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한시영 작가는 어느 날 문득 자신과 아이 사이에서 재현되는 엄마와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침이 되면 언제나 자신을 쓰다듬으며 “자고 나면 예쁘고, 자고 나면 예쁘고”라고 말해주던 엄마처럼, 자신도 첫아이를 본 날 “자고 나면 예쁘고”라고 말한 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저자는 술 냄새가 짙게 밴 지난 27년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첫 책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가 출간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출간된 기쁨과 설렘을 느낀 것도 잠시, 아침이 되면 회사에 가서 보고서를 쓰고 퇴근하면 집으로 와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웁니다. ‘작가 한시영’ 외에 노동자, 양육자와 같이 부여된 역할이 있다 보니 책이 나오긴 나왔는데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게 지내고 있네요. 다만 출근길 지하철에서 에고 서핑을 하듯, 책 제목을 검색해 서평을 보는 루틴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 글들을 보면 현실에 치여 바삐 지내다가도 ‘아, 내 글이 누군가에게 가닿았구나’ 책이 나오긴 했구나, 라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됩니다.
첫 에세이를 쓰시는 과정에서 막히는 순간이 있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유난히 쓰기 어려웠던 내용이 있으셨는지, 그럴 때마다 어떤 방식으로 그 순간을 이겨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책에서 유일하게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있죠. 엄마가 병원에서 외출을 나와 죽음을 맞이하고 장례식까지 이어지는 그 부분이 유난히 쓰기 어려웠어요. 엄마가 맞이한 죽음이 남들이 보기에 ‘편안한’ 죽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제 안에서도 어떤 죽음에 대해 ‘편안하다’거나 ‘안온하다’ 혹은 ‘불쌍하다’와 같은 판단 기준이 있었던 거죠. 마냥 엄마나 제가 불쌍하게 비치면 어떨지 걱정되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제 관점에서 본 엄마의 죽음인 거죠. 실제로는 죽음에 대한 평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판단의 영역은 독자에게 맡기자, 독자를 믿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다시금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대상과 죽음에 대해 가졌던 제 선입견과 세상의 시선에 대한 신경을, 글을 쓰며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는 저와 함께 책을 만들어간 변규미 편집자님의 역할이 컸어요. 엄마의 죽음과 더불어 장례가 나오는 부분을 쓰기 어려워하는 제게 편집자님께서 한없이 격려해 주시고 글을 마무리하는 데 정말 많이 함께해주셨습니다. 편집자님이 없으셨다면 아마 마무리되지 못했을 파트였어요,
‘사랑하지만 자주 부딪히는 관계’로서의 어머니를 가지신 분들이 많습니다. 미디어에서 다루는 것과 달리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마냥 순하고 아름답지는 않은 듯한데요. 작가님께 ‘엄마와 딸’은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존재를 몸 안에서 키워낸 후 세상에 내보낸 여자와 그 여자로부터 세상으로 내보내진 여자. 엄마와 딸은 그런 느낌이에요. ‘한시영’이 제 필명인데요. 저는 분명 저를 낳고 기르고 먹인 여자들에 의해서 길러졌고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는데, 이름에는 아버지 쪽의 성만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름에 저희 외할머니와 엄마의 이름에 들어있는 ‘영’ 자를 넣어 필명을 만들었어요. “나는 당신들로부터 왔고 나의 아이들 역시 당신들이 있었기에 당신들의 몸으로부터 나올 수 있었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해서 그들을 기억하려고 다짐해요. 제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긴 여자들이죠. 딸과 엄마의 관계라는 사실은 정말 생각할수록 독특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문득 어머니가 떠오르는 순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작가님은 어떤 식으로 마음을 다독이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낳은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 때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어요. 우리 엄마한테 이 아이들을 보여주고 싶다, 얼마나 좋아할까, 얼마나 예뻐할까. 제 아이들을 충분히 못 보고 간 게 너무 아까워요. 그럴 때면 제 엄마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줘요. “얘들아,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너희 외할머니가 있었다면 너희를 얼마나 예뻐하셨을까” 하면서 외할머니가 어떻게 생겼고 성격은 어땠고 제게 어떤 음식을 해주었는지 아이들에게 말해주곤 해요. 엄마가 이 세상에서 잊힐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제게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날이 참 좋잖아요. 하늘을 보면 구름 한 점 없는 이 날씨를 저만 누리는 게 괜히 미안해요, 엄마한테요. 그러면 속으로 엄마에게 말을 걸어요.
“엄마 나 이 날씨 누려도 되지. 이 날씨 엄마가 하늘에서 나한테 선물로 준 거 맞지, 고마워.”
책을 쓰시기 전과 후, ‘어머니’라는 존재나 작가님의 어린 날에, 또는 지금에 대한 심상이 달라지셨나요? 변화가 있다면 그 차이를,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을 쓰면서 엄마가 되어볼 수밖에 없었거든요. 딸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제게 주어진 그 작은 지분으로 엄마를 대변하고도 싶었어요. 글을 쓰면서 엄마는 어땠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위치를 바꿔볼 수 있었죠. 제가 지금 만으로 35살인데요. 엄마가 저를 낳고 키우던 그 나이대에 진입하고 있어요. 엄마도 어렸구나, 엄마도 무서웠겠네, 어떻게 견딘 걸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예전에는 내게 잘 해주었던 엄마와 내게 상처를 준 엄마, 이 두 존재 사이에서 굉장히 괴로워했었는데요. 이제는 그 두 존재, 나를 찬란하게 빛나게 만들어준 것도, 나를 고통에 가닿게 만든 것도 엄마라는 것. 그 두 존재 가운데서 괴로워하기보다 그 두 가지 모습 모두가 진실이고 현실이고 실재였지 하면서 받아들여요. 엄마의 그 모습 사이를 오가는 긴장감으로 글을 쓸 수도 있었고요. 엄마의 두 가지 면, 아니 셋, 넷, 다양한 엄마의 모습을 이제는 통합해서 받아들였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제 자신에 대해서도 좀 너그러워진 것 같아요. 나는 이래야 해, 이런 모습을 가져야 해, 이런 욕구는 옳지 않아 하며 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엄마라는 존재를 좀 편하게 받아들이면서부터 제 자신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 책에서 작가님께서 나눠주신 이야기와 비슷한 경험, 감정을 갖고 계신 분들께 건네고 싶은 조언이나 위로가 있을까요? 독자분들이 어떤 것을 생각해 봐주셨으면 하시나요?
중독자의 자녀이거나 혹은 나를 힘들게 하는 부모를 가진 분들, 외면하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어떤 관계에 놓인 분들을 떠올리면 그것이 꼭 제 일인 듯 마음이 많이 아파요. 자신이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기억하셨으면 좋겠고요.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서적인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 역시 잘하지 못했지만… 그런 정서적 거리를 두려면 우선 내가 나를 먼저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고요.
제 친구들 중 학교 선생님들이 꽤 있는데, 이 책을 보내주면서 꼭 한 마디씩 보탰어요. “야, 너네 반에도 가장 잘 웃고 밝은 애가 나 같은 아이일 수도 있어. 잘 살펴봐 줘”라면서요. 밤새 술에 취한 엄마를 돌보고 피곤한 몸으로 학교에 가면 스위치를 탁 켜듯 모드 전환이 되었거든요. 학교에서 그 누구보다 밝게 지냈어요. 그런데 그 밝음 뒤에 드리워진 그늘을 어떤 어른이 발견해 주었다면 조금 덜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술에 대해 관대한 부분이 있고, 그로 인해 알코올중독자 비중도 상당히 높잖아요. 유럽이나 미국 같은 경우는 중독자 가정의 자녀 모임이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중독자 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조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죠. 이런 부분이 좀 더 부각되고 수면 위로 올라오면 좋겠어요. 물론 ‘영케어러’라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돌봐야 하는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긴 했지만, 국가의 제도적 차원의 케어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출간 후, 지인분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피드백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제 가장 가까운 지인인 제 두 딸은 한동안 “죽이고 싶은 엄마, 속이고 싶은 엄마, 간지럼 피고 싶은 엄마”라며 둘이서 낄낄 라임을 맞추며 놀았어요. 서평 중 ‘나에겐 죽이고 싶은 엄마가 아닌 죽이고 싶은 아빠가 있다’고 남긴 글도 기억나요. 그걸 보면서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꼭 통합하고 내적 화해를 해야 하는 존재가 있구나 느끼기도 했고요. 마지막으로 ‘살고 싶어지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지는 글이’라는 서평도 기억에 남아요. ‘살고 싶어진다’라는 문장이 너무 감사하고 좋더라고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출판사 | 달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sehunnim
2025.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