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소연 작가의 책장
때때로 삶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함정 같다고 느껴질 때, 예소연 작가의 책장에서 만난 『나쁜 친구』.
글 : 예소연
202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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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눈송이』

사이토 마리코 | 봄날의 책

 

오래 두고 꺼내 보는 시집. 화자가 나무를 바라보면 나도 그것을 골똘히 바라본다. 눈송이에 대해 생각하면 나도 그것을 생각한다. 누가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을 생각한다는 게 새삼 기쁘다. 책장을 넘기며 진실된 무언가를 곰곰 떠올려보다가 정말 그런 진실이야말로 존재할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조금 넉넉해진다. 그 넉넉해진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오늘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

 



<장송의 프리렌> | 애니메이션

넷플릭스

 

이제야 이 애니메이션을 봤다니! 마법사 프리렌은 함께 모험을 했던 인간 친구인 용사 힘멜이 죽고 나서 그의 발자취를 밟는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프리렌의 애도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생을 헤아리는 일이 이렇게나 오래 걸릴 수도 있겠다는 걸 깨닫는다. 마족인 프리렌은 수명이 무척 길고 쉽게 늙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종족 친구들은 각자의 수명에 따라 프리렌 보다 훨씬 빠르게 노쇠하고 죽는다. 그래서 그런지 에피소드 마다 즐거운 이야기들이 가득하지만, 그 뒷맛이 씁쓸하게도 느껴진다. 한편 한편 끝날 때마다 조바심이 날 정도로 재미있다. 보는 내내 행복했다. 막 보기 시작한 그 순간이 그립다.

 



『나쁜 친구』

앙꼬 글그림 | 창비

 

만화를 그리는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사뭇 어두운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고 있으며 과거에 얽힌 관계와 그 시절의 감각을 섬뜩할 정도로 잘 그려내었다. 이런 이야기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읽는 동안 부침이 있더라도 어떤 인물이 지나온 시절을 들여다보는 건 살아가는 일의 무게를 절감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삶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함정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내가 아니더라도 인물이 겪었던, 혹은 겪고 있는 그 함정 같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혼자 아닌 우리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씨너스: 죄인들> | 영화

라이언 쿠글러

 

영화관에서 보는 내내 압도적인 연출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호러라고는 하지만, 장르를 한 가지로 정의하기도 어려운 영화이다. 1930년대 미국 미시시피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당대 인종 차별 문제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일란성 쌍둥이 스택과 스모크가 고향으로 돌아와 허름한 제재소를 인수해 술집을 여는데, 첫 파티를 벌이는 날 바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는 다양한 서사의 힘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히카루가 죽은 여름> | 애니메이션

넷플릭스

 

한창 보고 있는 시리즈라서 아직 에피소드도 채 다 나오지 않았다. 공포 애니메이션인데, 로맨스가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어 무더운 여름에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히카루와 요시키는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낸 단짝 친구이다. 히카루가 산속에서 잠깐 실종되었던 해프닝 이후, 요시키는 히카루가 자꾸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 아이스크림을 먹다 히카루에게 묻는다. 너 히카루 아니지? 그렇게 히카루는 자신의 정체를 들키게 되고 둘 사이의 애정전선 또한 묘하게 무르익는다. 보면서 뭐야 뭐야, 호들갑을 떨게 되는 얀데레적 서사가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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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눈송이

<사이토 마리코>

출판사 | 봄날의책

나쁜 친구

<앙꼬> 글,그림

출판사 | 창비

히카루가 죽은 여름 1

<모쿠모쿠렌> 글그림/<송재희> 역

출판사 | 디앤씨미디어(D&C미디어)

히카루가 죽은 여름 1~6권 세트

<모쿠모쿠렌> 글그림/<송재희> 역

출판사 | 디앤씨미디어(D&C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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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소연

소설가. 단편집 『사랑과 결함』, 장편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중편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 등을 썼다. 늘 소설 곁에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