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낯선 상황이나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받는 편이에요. 너무 익숙하고 가까우면 오히려 제대로 보기 어렵잖아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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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작가


이런 질문 받아보신 적 있나요?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실 건가요? 얼마 전 로이킴의 ‘내게 사랑이 뭐냐고 물어본다면’을 흥얼거리며, 누군가 사랑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할지 잠깐 고민해보았습니다. 

여기, 같은 질문을 들고 여행을 떠난 작가가 있는데요. 12년 전, 유럽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에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고 해요. 그 기록을 고이 보관하다가 드디어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낯선 사람』의 김은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에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셨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그것도 12년 전에요!

난생처음 혼자 긴 여행을 떠나게 되었으니 여행 중에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어요.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았거든요.(웃음)   ‘사랑’은 당시의 저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했고, 보편적인 주제이기도 하니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볼 좋은 구실이 되어줄 것 같았습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묻는 거예요. "실례합니다. 혹시,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간단한 거 맞죠? (웃음)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의 손 글씨와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는 게 참 인상적이더라고요. 사람들 반응은 어떻던가요? 

생각보다 너무나 호의적이더라고요. 워낙 스몰토크가 자연스럽기도 하고,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어하는 분위기였어요. 덕분에 갈수록 자신감이 붙어 신나게 물으며 다녔죠. 사실 저는 극 내향인이라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부터가 큰 도전이었는데요. 말 거는 게 힘드니 처음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걸 굳이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그러다 파리 퐁피두센터 앞 광장에서 어떤 사진작가를 만났는데,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다 해봐. 여기에서는 모두가 너와 네 프로젝트를 응원할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때부터는 그냥 했던 것 같아요. 여행자라는 두꺼운 가면을 쓰고 용기 내보기로 했어요. ‘하고 싶은 건 그냥 하자, 창피한 건 한순간이다.’ 그렇게 되뇌면서요.


책에 수록된 ‘러브 프로젝트’ 일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저마다의 답을 적어주었다.

 

극 내향인이라니, 믿기지 않는데요. 러브 프로젝트 덕분에 성향을 거슬러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거네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답변이 있나요?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전시실 한구석에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던 남자가 있었어요. 유독 관람객이 많이 몰리는 <모나리자> 근처였는데, 북적거리고 소란한 와중에도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마치 혼자만의 세계에 있는 것 같았어요.

뒤에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잠깐 쉬는 틈에 말을 걸었어요. 파리에서 유학 중인 학생이라고 하더라고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자기가 그리고 있던 그림을 가리키는 거예요. 이 그림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티치아노의 작품이었는데요. 그러고는 “사람들 얼굴을 봐봐. 저 슬픔이 사랑이 아닐까?” 하던 말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요. 

 

저도 그 부분이 마음에 콕 박혔는데요, 그림 앞에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담담한 눈빛이 기억에 남아요. 그러고 보니 책에 사진이 많더라고요. 직접 찍으신 거죠?

맞아요.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직접 찍은 사진들이에요. 많이 물어보시는데, 카메라는 미놀타 XG-1이고 필름은 포트라 400을 사용했어요.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가겠다고 마음먹은 뒤, 저렴한 필름을 여러 개 사서 펑펑 찍을까, 쓰고 싶은(비싼) 필름을 몇 개만 사서 아껴 찍을까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어요. 두 달 동안 필름 네 롤로 연명하려니 한 장 한 장 얼마나 아껴서 찍었는지 몰라요. 카메라를 들고 한참 기다리다가, ‘이건 안 찍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신중하게 셔터를 눌렀어요. 필름이 아까워서요. 찍을 땐 몰랐는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인화해 보니, 그렇게 아껴 찍은 사진이 전부 인물사진이더라고요. 

 

필름이 모자라 아끼고 아껴 찍었다는 인물 사진


그래서 책 제목이 『낯선 사람』이 된 건가요?

그런 셈이죠. ‘낯선 사람’은 낯선 도시를 여행하던 이방인인 저를 의미하기도 하고요. 제 낡은 카메라 속에 담긴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해요. 저는 낯선 상황이나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받는 편이에요. 너무 익숙하고 가까우면 오히려 제대로 보기 어렵잖아요. 이 여행을 통해 '낯선 것들과의 적당한 거리가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구나, 그중에서도 낯선 '사람'이 주는 힘은 더 크구나' 깨달았죠. 그러고 보니 이 책을 만들라고 등 떠민 것도 낯선 사람이네요, 이 책을 읽을 여러분도 낯선 사람들이고요! 그런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낯선 사람'이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앞표지에는 '낯선' 뒤에 칸을 비워두었어요. 원래 제목은 '낯선 사람'이지만, 여러분에게 힘이 되는 낯선 무언가를 찾아보고 적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따로 언급하지 않으셨다면 12년 전 여행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오래된 여행의 기록을 지금 책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침 에필로그 제목이 ‘이 책이 꼭 세상에 나와야 할까?’인데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사진을 인화하고, 원고를 정리하고, 어설프게 레이아웃도 짜두었어요. 이 책의 꼴은 이미 12년 전에 완성된 셈이죠. 그런데 막상 책으로는 만들지 못하고 고이 모셔두었어요. 질문의 답을 찾지 못했거든요. ‘이걸 누가 읽어? 나무도 시간도 낭비하지 말자.’ 

그렇게 저조차도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신발 상자에서 이 기록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한 발 떨어져 보니,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감정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듣는 건 생각보다 훨씬 특별한 경험이었더라고요. 그때의 나라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러니까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숱한 이사 중에도 신발 상자를 챙겨 다닌 스스로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이 책을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여행 에세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사실 여행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여행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보니, 여행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재미있게 읽으실 것 같아요. 나만의 작은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은 사람, 여행을 추억하거나 꿈꾸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영감을 줄 수 있을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자기 안의 틀을 깨고 한 발 나아가고 싶은 분들'이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러브 프로젝트 자체도 저에게는 도전이었고, 오랫동안 품고 있던 여행의 기록을 세상에 꺼내 놓는 것 역시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저의 시작이 시작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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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김은지>

출판사 | 이름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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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