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김사월X이훤 – 첫 번째 편지
싱어송라이터 김사월과 시인 이훤이 서로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글ㆍ사진 김사월, 이훤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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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




2023 10 19 목요일

결혼식에서

 

너 왜 자꾸 우니. 네가 우는 게 첨엔 웃기고 귀엽다가 이젠 나도 눈물이 나네. 뽀얗게 화장해서 더 하얗고 멀대같이 보이는 네가 이 행복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보고 있어. 결혼식에서 너의 아버지가 축가를 부르셨잖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그 부분에서 많은 하객이 울었다. 우연히 한 테이블에 앉은 재윤(부산), 참새(부산), 연지(포항), 나(대구) = PK & TK 여자들도 눈물 콧물 소리를 냈다. 아까까지만 해도 경상도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가부장제 생존자 아니냐며, 우리한테는 투표권 두 개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시니컬한 농담들로 낄낄거리고 있었는데 말이야.

 

나는 정말 상상할 수 없거든. 우리 부모님이 주인공이 아닌 내 결혼을. 너의 결혼식에선 부부가 된 이들에게 소중했던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서로 소개해 주는 듯했지. 신랑의 아버지는 축가를 불렀고 신부의 어머니는 축무를 추었다. 결혼식의 전통을 지키는 척 슬쩍 부수었다. 나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혁명에는 부정적이야. 내 모습대로 살아 버리는 혁명을 원하고 패배에서 시작된 질서를 원한다. 오늘 난 이성애 결혼식에서 할 수 있는 파격적이고 우아한 순간들을 본 것 같았어. 너의 아버지는 축가를 부르다 간주 부분에서는 슬아와 너의 책 제목을 이용해서 내레이션도 하셨지. “너무 절박해지지 말고 아무튼 노래도 하고 당근 마켓도 많이 하고 끝내주는 인생을 살거라!”* 촉망받는 두 젊은이에게 세대의 배턴을 넘기며 미래를 긍정하는 어른의 축복이었다. 이 순간은 너무 듣고 보고 싶었던 이야기지만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굳게 믿으며 사는 사람의 체기를 바늘로 찌르는 듯했다. 판타지 같았고 내 인생에서는 죽어도 없을 것 같은 장면이기에 부러워서 화조차 났다. 이 결혼식을 해낸 슬아와 네가 나보다 더 어른같이 느껴져서 어리광처럼 울었다.

 

너는 왜 잘 우니. 어떻게 눈물을 말리지 않고 계속 울며 살았니. 나도 그래. 너무 슬펐던 사람은 버석하게 눈물이 없던데 나는 그런 멋도 없이 질질 짠다. 아마 살고 싶어서 그런 걸 거야. 너는 결혼식 마지막쯤에 이야기했지. 예전보다 살고 싶어졌다고. 슬아와 함께 한 몇 년간이 너무 행복해서 요즘은 택시를 탈 때 안전벨트도 맨다고. 난 모르지만 훤아. 무슨 말인지 알아. 살아간다는 자해. 타살되기를 기다리는 삶. 나도 너무너무 알아. 결혼 축하해.

 

 

택시를 타고 안전벨트를 맨 그 애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지 죽고 싶은지 모르겠기에 울었다. 그 애는 미안하지만 나를 알고 나서도 죽고 싶었던 경험이 있다고 이야기했고, 순간 나는 그렇다 쳐도 너는 살고 싶었으면 좋겠다고 아니 솔직히 너는 살고 싶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다. 훤아 미안하지만 지금 세기의 결혼식이 사람들을 서로 의심하게 한단다. 저 정도는 되어야 사랑인가 싶어서 외로운 기분을 느끼게 하지. 딱 술이 맛있어지는 기분 그런 거지.

 

술 참는 김에 몇 주 전에 쓴 일기를 타이핑 하고 있는 새벽의 

사월 



* 차례대로 이훤의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이슬아의 『아무튼, 노래』, 이훤의 『아무튼, 당근마켓』, 이슬아 글, 이훤 사진의 『끝내주는 인생』 참조. 

 



이훤




2023년 10월 30일 월요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는 내가 그렇게 많이 울 줄 몰랐어. 


사내새끼가 왜 우냐는 말을 그렇게 많이 듣고도, 울 때마다 동네북처럼 놀림당하고도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 미안할 때 고마울 때 지나간 시절의 나를 타인한테서 볼 때…… 어김없이 운다. 누가 나를 복잡하게 알아줄 때도.


그러다가도 생각한다. 울지 않던 시절의 내가 잘 흐르지 않았다는 거. 그리고 남성성은 하나가 아니라는 거. 세계에는 동물과 식물의 수를 합친 만큼 여러 양상의 남자가 있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남자 같다’는 말을 해체하고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남자다운 모습은 취약한 상태에서도 드러나고 요란하지 않아도 구현되고 몸짓이 아니어도 드러난다. 남자들은 자신의 자신 됨을 계속 검토하고 정정해야 한다.


몇 해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누가 강제로 내 삶을 멈춰 주면 좋겠다고.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 버리면 이 지난하고 수고스러운 삶을 그만 살아도 될 텐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떠나고 싶은데 죽을 용기는 나지 않아서 그냥 살았다. 삶은 기쁨보다 고통을 더 많이 수확하는 밭이니까. 어느 순간부터 삶은 최선과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슬아를 만났어. 살아 있음에서 오는 책임은 무겁지만 그래도 사는 게 좋아졌다. 오래 머물고 싶어졌다. 이 울타리를 잘 지킬 수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달라질 줄 나도 몰랐다. 


결혼식 날 아빠가, 슬아와 내 책 제목을 인용하며 축복할 때 나도 둑이 무너지듯 울었다. 아빠는 사랑이 많지만 그것을 매일 살갑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날, 그렇게 온 마음 다해, 큰 소리로 축하해 줄 줄은 몰랐다. 아빠가 집에서 백 번도 넘게 연습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됐어. 나는 아빠를 잘 모르는지도 모른다. 가족 바깥의 <종찬>을 나는 이제부터 찬찬히 알아 가야겠다고 그날 다짐했다. 


가족이라는 거 이상하지 않니. 가장 못생긴 서로의 얼굴을 알면서 빛나는 모습 앞에 둔하기도 하고, 편한데 불편하고, 짜증 나는데 애틋하고. 돌이켜 보면 나는 가족에게 가장 인색했다. 


사월의 창법도 집 안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다 생겨났다며. 식구들이 들을까 봐 이불 덮고 조용히 연습하다 지금처럼 부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다 오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어떤 복잡한 사랑과 증오와 우애를 지나온 거니.


너는 많은 무대에 서 봤지. 종찬은 공학을 교단에 오래 서 왔지만 백 명 앞에서 노래하는 무대는 두려웠을 거야. 한편 무대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거로 생각해. 너도 알고 있지. 무대에서만 말하게 되는 진실이 있다는 거. 가장 취약해지고 또 용감해지는 곳이 무대라는 거. 너는 이제 무대가 편안하니?


사람들 앞에 설 때 나는 아직도 조금은 긴장해. 눈빛을 받고 돌려주려면 그만큼 용기를 내야 하더라고. 받는 일도 힘이 들더라고. 그럴 때마다 속으로 다짐해. 너무 빨리 반응하지는 말자. 잠깐 침묵해도 괜찮다. 충분히 생각하고 이야기하자. 얼마 전 유진목 시인의 북 토크를 봤어. 진목은 노를 잠깐 놓친 뱃사공처럼 말을 오래 멈추었다가 이렇게 말했어. 너무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할 수 없다고. 그런데 겪는 동안 말을 할 수는 없어도, 쓸 수는 있다고. 그래서 책 안에서 자기가 자꾸 슬퍼지는 거라고. 


사는 나와 쓰는 나 사이 슬픔에도 시차가 있다는 이야기로 들었어. 어떤 중요한 장면에 우리는 늦는다. 띄엄띄엄 돌아가서 기록한다. 사월이 만드는 음악도 비슷할까? 조금은 위태로운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사랑이, 무대에서 가능해지는 용기가 있다고 믿게 됐다.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에 네가 쓴 가사를 생각해. 


“서로에게 우린 입을 맞추네 / 서로가 없는데도”


타인과 우정하는 리듬을 이것보다 잘 담은 문장이 있을까. 우리는 거기 자주 없다. 어깨를 빌려주고 입을 맞추는데도. 거기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데도. 열네 시간만큼 먼 나라에서 나를 뚫고 지나간 대화가 이 노래와 함께 다시금 도착했다. 나의 안팎을 만든 우정에게도 삶에 별다른 애착 없던 나에게도 유효한 문장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어? 모두의 서재 깊숙이 들어가 중요한 페이지를 펼쳐 버리고 마는 가사를.

 

사월이 자주 살고 싶으면 좋겠는, 훤



*필자 | 김사월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정규 앨범 「수잔」, 「로맨스」, 「헤븐」, 「디폴트」를 발매했다. 잘 웃고 잘 울다가 뭔가를 기록하는 사람.



*필자 | 이훤

시집 『양눈잡이』와 산문집 『눈에 덜 띄는』 등 여섯 권의 책을 쓰고 찍었다. 「We Meet in the Past Tense」 등의 전시와 『끝내주는 인생』,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의 출판물에 사진으로 함께했다. 시선을 만들고 정지된 장면을 잇고 모국어를 새삼스러워하는 사람. 사진관 <작업실 두눈>을 운영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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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과

2024.12.20

답장을 받을 수 없거나 없었던 편지를 쓰는데 익숙해져 있었는데 서로를 향하고 서로 주고 받은 편지를 덕분에 읽다보니 제가 도리어 채워지고 있네요. 친구는 서로를 닮아가고 닮지 않고도 비슷하고 비슷하지 않은 차이에서도 그 결이 서로의 어느즈음을 이해하는데 또 알아보는데 도움이 된단 생각을 했습니다. 두분의 서로를 향한 이야기를 알게 돼서 오늘의 저도 살아가는 자해 속에서 택시를 탈 때 안전벨트를 하던 날을 떠올리며 웃었어요. 서로 나눈 편지는 다른 형식의 일기같단 생각도 들었네요. 고마워요! 다음 편지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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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 이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