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 고 전시의 비밀: 전북도립미술관이 던진 질문들
쓰레기와 예술의 경계, 《버릴 것 없는 전시》
글: 이지현(널 위한 문화예술 공동 대표)
202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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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립미술관이 최근 선보인 기획전은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머스트 고(must go)’ 리스트에 오를 만큼 주목을 끌고 있다. 작년의 《버릴 것 없는 전시》(2024), 그리고 올해 열리는 《진격하는 B급들》(2025). 두 전시는 모두 예술을 통해 사회적 경계와 위계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공유한다. 그러나 접근하는 방식과 중심 주제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며, 각기 다른 결의 질문을 던진다.

 

시타미치 모토유키 작품, 전북도립미술관 《버릴 것 없는 전시》
사진 : 이지현

 

2024년 3월 29일부터 6월 30일까지 열린 《버릴 것 없는 전시》는 예술과 쓰레기의 경계면을 조명한 자리였다. 단순한 재활용이나 업사이클링의 차원을 넘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과잉 생산과 잉여물 속에서 우리가 임의로 정하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기준 자체를 문제 삼았다.
 참여 작가 구성도 눈길을 끌었다. 전북 지역 청년 작가들 ― 김병철, 김영봉, 문채원 ―을 비롯해 아녜스 바르다, 토마스 허쉬혼, 시타미치 모토유키 등 국내외 20여 팀이 한 무대에 올랐다. 약 53점에 달하는 작품들은 뉴미디어, 설치, 회화 등 매체를 가리지 않았다.

특히 프랑수아 노체(Francois Knoetze)의 대형 설치작품 ‘코어 덤프(Core Dump)’는 전시의 압권이었다. 버려진 회로판과 케이블로 쌓아 올린 이 작품은 과잉 생산과 자본주의적 욕망, 그리고 전자 폐기물이 야기하는 환경 문제를 정면으로 비추었다. 마르코 바로티의 반응형 조개 오브제 또한 관객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수질 센서가 측정한 실시간 데이터를 사운드로 변환하는 이 장치는,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져 생태적 감각을 직접적으로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손민아의 ‘100인의 대가’처럼 ‘버려진 것’과 ‘예술’의 경계를 교란하는 작업이 더해지며, 관객들은 “예술이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버리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요컨대 이 전시는 지구적 차원의 성찰을 촘촘히 시각화하며, ‘완성도 있는 전시’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프랑수아 노체, 코어 덤프, 2018–2019, 4채널 영상·전자폐기물 설치, 46분, 가변 크기. 
사진 제공: 코스모폴리스 1.5 청두 집행팀 지단 (Zidan)

 

올해 8월 1일부터 11월 2일까지 이어지는 《진격하는 B급들》은 성격이 사뭇 다르다. ‘B급’이라 불리는 사회적 평가에서 출발한 이 전시는, 주변부로 밀려난 가치들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B급’이라는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워, 미술관 안이라는 제도적 공간에서 ‘대상을 미적으로 바라본다’라는 모순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유머나 감성의 소비를 넘어, 중심과 주변, 정상과 비정상, 예술과 비예술의 위계를 흔드는 전략적 무대라 할 수 있다.

소보람, 스마트 스킨 팜, 2023, 나무로 만든 구조물 위에 식물성 미생물 가죽 및 배양 수조, 가변 설치. 
사진 제공 : 전북도립미술관

 

관람자는 이 과정에서 익숙한 기준과 선입견을 의심하게 된다. ‘고급 예술’이 사회적 주변성을 어떻게 품을 수 있을지, 그로부터 어떤 새로운 질문이 생성되는지를 묻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는 결국 예술과 삶의 위계를 해체하며, 관객이 스스로 삶의 질서와 마주하게끔 이끈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외 23팀이 참여해 회화, 설치, 영상, 미디어아트 등 72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영국-이탈리아 출신 아티스트 그룹 클레어 퐁텐(Claire Fontaine)의 참여는 큰 화제를 모았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였던 ‘Foreigners Everywhere’를 이어온 작업은, 이번 전시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이 외에도 정연두, 방정아, 이강승 등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들과 더불어 지역 청년 작가 소보람, 엄수현이 합류해, 인간 중심을 벗어난 ‘B급’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안젤리카 메시티, 시민 밴드, 2012, 4채널 영상, HD, 컬러, 서라운드 사운드, 21분 25초, 
사진 : 안나 슈와츠 갤러리

 

전시는 세 공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파편화된 공동체를 드러내며, 관객을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시민’으로 불러낸다. 그다음으로는 일상적 행위가 예술과 맞물릴 때 드러나는 시간의 자원성을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시장 논리와 교환 가치에 갇힌 현실을 미술 형식으로 가로지르며, 공립 미술관의 역할을 재고한다.

 

두 전시는 방향성에서 다르지만, 전북도립미술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단초라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버릴 것 없는 전시》가 과잉 생산과 폐기의 시스템을 문제 삼았다면, 《진격하는 B급들》은 미학적 위계와 시선 자체를 뒤집는다. 공통적으로는 미술관이 ‘정답을 제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설치, 영상,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동원한 구성은 특정 예술 방식에 편중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지역성과 국제성을 동시에 품으려는 시도 역시 돋보인다. 결국 전북도립미술관은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권위의 완장을 스스로 풀어내며, 하위문화와 주변의 목소리를 당당히 끌어들이고 있다. 이 과감한 기획이 올해도 미술계에 길고 묵직한 여진을 남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진격하는 B급들》 전시는 전북특별자치도립미술관 본관에서 11월 2일까지 이어진다.

전북도립미술관 《진격하는 B급들》
사진 : 이지현


특별전 《진격하는 B급들》

- 전시 기간 : 2025.8.1.(금) - 11.2.(일)

- 장소 : 전북특별자치도립미술관 본관 1-5전시실, 2층 로비

- 관람 정보 : 10:00 ~ 18:00 (입장 마감: 17:30, 월요일 휴관)

-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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