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을 때 찾아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아무튼, 레코드』의 저자 성진환이 일하고 있는 음반 매장 김밥레코즈다. 예전에도 가본 적 있지만 이번에는 매대를 서성이며 혼자 이런저런 음반을 살펴보는 대신 적극적으로 그에게 음반 추천을 부탁할 것이다. 실은 이미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매장에 들러 그에게 음반을 추천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음반을 선물하고, 선물 받은 사람이 여름 분수의 물소리처럼 청량하게 터뜨리는 웃음, 그리고 조용히 돌아가기 시작하는 레코드. 『아무튼, 레코드』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책이 결국 음악을 통해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 주고받음의 기쁨이 순도 높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음반을 사고 싶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물하고 싶어진다. 성진환 작가가 책 후반부에 적은 것처럼, 김밥레코즈 사장님이 선물 포장용 종이봉투의 도입을 고려해 주시면 좋겠다.
『아무튼, 레코드』 작업을 마친 후기를 들려주세요.
아무래도 제가 가진 음반에 얽힌 추억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을 떠올리며 오래된 음반들을 꺼내 듣는 시간이 많았어요. 어찌나 반갑던지… 그냥 그 시간을 너무 즐겨서 불안해지기도 했지만 결국은 글로 이어져서 다행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기댈 곳이 없어 괴롭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어요. 이전에 제가 했던 작업들, 음악과 만화 속에는 메시지 외의 무언가 확실한 장치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술술 풀리면 며칠 동안 했던 자학이 다 잊히곤 했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건 음악도 만화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해내고 나면 그간의 고통이 희미해진다는 것은 창작의 조금 무서운 점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지금은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고마웠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어요. 중간중간 먼저 읽고 격려해 준 친구들과 출판사 선생님들, 여전히 믿기 어려울 만큼 멋진 표지를 만들어 주신 디자이너님, 이 책을 기다리며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
책에 이루고 싶었던 두 가지 꿈 이야기가 나옵니다. 뮤지션, 그리고 음반 가게 점원. 2년 전부터 홍대에 있는 음반 매장 김밥레코즈의 점원으로 일하며 두 번째 꿈도 이루셨어요. 매장 선곡에 특히 애정을 쏟으실 것 같은데, 선곡 루틴이 궁금합니다.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저만의 습관들은 좀 생겼어요. 원래는 매장에서 스트리밍으로도 많이 트는데, 제가 일할 때는 거의 항상 실물 음반을 재생하고 그 옆에 자켓을 잘 보이게 세워 둬요. 제가 그걸 좋아하니까요. 음반 하나를 틀면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려고 하고요. 그걸 만든 사람이 의도한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청취 행위가 음반이라는 오래된 방식의 매체를 여전히 사고파는 장소와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웬만하면 현재 매장에 재고가 있는 음반들 중에서 고르는 편이에요. 틀어 둔 음반이 팔리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 ‘듣다가 너무 좋아서 찾아왔어요!’ 하고 손님이 계산대에 음반을 올리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매출에 기여했다는 보람도 물론 있지만, 어쨌든 저도 그날의 날씨와 기분 때문에 문득 듣고 싶어서 고른 음반이잖아요. 그 마음이 누군가와 통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참 짜릿해요. 간혹 재고가 없는 음반을 틀 때는 손님이 이거 지금 살 수 있냐고 물어볼 걸 대비해서, 미리 그 아티스트의 다른 음반 재고를 파악하거나 제가 비슷한 감흥을 느끼는 다른 음악을 추천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요. 그때그때의 매장 분위기를 고려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혼자 온 손님들이 각자 조용히 구경하는 분위기일 때는 차분한 음악을, 시험이 끝나서 한껏 텐션이 오른 학생들이 몰려들었을 때는 자연스럽게 비트가 흥겨운 음악을 틀게 돼요. 반대로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서 생뚱맞은 음악을 고를 때도 있는데 그게 진짜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재미있어요. 음악의 힘이 얼마나 큰지 매일 느낍니다.
두 번째 타투를 한다면 크리스 코넬의 곡 <Zero Chance>에 나오는 가사 “왜 아무도 외로움을 믿지 않지? 일어나, 모두가 너의 거룩함을 볼 거야”(78쪽)를 새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많은 가사를 외우고 계실 텐데, 몸에 새기고 싶은 저 문장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책에는 제 마음대로 번역한 내용만 적었는데 그게 어떤 노래인지 찾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그의 노랫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요. 워낙 좋아하는 아티스트여서 그의 생전 모습과 주변 사람들의 말을 비롯한 수많은 것들을 다 찾아보며 살았지만, 그의 삶이 어땠는지도 그저 추측할 뿐이고요. 저 문장에 대한 제 생각을 다 적으면 근거도 없이 길기만 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다만, 인간은 다 외롭잖아요. 덜 외롭기 위해 관계를 맺고 이런저런 노력을 하며 살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 노래의 이 구절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위안받는 기분이 들어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잊고 살다가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일단 직시하고 받아들일 때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고 잘 다룰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도쿄의 오래된 음반 가게 ‘El Sul’와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우연히 구매한 앨범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챕터에서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지’에 맞먹는 커다란 질문 ‘어떻게 음반을 살 것인지’에 관한 음반 구매 팁을 대방출하셨습니다. 반대로 사전 정보 없이 우연히 구매한 음반 중 기억에 남는 음반이 있으실까요?
들어보지도 않은 음반을 사는 것은 저에게 ‘여행 중에나 한 번씩 일어나는 이벤트’라고 책에 적었는데, 마침 얼마 전에 전 직원 워크숍을 도쿄로 다녀왔어요(멋진 직장이죠?). 여러 음반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것들을 참고하고 음반도 많이 샀죠. 이번에 저는 특정 스타일의 음악에 집중하는 작은 가게들을 많이 갔는데, 월드 뮤직을 주로 다루는 ‘El Sur’라는 오래된 가게에 갔더니 폐업을 앞두고 전 품목 30% 할인 중이었어요. 하와이 음악 코너에서 커버만 보고 고른 Elaine Ako Spencer의 1976년 작 <Mele Hali’a Aloha>가 너무 좋아서 지금도 집에서 행복하게 듣고 있습니다. 처음 갔지만 곧 폐업한다니까 마음이 아련해져서 ‘감사했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인사하고 나왔는데 돌아와서 검색해 보니 다른 동네로 옮기는 거였더라고요(다행). 또 제가 잘 모르는 덥, 레게 장르의 음반들을 파는 작은 가게에서 역시 커버만 보고 산 <Creation Rockers>라는 컴필레이션도 아주 훌륭한 여름 BGM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저희 매장 부스 일을 마치고 다른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Charlie Barnet and His Orchestra의 <For Dancing Lovers>라는 음반을 샀어요. 1930-40년대에 활동했던 재즈 뮤지션인데, 그의 레코딩 중 연인들이 춤추기 좋은 음악들을 골라서 1950년대에 찍은 엘피 같아요. 엄청나게 로맨틱한 커버 사진에 끌려서 샀지만 그 사진 같은 상황 말고 그냥 집안일 할 때 종종 듣습니다. 미국 흑백 영화 속 가정부가 된 기분으로 청소 빨래 설거지를 춤추면서 할 수 있어요. 10월에 성수동에서 열리는 이번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여러분도 이런 재미를 느껴 보시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 ]
강아지 흑당이와 고양이 꼬마입니다. 착하고 사려 깊은 친구들이라 언제나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귀여움은 당연). 인간들 사정으로 보호자 두 명이 번갈아 돌보고 있는데, 작업 후반의 몇 달간은 떨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처음보다는 글이 많이 차분해졌는데, 고독한 시간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도 제 마음에 듭니다. 출간 즈음에 아이들과 다시 만나서 기쁨을 함께 누리고 있습니다.
강아지 흑당이와 고양이 꼬마 / 음반 매장 김밥레코즈 안의 작은 작업실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작년에 이사를 했어요. 음악 작업도 해야 해서 가장 큰 침실을 작업 환경으로 정했는데, 그 방에 온갖 짐이 쌓인 채로 정리를 못하고 살았어요. 먹고 자고 입는 게 더 급하니까요. 그래서 편한 의자와 책상, 넓은 모니터를 놔두고 작은 태블릿으로 책 한 권을 다 썼습니다. 그런데 그게 좋았어요. 어디든 작업실이 되었으니까요. 식탁이었다가 소파였다가 좋아하는 카페들이었다가 했지요. 이 책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저의 직장, 음반 매장 김밥레코즈에 일부러 한참 일찍 출근해서 큰 스피커로 혼자 음악을 들으며 쓰기도 했고요. 어디서 쓰든 항상 음악을 들었는데, 오늘의 작업실인 그곳에서 무슨 음악을 어떤 기기로 들을지 정하는 것도 이 책과 어울리는 즐거운 일이었어요. 그리고 음반과 오디오 기기, 게임과 게임기 다음으로 제가 참 좋아하는 물건이 있는데, 그게 바로 기계식 키보드예요. ‘아무튼 시리즈’가 작은 판형의 책 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는 기획이잖아요? 그날그날 기분에 맞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바라보던 작은 화면이 이 시리즈의 이 책과 아주 잘 맞는 작업 환경이었다고 느낍니다.
마감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집 정리와 음악 작업인데요, 일단 컴퓨터는 연결했어요! 이제 음악 장비를 전부 꺼내서 연결해야 하는데…(중략) 또 다른 하고 싶었던 일은 흑당이랑 원 없이 산책하고 꼬마랑 원 없이 노는 건데 그건 확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집니다. 작업 중 특히 재밌게 본 남의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스타워즈 시리즈를 참 좋아하는데, 지난 봄에 디즈니플러스의 <안도르>가 시즌 두 개로 마무리되었어요. 첫 시즌부터 다시 보면서 한동안 밤마다 벅찬 마음으로 잠들었어요. 스타워즈 세계관 안에서는 제국에 대항하는 우주 곳곳의 수많은 사람들이 숱한 비극을 겪으면서도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거든요. 저도 아침에 일어나서 괜히 반란군 병사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커피를 내리고 키보드 앞에 앉곤 했습니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오열한 시간들도 잊을 수가 없네요. 지브리 영화들도 하나씩 다시 보고, 마감을 앞두고 정말 뭘 많이 보긴 했군요.
"인간은 인터넷 알고리즘처럼 손님 한 명 한 명의 취향과 청취 패턴을 분석하여 미리 골라 둔 추천 음반을 들이밀지도 않는다. 그저 어떤 음반을 어떤 자리에 조금 더 잘 보이게 놓아둘 뿐이다. 그 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느 정도 우연의 영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음반의 위치는 계속 바뀐다. 어느 자리에서 우연히 눈에 띈 커버 디자인, 우연히 들린 옆 사람들의 대화가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날의 날씨와 매장 안에 흐르는 음악이 마음의 각도를 미세하게 바꾼다. 그 모든 우연들이 모여 충동구매가 발생하고, 그렇게 인생 음반을 만나기도 한다. 모두 언젠가의 내가 겪었던 일들이고, 여전히 우리 매장에서 목격하는 일들이다. 우리 모두가 한계를 가진 불확실한 인간이기에 그런 우연을 기대하고 때로는 실망한다. 나는 인간의 그런 점이 좋고, 그런 인간을 닮은 음반 가게가 좋다." (『아무튼, 레코드』, 150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아무튼, 레코드
출판사 | 위고

박소미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저장해 둡니다. 그 사람들...어떤 얼굴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읽고 씁니다.
mallogirl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