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 다산책방
소설을 읽다가 (나만 그러진 않았을 것 같은데), “국제 어두운 밤하늘 협회”를 검색해 보았다. 다른 글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나와 남편은 올해 초에 함께 살던 고양이를 떠나보냈다(18살이었다). 남편은 말했다. “도대체 누가 제일 먼저 고양이 별이라는 걸 떠올렸을까?” 남편은 아주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본 무수한 밤하늘의 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두운 하늘에 많은 별이 떠 있는 게 아니라, 무수한 별 사이사이마다 검은 하늘이 자리 잡은 것 같았다고. 그렇게 우주에는 별이 많으니까, 그중 하나가 고양이 별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여전히 고양이 별이 실재할 거라고 믿지 않지만, 그 마음이 어디서 오는 건지는 안다. 대상을 계속 살아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 비록 죽어버렸다고 할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살아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
내 사랑의 마음을 하나의 별로 만들어 영원히 빛나게 하고 싶은 원대한 소망.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죽음’이 생물학적인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리라. 이를테면, 내가 맺은 관계 혹은, 사랑의 죽음. 이는 생물학적인 죽음만큼,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끝난 사랑에 대해 호은의 엄마 윤선은 말한다. “지구와 달 사이”에서 “굉장한 속도로 회전하는 허공(193쪽)”만이 사랑의 현장이고, 사랑이 끝나면 “각자의 낙하산”을 펴고 “따로따로” 지구로 돌아와야 한다고. 호은은 지금 조금 혼란스럽다. 자신이 품었던 K에 대한 마음이 죽은 건지, 여전히 살아있는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호은의 마음속에서 K와의 관계는 죽어있으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상태 같다. 마치, 절단되어 버린 신체의 일부분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환지통(37쪽)”처럼, 절대로 대처할 수 없는 고통. 호은은 허공에서 회전하지도 못하고, 지구로 돌아오지도 못한 채, 그저 혼자 우주 속을 유영하고 있는 걸까? 호은의 아빠는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대상들을 여전히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그것을 절대로 우주의 별로 떠나보낼 마음이 없다. 그는 우주 속에서 홀로 유영하는 걸 스스로 선택한 사람 같다.
호은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울다가 웃다가 화가 났다가 슬퍼졌다가 한다. 그들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은, 그들이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별에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모래성(277쪽)’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 별을 각자의 하늘에 새기기 위해서는, 하나의 사랑이, 관계가, 시절이 영영 죽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우리는 또다시 떠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 이해의 과정은 사랑의 여정만큼이나 수많은 실수와 실패, 오해와 후회로 점철될 것이다. 때때로 실수와 실패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토끼 ‘제비꽃’이 갉아먹어 버린 전선처럼 서로에게 복구할 수 없는 상흔을 남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 소설은 바로 그러한 쓰디쓴 실망과 눈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떠남과 돌아옴의 운동을 멈추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괜찮아, 우리가 이렇게 마음 아픈 건, 혼란스러운 건, 후회되는 건, 화가 나는 건, 토끼 제비꽃이 온갖 것을 씹어먹는 행위가 그러한 것처럼, 그저, 일종의 자연의 이치일지도 몰라. 물론 누군가는 다른 식으로 말할지도 모른다. 그건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호은(호은의 엄마, 아빠, 혹은 내가, 혹은 우리가)미숙해서 그런 거라고. 그리고, 그러한 미숙함은 극복 가능한 게 절대로 아니라고. 인간은 죽을 때까지 상처와 고통을 주고받고 오해하고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 말이 맞다고 해도 괜찮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내내 나를 떠나지 않는 문장 중의 하나는 호은과 함께 간 덕수궁을 넋 나간 듯 바라보던 윤선이 내뱉은 말이었다. “세속적이다. 하지만 아름답구나.” 그건, 오랜 세월, 가늠할 수 없는 상흔과 고통을 견디고 여전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대상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올까? 그건 그 지난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달과 지구 사이의 여정을 멈추지 않으려고 할 때 발생하는 게 아닐까? 아저씨의 전화를 받는 윤선의 뺨에 천천히 번지는 홍조처럼. “싸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백 가지 적과 싸울 각오가 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호은처럼. 혹은 이 지구에서, 그러니까,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불고 중력도 존재하는 바로 이 행성에서 자신의 모래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고군분투하는 호은의 아빠처럼.
어떤 대상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바로 그 마음을 품는 것 자체가 정말로 근사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를 떠나간 것의 죽음을 이해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하늘의 별로 돌려보내려는 바로 그 마음 자체가. 그게 바로 인간이 획득할 수 있는 가장 세속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정말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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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다산책방

손보미(소설가)
드라마와 빵을 좋아하는 소설가. 『디어 랄프 로렌』,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맨해튼의 반딧불이』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