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브스> | 드라마
알렉스 가랜드 감독
처음 보았을 때의 감정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FX 6부작 시리즈. 매회가 시작될 때마다 강렬한 음악과 함께 화면 가득 채우는 클로즈업에 압도된다. <엑스 마키나>를 재밌게 보았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볼만한 드라마이다. 아니, 여러 번 보게 될런지도 모른다. 나는 이 드라마가 끝난 후 곧바로 1화를 틀어 다시 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또다시 드라마를 반복 시청했다. 삶의 소중한 것을 그대로 붙잡고 싶을 때, 그리하여 내 삶이 끝날 때까지 지속시키고 싶을 때, 무엇이든 해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을 때, <데브스>는 그 ‘무엇’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일린 마일스 저/송섬별 역 | 디플롯
다양한 것을 글쓰기에 담아낼 수 있다. 물론이다. 아일린 마일스는 자신의 글쓰기에 멋과 품격을 담아낸다. 나는 글쓰기에 무엇을 담아냈나? 나는 삶의 비참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고통을 담아냈다. 내 글은 온통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아일린 마일스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느끼기에 아일린 마일스는 멋진 바지를 입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한쪽 팔을 난간에 기대고 비스듬히 서 있다. 나는 책을 읽다 말고 표지의 안쪽에 인쇄된 아일린 마일스의 사진을 본다. 그는 멋이 있다. 멋이 있는 작가는 삶을 한층 고양시킨다.
어글리어스 | 구독 플랫폼
집 근처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작은 마트들과 대형 마트가 있지만 나는 걷는 것을 싫어한다. 걷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산책과 연애』에서 밝힌 바 있다. 나는 걷는 것이 싫다. 물론 여행을 할 때는 하루 종일 걸어 다닌다. 오로지 여행지에서만 나는 걷는다. 그래서 어글리어스를 이용해 매주 먹을 것을 정기배송 받고 있다. 1인 가구에 알맞게 소분된 못생긴 채소들이 상자에 담겨 집으로 온다. 정말 못생겼을까? 들쭉날쭉한 크기와 제멋대로 자라난 채소들이 나는 좋다. 자유로움을 먹는다는 기분은 내 멋대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다이앤 앤스 저/박아람 역 | 책사람집
외로운 사람? 나. 사무치게 외로워서 소름이 끼친다. 외로움이라는 세 글자에서 시작되는 한 권 분량의 문장들이 나의 살갗을 쓰다듬는다. 『외로움의 책』을 읽으면 어쩐지 담담하고 가지런해지는 기분이 된다. 혼자라는 기분. 외로움은 그것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곰곰이 수긍하게 된다. ‘혼자이지만 외롭다’는 문장이 수렴된다. 외로움에는 참 이유도 많다. 책을 펼치고 그 연유를 하나씩 읽고 있으면 외로움이 조용히 물러난다. 정말이다.
<Echolocation: River> | 음반
앤드류 버드
지금부터 시를 쓸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음악을 켠다. 앤드류 버드와 더불어 수많은 곡들이 플레이리스트를 이루고 있지만 시작은 언제나 이 앨범이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 부드럽게 푸는 듯한 바이올린 소리가 심장을 조였다 풀어준다. 앤드류 버드의 포크 앨범들과는 확연히 다른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의 숨 막힘. 나의 음악 취향은 <에코로케이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비슷한 장르의 앨범들을 찾아 플레이리스트에 넣는 일이 나에게는 몹시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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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1981년 서울 동대문에서 태어났다. 2007년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15년까지 영화 현장에 있으면서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일곱 작품에 참여하였다. 지금은 1인 프로덕션 ‘목년사’에서 단편 극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고 있다. 2016년 시집 『연애의 책』이 출간된 뒤로는 글을 쓰는 일로 원고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소설 『디스옥타비아』, 2018년 시집 『식물원』, 2020년 산문집 『산책과 연애』, 시집 『작가의 탄생』, 2021년 산문집 『거짓의 조금』, 2023년 『슬픔을 아는 사람』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