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700만 년 전 무렵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한 인류는, 350만 년 전 무렵부터 돌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약 200만 년 전쯤에는 아프리카 밖으로 나와서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180만 년 전쯤부터는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수많은 인간종이 지구에 등장했다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30만 년 전 어느 날, 현생인류의 직접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에 나타났다. 『우리가 처음 사피엔스였을 때』는 그들이 만들어낸 특별한 능력에 관한 이야기다.
전작 『단단한 고고학』 이후 2년 만에 새 책을 내셨어요? 새 책 『우리가 처음 사피엔스였을 때』는 어떤 내용인가요?
『단단한 고고학』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구석기 고고학의 대중적 기반’을 넓혀볼 요량으로 쓴 대중서여서 도구의 발달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 중심으로 추려서 구성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가 처음 사피엔스였을 때』에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내용을 담고자 했습니다. 특히 이번엔 우리 현대인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출현 초기엔 다른 고인류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그들이 점차 정신적인 영역에 대한 각성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도구를 개발하고, 거주 영역을 드라마틱하게 확장해 가는 이야기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통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이 이 책의 뼈대입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인간의 거주 영역이 ‘더 넓은 땅’과 같은 2차원적 공간에서만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호수나 바다와 같은 또 하나의 세계로 입체적으로 넓어졌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를 통해 얻은 신체의 경계/한계를 넘어선 존재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에 낚시를 드리우면 물고기가 걸려들 것이라고 생각한 상상력과 실제로 그것을 실현해낼 수 있는 지적 성장이 결합면서 호모 사피엔스만의 고차원적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더불어 700만 년에 걸친 진화 과정 동안 겪어온 식이와 신체 변화에 대해서도 도구 중심의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중에서 소위 ‘구석기 식단’의 본질은 과거의 그들이 현재의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여전히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이번 책의 부제는 “예술과 기술의 기원을 찾아서”인데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두 개념은 어떻게 갈라졌을까요?
재밌으면서도 참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사실 ‘기술’도 그렇고 ‘예술’도 마찬가지인데,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들입니다. 각각의 개념이 매우 주관적이면서도 두 개념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표현에서도 나타나듯 무엇이든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예술이 될 수 있는데, 이때의 ‘지극한 경지’ 또한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둘을 한데 묶어놓은 ‘기예’라는 단어가 있는 게 아닐까요. 구석기시대의 기술과 예술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먹도끼부터 예술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할 것이고, 다른 사람은 동굴 벽화 정도라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저는 전자에 가까운 입장입니다만, 여기서 생각해 볼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그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입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들이 그것을 ‘예술’이라고 생각했을 리 없지 않았을까요. 그들에게는 그저 삶을 보다 잘 영위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심지어 피카소가 극찬한 알타미라동굴 벽화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예술을 ‘생존 활동 그 이상의 어떤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기능 이외에 형태적 요소를 중요시하기 시작한 첫 도구인 주먹도끼를 예술의 출발이라고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의 앞부분에 사피엔스들이 동굴에 모여서 어떤 의식을 치르는 장면을 상상해 보는 내용이 있는데요,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 장면을 구성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벽화가 그려진 동굴 내부는 그들의 생활하던 동굴 밖 세계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고픔이나 추위와 더위, 혹은 맹수들의 위협이 없는 깊은 동굴 속은 분명한 목적이 없다면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불빛이 희미한 돌 등잔을 손에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정성껏 만든 안료로 벽화를 그렸을 테죠. 거기에 뼈로 만든 피리와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퍼지고, 등잔불이 일렁이면 벽화 속 짐승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런 빛과 소리, 몸짓과 그림들이 어우러진 어떤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생존에 몰두해야 했던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고단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그들이 남긴 조각이나 벽화, 악기와 장신구들은 그렇지만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상 고단한 삶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수준의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죠. 빙하기 역시 ‘혹한의 가혹한 환경’이라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일 뿐, 어쩌면 대형 동물을 더욱 풍부하게 사냥할 수 있었던 풍요로운 시대였을지도 모릅니다.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수십 마리의 매머드 머리뼈로 지은 집들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벽화가 그려진 동굴 속은 고된 삶을 달래거나 사냥의 풍요를 빌었다거나 하는 단순하고 현실적 성격의 공간이기보다는, 막연하지만 미래에 대한 상상을 펼치는 곳이 아니었을까요. 그것이 그 집단의 신화였을 수도 있고, 서로 간의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의식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영속을 바라는 은밀한 주술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영속을 바라는 주술적 기원이 첨단기술이 발달한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니까요.
책에서 고고학뿐 아니라 인류학, 생명과학, 화학, 물리학, 식품영양학까지 다양한 학문의 최신 연구들을 소개하셨는데요, 평소에 이런 걸 다 공부하고 계신 건지도 궁금합니다.
우선은 구석기 고고학의 특성상 그렇게 확장된 관점을 갖지 않으면 연구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 고고학이 비판을 받는 부분 중에 하나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유물 중심의 연구가 낳은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론 책에서 언급했듯 화석 자료의 빈약함이 낳은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주변 학문을 두루두루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꼭 그래서 공부한 것만은 아니고요, 이 부분은 저의 이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우주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탐독한 『코스모스』를 통해서 인간 진화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나름 구할 수 있는 원서와 국외 저널의 논문들을 번역하고 이리저리 편집해 50여 쪽 분량의 『World Archaeology』라는 편집본을 혼자서 만든 적도 있었습니다. 필사 원고를 학교 앞에서 복사해서 만든 자료집이었는데요, 그 책을 고고학 스터디그룹 후배들에게도 나눠주었습니다. 당시는 1980년대 중반으로 우리나라 구석기 연구 성과가 아직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외국 자료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해외 연구는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고, 그 중심에는 대부분 인간의 진화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하기 시작했던 무렵의 습관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특별히 여러 분야를 섭렵해야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재밌게 읽은 논문의 참고문헌을 따라가면 구석기 고고학의 특성상 저절로 인접 분야와 닿게 됩니다. 이렇게 쌓아온 지식들이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호모 사피엔스: 진화∞관계&미래?>를 기획할 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공부 이외의 목적으로, 평소에 어떤 책들을 즐겨 읽으시는지도 궁금해요.
평소에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라…, 저의 독서 경향을 잠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가와 e-book 리더기에 있는 책들을 훑어보았는데, ‘인문교양서’로 묶을 수 있는 다양한 분야 잡학서들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외 여행기와 시, 수필, 요리책 등이 조금씩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도서관은 주소지 주민에게 매달 일정량의 e-book을 무료 구독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합니다. 이 서비스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독서 경향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건강한 몸’에 관심이 생기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그 밖의 건강서도 많이 읽고 있습니다. 독서의 목적을 크게 정보 습득, 지적 환기, 정서적 힐링, 여가로 구분했을 때, 저는 정보 습득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독자들이 우리 인간종, 호모 사피엔스에 대해 얼마나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객관화하기란 참 어렵지 않을까요? 판단의 기저에 있는 개념 정의들조차 주관적이니까요. 그렇지만 여러 생명체들 안에서 인간의 위치나 지난 고인류들 안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위치를 보면, 가장 ‘잘난 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전무前無할 뿐이지, 후무後無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판단은 우리의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는 일이니까요. 저는 바로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현재 가장 잘난 것은 이전의 인류들로부터 물려받은 생물학적, 물질적 유산 때문입니다. 선행 연구들이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 책을 통해 이 부분을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래를 이야기하자면, 추가해야 할 조건이 좀 더 있습니다. 우선 예측 불가능한 진화의 방향입니다. 변화하는 환경과 돌연변이가 합치될 경우에만 성공적인 적응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우리가 만든 도구를 통해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책을 통해 상당 부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 조건은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것인데요. 현재를 가능하게 한 자연계의 수많은 우연의 연속입니다. 인류의 멸종을 초래할 만한 사건들이 우연히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혜성이 다행히도 지구에 충돌하지 않았다거나, 화산이 전 지구적으로 폭발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만 보더라도 호모 사피엔스가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혼자서 잘한 결과만은 아니라는 게 명확합니다.
자연계는 스스로 평형을 유지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위해서 할 일 중 하나는 그 평형을 깨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진화와 도구를 통해 갖게 된 능력으로 지구의 미래도 선순환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석기시대의 도구 발달사(『단단한 고고학』)와 호모 사피엔스의 특별한 능력(『우리가 처음 사피엔스였을 때』) 다음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지 살짝 알려주세요.
구석기시대 도구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꽤 한정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이번 책처럼 도구와 연결된 것들, 그로부터 파생된 주제들까지 아우르면 조금 더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범할 수 있는 오류가 걱정이긴 하지만, 조금씩 이야기의 범위를 넓혀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사피엔스였을 때』는 사계절출판사 뉴스레터에 연재하는 기사였습니다. 그래서 분량의 제한으로 요약되고 생략된 이야기들이 꽤 많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좀 더 자세히 쓰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싶습니다.
좀 더 가까운 시일 내에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땅의 구석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남의 손에 의해 시작되고 왜곡된 이 땅의 구석기 연구가 겪어온 우여곡절부터 제법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대중적 시선에 맞게 풀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구석기 이야기를 꼭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