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엄주
2025 여성의 날 특집 – 딕테를 읽는 여자들딕테 모임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진행 중입니다. 딕테를 읽으며 텍스트 너머로 연결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나아가 함께 읽는 여성들이 함께여서 도착할 수 있는 낯설고 먼 곳의 풍경도 담았습니다.
2년 전, ‘책이 미래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콘퍼런스에 연사로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담당자는 주최 측에서 고려 중인 연사 리스트를 함께 보냈다. 내가 담당할 세션의 주제는 ‘가치 지향적인 독서모임 플랫폼을 운영하는 일에 대하여’였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지만 목록에 적힌 이름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어울리는 자리는 아닌 듯했다. 콘퍼런스가 기획된 맥락에서 책의 ‘미래’란 곧 ‘돈’이었고, 독서 모임은 성공적인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였다. 나는 답장을 썼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그러나 들불은 플랫폼이라고 하기엔 좀… 돈도 못 벌고 있고요… 아무래도 연사 제안을 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서 모임이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급부상한 이후 나는 종종 이런 제안을 받는다. 모든 것이 수익화의 출발점이 되는 세계라니 끔찍하기 짝이 없지만 자신이 가진 몇 안 되는 재능을 돈으로 치환하지 않으면 살길이 막막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돌파구인지 모른다. 일단 내가 그랬다. 또래집단에 섞이길 어려워했던 내게 책은 사회와 만나는 접점이었고, 타인에게 나를 보정된 모습으로 내보일 수 있는 지적 도구였다. ‘사회성’이라 불리는 통상의 문법에서 탈락한 내게 책은 ‘저 사람 좀 독특해… 근데 멋져. 그리고 만만치 않아 보여’를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회적 통로였다. 그러다 어느 날, 페미니즘 리부트가 도래하면서 책과 나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내가 나인 채로 살아도 받아들여지는 신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나의 ‘사회성 없음’은 이제 보정이 필요치 않았다. 사회성은 기존의 사회가 만들어낸 규범이며, 규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약자의 사정은 손쉽게 지워진다는 사실을 페미니즘이 알려줬으니까. 약자인 나의 ‘사회성 없음’은 기존 사회에 대한 대항으로, 말하자면 페미니즘 실천인 셈이었다! 자신만만해진 나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관계를 맞이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페미니즘 독서 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게 2017년의 일이다.
그러나 모임 운영은 녹록지 않았다. 페미니즘은 내가 나인 채 살 수 있도록 지지해 주었지만, 동시에 내가 ‘여전히’ 나인 건 문제라며 지적하고 후벼파는 신념 체계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페미니스트들끼리만 모여서 페미니즘 책을 읽을 게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이, 특히 가부장제를 든든한 뒷배 삼아 지나치게 자신인 채 살아가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사람들이 읽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커뮤니티 사업 붐이 일면서 ‘독서 모임이 돈이 된다’는 조언이 서점가를 점령했다. 모임이 돈이 된다면, 들불 역시 페미니즘 독서 모임으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면, 그래서 ‘페미니즘도 돈이 된다’는 발상이 사회 전반의 기본값이 된다면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이 나라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갑자기 가슴에 꺼졌던 작은 불씨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순진한 발상에 기대어 동아리처럼 운영해 오던 들불을 커뮤니티로 브랜딩하고 명함을 팠다. 이름 옆에 CEO라는 글자가 크게 박힌 명함이었다.
그러나 들불은 수익화에 실패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실패 요인을 모두 나열하기엔 내게 주어진 지면이 부족하니 오늘은 그중 가장 핵심적인 실패 요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바로 페미니즘이다. 정확히는 내가 페미니즘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서 모임 운영자들은 보통 모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발제를 준비한다. 발제는 책의 키워드와 주제를 분석하고, 책을 읽으며 생겨난 질문을 모임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운영자들이 자신이 준비한 질문이 모임의 시작과 끝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안은 채 모임을 기획, 운영한다. 그들이 짊어진 책무의 ‘싯가’는 그때그때 다른데, 현재는 3~4회에 30만 원 정도를 책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나 역시 내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책임감을 시시각각 감각하며 나의 노동력을 셈하기에 바빴고, 페미니스트들을 한데 모아 곁에 존재하도록 도운데에 지나친 뿌듯함을 느끼며 몸값을 불릴 궁리를 했다. 장을 만드는 일, 지식을 전달하는 일의 값어치가 얼마나 될까 가늠하는 일에 많은 힘을 쏟은 셈이다.
독서 모임과 페미니즘의 공통점은 ‘함께’라는 기본 전제다. 독서와 페미니즘이 행위의 출발점을 ‘나’에게 두고, ‘너’에게로 다가가며 말을 거는 작업이자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며 변화하는 ‘과정’으로서의 실천이라면 페미니즘 독서 모임의 운영자와 참여자는 모두 적극적으로 이 과정에 동참할 준비를 하고 모임에 참여해야 마땅하다. 독서 모임이 페미니즘과 결합할 때, 이는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작업이 된다. 페미니즘 지식은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하여 여러 사람에게로 향하는 일방향의 가치가 아니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순환하는 가치다. 우리의 대화 속에서 새로이 생겨나는 질문과 응답을 통해 지식은 순환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책임을 나눈다. 이는 곧 공동의 자원이 되어 모임을 지탱하고, 또 다른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운영자로서 나는 오랜 시간 ‘함께’의 감각이 그저 함께 ‘있기’만 하면 발현되는 것이라 착각해 왔다. ‘함께’의 감각이 함께 ‘있기’에서 ‘만들기’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그저 함께 있기만 하면 나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고 믿었다. 그러나 페미니즘 독서 모임은 우리가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새로운 세계를 맞닥뜨리고 최초의 대화를 시작하며 이를 통해 또 다른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장이 되어야만 했다. 페미니즘이 말하는 연대의 감각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까 페미니즘 독서 모임 운영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은 돈을 받고 모임에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일,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모임을 이끄는 일이 아니라 이 모임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작업이라는 사실을 이해시키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이었다.
페미니즘 독서 모임에 운영하고 참여하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걸 배웠다. 경청하는 법, 각자의 속도를 이해하고 기다리는 법, 취약성을 내세워 타인을 윤리적으로 굴복시키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다. 또, 내가 가진 행동 양식 중 일부가 기존의 사회를 그저 ‘받아적은’* 것에 불과하다는 뼈 아픈 진실도 마주했다. 더불어 말끔하게 표백된 세계, 아름답게 다듬어진 세계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반성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자잘한 요철들이 모여 저마다의 둔덕을 이룬 세계는 겉으로 보기에 멋없어 보일지 몰라도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윤리적 타당성으로부터 비롯된 아름다움을 내재한 세계라는 사실을 모임에 함께 한 다른 존재들을 통해 배웠다. 우리 각자가 이룬 둔덕을 이해하고, 서로의 곁에서 추해지기를 주저하지 않기로 결심한 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용기를 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페미니즘 독서 모임 운영자로서 수익화에 끝끝내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책과 사람을 통해 페미니즘을 배운 내가 더 이상 수익화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데 드는 금전적 비용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나는 함께 만드는 과정 속에서 온전한 나의 것이 없다는 걸 깨닫았을 뿐이다. 내가 원하는 건 모임에 참여한 모두가 책임과 배움을 나누는 것, 기획부터 운영까지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 돈은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가치가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나면 독서 모임 운영자들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듣는다. 나는 그럴 때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모임에 참여하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맘대로 모임을 만들면 된다는 엉뚱한 답을 내놓는다. 모임이 일상적인 실천이 되면,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돈 벌 궁리를 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만들 새로운 모임에서 돈 벌 방법을 함께 모색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지식뿐 아니라 여러 자원을 나누는 일을 모임 구성원들이 함께 고안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30만 원 정도의 대단치 않은 액수를 외로운 사람들끼리 땅따먹기하듯 나누어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대단한 목표나 뚜렷한 목적이 없어도 좋다. 우선 내가 선 자리에서, 반경 100m 이내에 있는 조촐하고 안락한 세계에서 목적도, 주제도 없는 모임을 결성해보면 좋겠다. 나는 책이 아니라 ‘모임’이 우리의 미래를 지탱할 중요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내가 콘퍼런스를 기획한다면 그 주제는 ‘모임이 미래다’일 것이다.
올해 열릴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믿을 구석’이라고 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여러분도 자신에게 필요한 모임을 기다리기보다 직접 모임을 만들어 퍽퍽한 삶 속 소중한 믿을 구석 하나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주고 그를 믿기로 다짐한 것처럼, 돈이 아닌 ‘함께’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믿을 구석이 만들어지는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 ‘딕테’는 ‘받아쓰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구구 (노혜지)
2017년부터 독서모임 공동체 ‘들불’을 운영해온 모임장. 들불이라는 이름은 2019년 모임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었다. 2020년부터 도서 큐레이션 레터 ‘들불레터’를 발행 중이며 동료와 함께 『작업자의 사전』(2024, 유유히)을 썼다.
tkekd523
2025.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