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한지산 시인의 첫 시집 『유령, 도둑, 사랑』이 출간되었다. “신진 시인으로서 좌충우돌하면서도 본인의 시 세계를 완결해나갈 끈기와 저력, 바로 그 ‘독창성에의 기대’에 값하는 문장” “일상의 사물과 어그러진 풍경 속에서 존재의 이면을 탐색하고,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시적 공간을 창출해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풍경들이 곳곳에 숨어 있기도 하다.
『유령, 도둑, 사랑』은 어딘가 환상적이면서도 엉뚱하고 때론 슬프지만 끝내 사랑스러워진다.
출간 소감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될 분들에게 『유령, 도둑, 사랑』에 대해 한두 문장으로 짧게 소개해주세요.
가장 바라던 일이었는데 막상 책으로 나오니 이게 진짜 나오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속에 뭔가가 툭 빠져나왔는데 그걸 내 눈으로 보는 기분입니다. 얼떨떨하다는 감각과 이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 닿았을 때 어떻게 읽힐지 호기심도 생깁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보통 등단한 사람들이 첫 책을 내는 데 2~3년 정도가 걸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제가 21년도에 등단을 했고 올해가 정확히 3년째 되는 해였어요. 나는 통계 안에 들어가는 평균의 시인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령, 도둑, 사랑』은 가장 맛있는 걸 마지막에 먹는 사람, 하고 싶은 말을 끝끝내 하지 않고 삼킨 경험, 인간 아닌 것에서도 인간을 찾는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면 늘 그 대척점에는 뭐가 있는지 감각하는 목적지가 있지만 목적지로 가지 않는 엉뚱한 항해 같은 시집입니다.
이번 시집의 「시인 노트」를 보면, “『유령, 도둑 사랑』은 하나의 단어를 삼등분한 것이다. 그 단어는 이 시집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말”이라고 쓰셨는데요. 그 단어가 무엇인까요?
사실 이 단어를 끝까지 알려드릴지 말지 고민을 했어요. 당연히 실재하는 단어고 추상적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단어를 말하게 되는 순간 독자를 비롯해 이 시집 자체의 어떤 가능성이나 사유를 다 막아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대답하지 않기로 정했습니다. ‘침묵하기’ 거기까지가 이 시집의 일부라고 생각해주세요. 하고 싶은 말을 돌려하기가 사유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단추를 보면서 사랑을 떠올리고 누군가의 미소에서 죽음을 생각하기처럼 직접적으로 가지 않고 빙 돌려 말하기. 그 거리감을 충분히 느끼는 데서 감각은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등분함으로써 외려 온갖 곳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도 즐비해질 수 있다는 저 나름의 시도였습니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쓸 때 작가님께 많은 영향을 준 것들을 소개해주세요.
제가 다양한 경험이나 관계에서 영감을 얻어 글을 쓸 때 꼭 하는 말이 있어요. ‘너는 나의 영감나무다’ ‘너는 나의 꿀술이다’ (꿀술은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이 독수리로 변해 입으로 신들의 음료를 나르다가 내용물이 떨어져 인간의 머리에 닿으면 그 사람은 현자가 된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저만의 드립입니다.) 등 되게 다양한 곳에서 저만의 영감나무를 발견하곤 하는데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에 주목을 하는 편이에요. 다수의 공감을 살 수 있는 토양을 먼저 발견하고 그 위에 저만의 씨앗을 뿌리는 거죠. 그런 이야기는 보통 뉴스 기사에서 많이 발견하는 편이에요. 혹은 칼럼도 읽는데 ‘인문360’이라는 칼럼을 자주 가서 읽고 ‘연극in’이라는 연극 웹진에서도 그런 보편적인 이야기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무엇일까요? 독자들에게 시집에 수록된 작품 중 단 한 편을 골라 소개해야 한다면 어떤 작품을 고르고 싶으신가요.
내용적인 부분보다는 시집의 배치나 시들간의 유기적인 호흡, 간격 등 시 바깥의 부분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물론 그것까지 시집이라는 구성 안에서는 ‘내용’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시보다는 구성에 좀 더 공을 들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묶는 기간에는 작가의 모습보다 디렉터나 연출가의 마음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시 제목도 세 단어니까 시도 세 편을 고르면 안 될까요? 저는 「다발」, 「below zero」, 「재배고도」라는 작품을 고르겠습니다.
저는 시인의 역할이자 특권 중 하나가 세계를 재정의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복, 파괴, 등도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존 세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단어의 역할이 있을 텐데 「다발」과 「below zero」, 「재배고도」에서는 기존 세계의 단어의 역할에서 조금 비켜서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 부분이 좀 재밌게 읽힐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바로 두 번째 시집에 대한 연구를 할 것 같아요. 실제로 지금 계속 쓰고 있는 시들도 다 두 번째 시집을 겨냥하고 있어서요. 그것 외에 다른 계획은 ‘‘협업’이 가능한 활동을 하고 싶다’ 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시는 타 예술활동에 비해 ‘협업’의 개념이 많이 협소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은 낭독회나 북토크, 미술작가와의 콜라보 등 확장성을 넓히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희곡을 읽고 쓰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어요. 작품을 만드는 작가. 텍스트를 연기하는 배우, 그것을 생동감 있게 살리는 연출가, 그리고 그걸 보러 오는 관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에 중력처럼 이끌리는 순간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이런 다양한 장르의 쓰기가 제 시를 더 풍부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유령, 도둑, 사랑』과 만날 독자분들에게도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케이포엣 시리즈 시인선으로 처음 인사드립니다. 독서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능동적인 고독이라면, 빈 방에 한 권의 시집만을 두고 여러분을 초대하려 합니다.
부디 즐거운 고독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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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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