내에서는 길가 벤치에 걸터 앉아 수유하는 여성을 보았다.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고 말하고 싶었다. 무엇이 젖 먹이는 여성과 젖 먹는 아기를 취약하게 만드는지 생각한다. 정말이지, 젖 먹이는 게 뭐 어때서.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랐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서로 다른 세계들을 연결하면서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등이 있고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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