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출판계 명사 하오밍이 저자의 드라마틱한 인생 이야기, 한국어로 집필한 첫 에세이다. 불편한 몸과 화교라는 이중의 굴레를 극복하며 타이완 출판계에서 성공하기까지 저자가 겪은 신랄한 ‘인생 게임’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야기의 힘, 꿈과 사랑의 힘, 호기심과 조합의 힘, 믿음의 힘, 상묘유희의 힘 등 5부에 걸쳐 펼쳐지는 인생 이야기를 통해 저자의 깊은 성찰과 독자에게 전하는 많은 통찰을 만날 수 있다.
선생님은 한국 부산에서 출생하여 타이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했으며, 그곳에서 창업하여 크게 성공하셨지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선생님과 같은 분을 자수성가했다고 말하지요. 자산의 대물림이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살아갈 길을 개척하고, 그것을 통해 재부와 명예를 얻은 이들을 칭하는 말입니다. 선생님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무엇이 지금의 선생님을 만든 것인지 궁금합니다.
겉보기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저는 한 번도 스스로를 크게 성공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적어도 저는 부를 축적하는 데 관심을 두거나, 제가 부자라고 느껴본 적은 없거든요. (웃음) 제가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고민해온 건,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정체성이에요. 예전에 『업무DNA』라는 책을 쓴 적이 있는데, 그건 제가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역량이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다룬 책이었어요.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신입사원일 때, 그때의 업무 DNA는 새와 비슷했어요. 자유롭고 가볍지만, 방향성은 부족했죠. 회사의 중간 간부가 되었을 때는 낙타 같았어요. 책임을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지만,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감당하기 힘든 순간들도 있었죠. 그리고 회사의 사장과 창업자가 된 후에는 고래가 된 기분이었어요. 바다라는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있지만, 그 바다에서는 언제나 외롭고 쉴 틈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거든요. 고래는 땅 위로 올라오면 생명이 끝나니까요. 저는 지금까지 줄곧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능력을 어떻게 키우고, 또 그 능력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고민해왔습니다. 그게 제게는 가장 중요한 주제였어요. 이번에 『찬란한 불편』을 쓰게 된 건, 제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를 한국의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삶은 직접 말씀하신 바대로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삶에서 도전은 어떤 의미일까요? 특히 좌절하거나 체념한 이들에게 발분發憤할 수 있는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그것을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성공이나 실패를 가르는 도전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주로 고민한 것은 언제나 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였습니다. 때로는 편집자로서, 때로는 작가로서, 또 때로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말이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저는 이 문제 해결을 하나의 게임처럼 여겼습니다. 그 게임 속에서 어떻게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죠. 물론 어떤 때는 그 게임에서 벗어나 깊은 어둠의 구멍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 책을 쓰기 전 약 7~8년 동안, 저는 인생의 블랙홀에 빠져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결국 그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해답을 찾았고, 그 경험을 이 책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책 속에 답이 있는데요, 만일 독자분 중에 좌절하거나 체념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 책을 읽고 난 후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편집과 출판업에 오랫동안 종사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과 쓰기에 몰두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에게 책을 읽는 것과 책을 쓰는 것, 그리고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책에는 정말 다양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치는 ‘꿈’과 연결되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때로는, 우리는 인생의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한 권의 책을 읽고 ‘내가 가고 싶은 곳’, ‘되고 싶은 사람’, ‘도달하고 싶은 상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꿈을 가지게 되죠. 또 다른 경우에는, 이미 마음속에 꿈이 있었지만 그 꿈을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 알지 못했던 우리가 한 권 혹은 몇 권의 책을 통해 여정을 시작하는 방법, 길 위에서 필요한 자원을 찾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저는 책이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가치는 바로 누군가가 자신의 꿈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을 때든, 쓸 때든, 혹은 출판할 때든 제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늘 그 ‘꿈과의 연결’입니다.
선생님은 책과 관련된 일 외에도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정자문 역을 맡은 적도 있고, 해바라기 운동에 참여하신 적도 있지요. 특히 국정 자문역을 맡은 것은 정치참여라기보다 사회운동의 일환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선생님이 출판인으로서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 까닭과 의의는 무엇일까요? 지식인의 사회운동에 대한 소견도 아울러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책이 각자의 꿈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정부와 사회 역시 꿈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자신의 꿈을 찾고, 발견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책임은, 그런 일이 안전한 환경에서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것, 또한 자신에게 필요한 자원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그 자원을 공정하게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정부와 사회가 이러한 역할을 잘 해낼 때, 출판이라는 일은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풍요로운 토양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좋은 출판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정부와 사회가 그러한 역할을 해나가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문제들이 출판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책에서 여러 차례 종이책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특히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기와 종이책 읽기를 대비해 놓은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읽기의 특성은 ‘낮’, 종이책 읽기의 특성은 ‘밤’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하면서 종이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종이책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전자책을 보거나 읽는 것과의 차이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랫동안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에 왜 여전히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왔습니다. 그 끝에 제가 깨달은 것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한 읽기는 동적이고 양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고, 종이책을 통한 읽기는 정적인 음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두 특성은 각각 낮과 밤으로 상징될 수 있습니다. 양적이고 동적인 특성은 낮, 음적이고 정적인 특성은 밤으로 대응될 수 있죠.
인류가 전기를 발명한 뒤 끊임없이 낮의 시간을 늘려온 것처럼,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 ‘낮의 읽기’, ‘동적인 읽기’의 시간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낮을 길게 만들려고 해도, 밤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인간의 신체적·심리적 균형을 위해 ‘밤의 읽기’, ‘정적인 읽기’, 즉 종이책 읽기는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저는 이 점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책에서 “‘육지적 사고’와 ‘해양적 사고’에 대해 한국 독자들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셨는데, ‘육지적 사고’와 ‘해양적 사고’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 역시 제가 『찬란한 불편』에서 여러 차례 설명하려 했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간단히 말해, ‘육지적 사고’란 세상이 본질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배울 수 있는 전통과 따라야 할 질서가 많다고 믿는 사고방식입니다. 반면, ‘해양적 사고’란 세상이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늘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야 하고, 그러한 풍랑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풍랑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는 사고방식입니다.
모두 저마다의 불편함을 안고 분투하며 살아갑니다. 작가님 또한 생활인으로서, 직업인으로서, 더 나아가 세계적 출판인인 되기까지, 매 순간이 도전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께서는 자신이 가진 ‘불편’을 ‘축복’이라고 말씀합니다. ‘불편’이 어떻게 찬란한, 축복이 될 수 있는지요?
제 이야기부터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자신도 매우 신기하게 느끼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내가 소아마비에 걸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을 부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꿈속에서도 제 다리가 멀쩡하게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꿈속에서도 늘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거나, 아니면 땅바닥을 기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저는 한참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두 다리로 걷지 못하게 된 것이 오히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만약 제 몸이 멀쩡하고 두 다리도 정상이었다면, 저는 아마도 ‘미치광이’가 되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은 통제할 수 없는 호기심이었고, 그 호기심이 저를 끝없는 도전과 모험으로 이끌었습니다. 그 모험심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었고, 제 자신에게도 위험했을 수 있습니다. 소아마비는 저를 억눌렀고, 저는 어쩔 수 없이 조용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제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고, 겸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오늘에 이르렀고, 그래서 저는 장애가 제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장애’를 안고 살아갑니다. 저는 믿습니다. 그 장애는 결국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의 축복이 될 수 있다고. 다만,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찬란한 불편
출판사 | 섬드레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