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문학총서] 현대적인 감성의 로맨스, 미카 드 리언의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
필리핀이 주목하는 젊은 작가 미카 드 리언의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 출판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현대적인 감성의 로맨스.
글 : 이지혜
202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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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예스24문화재단 동남아시아문학총서

필리핀을 대표하는 근현대문학 3권이 올해 초 한세예스24문화재단의 동남아시아문학총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에 필리핀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 닉 호아킨의 초기 대표작을 묶은 『배꼽 두 개인 여자』, 호아킨의 희곡과 단편을 담은 『열대 고딕 이야기』, 촉망받는 필리핀의 젊은 작가 미카 드 리언의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낯설면서도 신선하고 흥미로운 로맨스 소설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시 소설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한 출판사를 배경으로 한다. 지금까지 출판사가 주요 무대인 문학이나 영화, 드라마는 종종 만날 수 있었지만, 필리핀이라니! 더구나 이 소설의 작가는 실제로 마닐라에 있는 출판사에서 근무 중인 편집장이기도 하다. 작가가 직접 경험한 출판업계의 생생한 현실과 달콤한 로맨스가 펼쳐지는 이 소설의 편집을 담당한 이지혜 편집자를 만났다.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라는 제목부터 흥미로운데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우리말로 직역하면 ‘두 번째 읽기에서의 사랑’이라는 조금 어색한 표현인데요, 여러 의미가 있어요. 주인공 에마는 편집자로서 원고를 ‘두 번째로 읽을 때’ 진짜 의미를 발견해요. 사랑도 마찬가지고요. 첫 번째 사랑 이후에 찾아온 ‘두 번째 기회’에서 찾는 진정한 사랑, 그리고 상대방을 ‘다시 읽어보며’ 발견하는 새로운 면을 의미합니다. 책과 사랑 모두 깊이 읽어야 진가를 알 수 있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제목입니다.

 

남녀 주인공이 모두 출판업계 사람들이더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 책을 집필한 미카 드 리언은 낮에는 출판사에서 다른 작가의 원고를 편집하고, 밤에는 자기 글을 쓰는 이중생활을 하는 작가입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문득 ‘출판업계 사람들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궁금증과 아이디어가 떠올라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해요. 출판업계 사람들은 매일 같이 책으로 사랑 이야기를 다루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사랑에 서투른 편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점을 작품에 반영했고요.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는 로맨스 분야 편집자 에마와 SF/판타지 분야 편집장 킵이 주인공이에요. 전혀 다른 장르를 담당하는 만큼 두 사람은 문학적 취향도 정반대고 성격도 다른 면이 많아요. 하지만 한편으론 공통분모가 있어서 사랑에 빠지고 만답니다. 로맨스와 SF가 만나 일으키는 화학반응이 정말 재밌게 그려져요.

 

에마와 킵의 관계가 특히 재미있던데, 어떤 캐릭터들인지 소개해 주세요.

에마는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로맨스 편집자예요. 해피엔딩을 좋아하고, 작가와의 감정적 유대를 중시하죠. 반면 킵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SF/판타지 편집장입니다.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완벽을 추구해요. 둘은 처음에 문학 작품의 제목이나 출처를 알아맞히는 대결을 시도 때도 없이 벌이며 티키타카를 주고받는 경쟁 관계의 직장 동료였지요. 그러다 유명 작가인 아모라의 신작을 공동으로 담당하면서 점차 가까워져요. 특이하게도 그 신작이 SF와 로맨스가 결합된 작품이거든요. 아웅다웅하던 두 사람은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게 되고, 호감을 느끼다 결국 사랑에 빠지죠.

 

메타픽션적 요소가 돋보이는 작품 같은데요?

맞아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출판업계 로맨스’면서, 동시에 로맨스 소설 자체의 클리셰와 공식을 의식적으로 활용해요. 에마가 킵에게 로맨스의 문법을 가르치고, 킵이 에마에게 SF의 세계관 구축법을 설명하는 장면들이 그런 예죠. 독자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동시에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볼 수 있어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필리핀 출판업계의 현실도 잘 드러나 있던데, 어떤 배경이 있나요?

두 주인공의 직장인 마야프레스 출판사는 대기업에 속해 있어요. 그런데 경영난으로 퇴출당할 위기에 놓이죠. 팬데믹으로 도서 판매량이 급감하자, 수익성이 낮은 출판 부문을 정리하려 하죠. 이는 실제 많은 출판사가 겪는 현실이기도 해요. 필리핀이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말이에요. 에마와 킵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야 하는 압박 속에서 사랑을 키워갑니다. 현실적인 업계 이야기가 로맨스에 긴장감을 더해주죠.

 

이 책을 어떤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책을 사랑하는 모든 분에게 추천합니다. 특히 로맨스 소설 애독자라면 에마의 마음에 깊이 공감할 거고, SF/판타지 팬이라면 킵의 열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편집자, 작가, 출판업계 종사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테고요. 무엇보다 ‘진짜 사랑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어요. 첫 번째 사랑에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하지 마세요. 두 번째 기회에서 진정한 해피엔딩을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이 책과 더불어 읽으면 좋은 책이 있다면요?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에 관심이 생겼다면 다른 동남아 문학에 도전해 보기를 추천합니다.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는 한세예스24문화재단이 꾸준히 출간하고 있는 ‘동남아시아문학총서’의 가장 최신작이에요.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영주』(베트남), 『판데르베익호의 침몰』(인도네시아), 『배꼽 두 개인 여자』(필리핀), 『열대 고딕 이야기』(필리핀) 등 동남아 각국의 수작을 선별해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품 자체로도 훌륭할 뿐만 아니라, 문학, 문화, 사회,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즐거움까지 더해진 풍성한 독서 경험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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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

<미카 드 리언> 저/<허선영> 역

출판사 | 한세예스24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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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눈씨편집디자인 대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했고, 출판사와 디자인사를 거쳐 직접 설립한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책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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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 드 리언

로맨틱 코미디 소설과 공상과학 판타지(SFF) 소설을 쓰는 작가이자, 서밋북스 출판사의 총괄 편집국장. 1988년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을 썼다.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홍보 전문가와 언론사 기자로 근무하다가, 2014년 서밋북스에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편집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글을 꾸준히 써온 그녀는 2019년 로맨스, 페미니즘, 역사, 판타지에 관한 에세이 〈저를 도서 편집자로 불러주시기를 감히 청해봅니다〉로, 2022년 필리핀인의 정체성을 다룬 에세이 〈필리핀 천 년의 단일 신화〉로 돈 카를로스 팔랑카 기념 문학상을 받았다. 이 상은 ‘필리핀의 퓰리처상’이라 불릴 만큼 권위가 있다. 2023년 12월 출간한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는 그녀의 첫 번째 로맨스 소설이다. 이 작품은 필리핀 출판사를 배경으로 한 남녀가 라이벌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그려냈다는 평단의 찬사와 함께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현재 그녀는 필리핀 신화와 민속 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하이 판타지 시리즈 집필에 도전하고 있다. 해변 산책과 개와 고양이,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로맨스 소설, SFF 소설과 테일러 스위프트를 좋아하는 그녀의 일상은 SNS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