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는 욕심쟁이가 아닐까. ‘20세기와 21세기를 아우르는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거장’, ‘2018년 현존하는 작가 경매 최고가(약 9,000만 달러, 2018.11.15 크리스티 뉴욕) 레코드를 경신한 작가’ 등 으리으리한 미술사적 타이틀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편견 없이 애정하는 대중적 인기 작가의 타이틀 또한 놓치지 않았으니.
이렇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행보는 그의 작품 활동 속에서도 이어진다. 밝고 대담한 색채, 평면적인 형태를 강조하여 추상화와 구상화를 넘나드는 독특한 스타일로 주변의 인물과 풍경을 담아낸 그의 작품은 일찍이 순수회화로써 정점을 찍었으나 이에 그치지 않고 2009년부터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활용한 드로잉 시리즈를 통해 디지털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회화를 개척했다. 이때 작가는 이미 70대의 나이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대표적인 아이폰, 아이패드 드로잉 시리즈. My Window: No. 535, 28th June 2009 © 2025 David Hockney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 : 디지털 매체로 순수회화의 영역을 확장하다.
1970년대 후반부터 팩시밀리, 복사기, 사진, 콜라주 등 다양한 매체에 천착하며 예술 영역을 확장해 오던 작가는 2000년대 후반 애플사에서 출시한 아이폰을 새로운 예술적 매개체로 발견하였고, 이는 그의 예술에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2009년 봄 아이폰을 활용한 첫 디지털 드로잉이 탄생했으며, 이듬해인 2010년부턴 아이패드를 사용하여 그의 예술적 레퍼토리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가 이러한 디지털 기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 직관적인 사용법과 창의적인 가능성 때문이었다. 아이패드는 손끝의 터치로 다양한 효과를 즉시 구현할 수 있어 전통적인 붓과 캔버스 작업에서 느낄 수 없었던 속도감과 물리적, 표현적 자유로움을 제공했으며, 여러 개의 레이어를 통해 세밀한 조정과 색감 변화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기에 기존의 회화 작업에서는 어려웠던 여러 표현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었다.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은 주로 자연의 풍경이나 정물을 소재로, 작가는 다양한 색상과 필터를 이용하여 감각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풍경을 재현했으며 그가 이전 회화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고유한 스타일 또한 놓치지 않았다. 이 작품들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호크니 특유의 깊이 있는 색감과 감성적인 표현이 담겨 있기에 디지털 아트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유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이는 그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어떻게 순수 회화의 영역을 확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업으로 그의 예술적 창작 과정에서 전환점을 의미한다. 그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회화의 본질을 잃지 않고, 전통적인 예술의 깊이를 디지털 기기라는 새로운 도구로 끌어올렸다. 이렇듯 아이패드 드로잉 시리즈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기술과 예술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미술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David Hockney during the opening of a show at the Guggenheim Museum in Bilbao, Spain, in 2012. Photograph Alfredo Aldai EPA
아이패드 드로잉 : 미술시장에서의 의미와 가격 상승 요인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은 그가 이전 시기에 보여 주었던 순수 회화의 결과물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도,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독창적인 작업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미술사에 새로운 회화 장르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자연스레 그의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미술시장적 가치를 동시에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David Hockney Artist Index_ Prints and Multifules (10years). 출처 : LiveArt (아이패드 시리즈 에디션 포함 다른 시리즈의 프린트와 멀티플 레코드도 함께 반영된 차트)
아이패드 드로잉 시리즈 중 일부는 한정된 수량의 에디션(종이 판화)으로 제작되었는데 이 판화의 2차 시장 거래 레코드를 살펴보면 10여 년의 시간 동안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크니의 아이패드 시리즈 에디션 중에서 대표적인 작업으로 꼽히는 ‘The Arrival of Spring in Woldgate, East Yorkshire in 2011’ 시리즈를 예로 들어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2017년 (19 Jan) 필립스 런던 경매: 추정가 약 $30,000-40,000 / 낙찰가 약 $38,000
· 2018년 (28 Mar) 크리스티 런던 경매: 추정가 약 $42,000-$70,000 / 낙찰가 약 $109,000
· 2020년 (28 Oct) 서울옥션 경매: 추정가 약 $70,000-$132,000 / 낙찰가 약 $126,000
· 2023년 (21 Sep) 필립스 런던 경매: 추정가 약 $98,000-$148,000 / 낙찰가 약 $282,000
· 2025년 (22 Jan) 케이옥션 경매: 추정가 약 $119,000-$175,000 / 낙찰가 약 $209,000
작품의 낙찰가는 그 시점의 경제 상황이나 미술시장의 분위기 그리고 예상치 못한 각종 변수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미술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없이 기준으로 삼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옥션하우스에서 응찰자에게 참고 기준으로 제시하는 추정가는 거래되는 시점의 미술시장 상황이 충분히 반영된 금액의 범위이기에 위에서 보여지는 추정가의 꾸준한 상승은 아이패드 드로잉의 미술시장에의 가치와 그 상승세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되며, 시장의 신뢰와 지속적인 수요가 뒷받침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작품의 가격 상승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면 가장 먼저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적 영향력과 미술사적 위치를 들 수 있다. 그는 20세기와 21세기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현대미술가로, 단순한 작가 이상의 존재인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며 예술계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영향력은 미술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The Arrival of Spring in Woldgate, East Yorkshire in 2011 (twenty eleven) - 30 May, 2022년 (13 Sep) 필립스 런던 경매 낙찰가 약 $311,000
두 번째로는 디지털 기술과 예술의 결합으로 선보인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라는 특수성을 꼽을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디지털 아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미술시장의 변화도 심심치 않게 포착되는 현시점에서 그 선두에 서 있는 호크니 작품의 미술시장에서의 가치는 더욱 상승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호크니에 대한 컬렉터들의 높은 관심과 지속적인 시장의 수요도 가격 상승을 이끌어 낸 요소로 볼 수 있다. 그의 회화 작품들은 대중적인 인지도와 함께 미술시장의 메가 컬렉터들을 타겟으로 하는 강력한 수집가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수십억에서 수백억대 이상을 호가하는 작품들이 해외 유명 옥션하우스에서 이러한 메가 컬렉터들을 통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가격 접근성이 좋은 아이패드 드로잉의 수요 또한 증가하며 이는 작품의 가격 상승과 직결된다.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은 위와 같은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며 작품의 가격을 꾸준히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술시장적인 관점을 떠나서 보더라도, 그의 작품은 현대 미술에서 디지털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되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큰 가치를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호크니의 작품은 시대를 대표하는 혁신적인 예술적 성취로, 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윤가람
서울옥션에서 10여 년간 모던&컨템포러리 아트 스페셜리스트로 재직하며, 다수의 국내외 경매 및 전시 기획을 통해 아트마켓의 흐름을 익혔다. 미국감정가협회 AAA(Appraisers Association of America)의 미술품 시가 감정 과정을 수료했으며 2022년부터 독립 아트디렉터로서 국내외 전시 기획과 미술품 컬렉션 자문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